난 지하철 계단만 올라도 숨을 헉헉대기 일쑤고, 조금만 뛰어도 귀까지 심장박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부실하다. 혹자는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고 하고,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후에도 여전히 헥헥대는걸 본 다른 혹자는 타고나길 뭔가 없이 타고났다며 혀를 끌끌 찼는데, 여기서 혹자는 다 우리 아빠다.
아빠는 씨름을 해서 황소를 타올 정도로 우람한 체격에 운동을 잘하신 분이라,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숨차하는걸 보면 참 안타까워하셨다. 이런 아빠도 꼼짝 못하는 실수가 있는지라, 그 말 한방이면 바로 열심히 운동하란식으로 온건한 대응을 해주신다.
초등학교 5년 동안 가을 운동회만 되면 우리 아빠는 응원가를 부르듯이
- 저기, 애들이 다 결승점에 왔는데 100m 멀어진데서 뛰어오는 아치를 봐라.
이러기 일쑤셨다. 100m 경주에서 내가 굼벵이도 아니고 그건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워낙에 아이들 약올리는데 수가 트인 아빠에 그 딸인지라 별로 개념치 않고 들었건만 그래도 괜히 약올라서 낑낑대면 아빠는 혀를 끌끌차며 계속 '먹어대' 배가 나와서 그런게 아닌지 심각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셨던 아빠가 6학년 가을 운동회 때 다른 아이들의 아빠들과 함께 릴레이 경주를 했다. 당연히 이길줄 알았다. 설움과 오욕의 시간이 앞으로 펼쳐지더라도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아빠니 당연히 이겨야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뭐,
당신께서 제일 발이 빠르니 마지막 주자를 한다며 거드름을 피우던 우리 아빠, 동네분들하고 어울려서 달리기 전에 술을 한잔 하셨던 우리 아빠, 딸에게 1등 선물은 우리꺼라며 포효하셨던 우리 아빠, 바톤을 받고 달릴 준비를 해야하는데 옆에 사람들이랑 무슨 얘긴가를 하는 우, 리 아빠, 바톤이 쥐어진 그 순간 미친듯이 달려야하는데, 그래 달리고는 있는데 와하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는 표정의 우,리, 아,빠.
아빠는 거꾸로 달리고 있었던거다. 과음을 하셨고, 흥이 나있었던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가끔 발휘되는 아빠의 쇼맨쉽이 기민하게 반응한 의도적인 결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린 동점. 더 이상 달릴 일도, 달릴 수도 없는 노쇠한 아빠를 보면서 동점을 미리 만들어놓은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중년이 될때까지 결승점에서 100m로 계속 날 약올렸을테니.
마초란 말이 허지웅에 의해 (네, 저도 검은비님 리뷰보고 후다닥 그의 홈피에 갔다왔더랬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내품고, 네꼬님의 영화리뷰 덕에 은근히 꽤 괜찮은 세계관이란 생각이 드는 요즘, 모임을 갖고있는 사람들 중에
진보마초, 인천마초, 여자마초(이건 나다. 쳇)까지 있는 사상적, 지역적, 성별적(이건 어떻게 의미지어야할지) 마초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기 전, 기존에 마초란 말의 통념에 기대어 보자면 멋있지 않고, 권위적이기만한, 평생 부양이란 짐을 내려놓고 한시름 쉴만하니까 이젠 뛸 수도 없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우리 아빠. 마초와 가부장이 이꼴은 아니겠지만, 그 어긋나는 지점에서 아빤 가부장쪽에 가깝겠지만, 혼자 가끔 빛나고, 제멋대로이고, 사고뭉치였지만 사람들, 아니 나에게 기억에 남는 해프닝을 가져다준 우리 마초 아빠.
나와 같이 뛰거나 예전처럼 날 약올리지 않지만 요즘 아빠는 가끔 내게 문자를 보내신다.
한창 때 술 드시고 전화를 해서 괜히 사랑한다며 화냈다 웃었다 하실때처럼 가끔씩 문자를 보내신다. 사랑한다는 말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조그만한 목소리로 나를 응원하는 노인의 숨결을 느낀 것도 같다. 보내는 문자마다 간결하고, 내용도 늘 같지만 난 가끔씩 그 문자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