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하루 아침에 눈이 먼 사람들은 집단 수용소에 다른 아닌 감호소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눈뜬 자들이 분배하는 식량을 먹는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협력이 되지만 구역이 나뉘고 권력을 향한 탐욕이 커지자 무기를 가진 다른 구역의 사람이 값비싼 물건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눈먼 자들에게 값진 물건이 무슨 소용일지 모르나 그들은 마구잡이로 쓸 수 있는 총을 갖고 있었으므로 다들 군소리없이 명령에 복종한다. 물건이 바닥이 날 즈음 그들은 여성의 몸을 원하고, 식량을 위해 눈먼 여인들은 그들의 요구를 수락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이 부분은 생존한 세 여인이 빗물에 목욕하는 장면으로 화해되지만 그녀들이 성욕의 대상인 작은 덩어리들로 취급되는 위치는 여러가지 상념을 떠오르게 했다.

  고정된 성관념을 전시해놓는 것에 불과하더란 거친 비유는 직면한 생존 앞에서도 여성의 육체는 단지 성적으로만 소비될 뿐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색계에서 탕웨이가 일본 쪽에 투항하든 독립군으로 남든 변하지 않는건 여성이란 지위였던 것처럼. 약을  삼키려던 순간, 그녀가 떠올린건 인형의 집은 지금과는 맞지 않다며 다른 연극을 하자고 하던 친구들이 이쪽(상징적인 의미)으로 오라고 하던 모습이었다. 이런 식의 배치는 색,계를 가로지르는 주제이다. 일본식 술집에서 탕웨이가 몸을 파는 여종업원으로 오해를 받던가 아무리 독립 운동을 위해 경계 안팎을 드나들어도 동료에게는 언제 맘이 변할지 모르는 '그저 여성'인 것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늘 궁금했던게 있다. 그토록 바람 피우는 남편과 매맞거나 감정노동,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재현은 현실을 반영하는 말로 다 설명될 수 있을까란. 흔한말로 복수와 사랑, 변신등의 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으면 드라마로서의 메리트가 떨어진단 소리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현과 대단원의 화해는 현실을 변화시키거나 의식에 자극을 주는가. 아니, 왜 착한 드라마라 일컫는 이야기들의 싱싱한 날것의 맛보다 이런 구태의연한 상황설정을 더 땡겨하는걸까. 복수와 화해의 대단원에 익숙한 사람들은 유독 현실의 재현에 대해서는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며 관대하게 대한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그게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호텔 커피숍에서 물세례를 받아야하며 그런 주제에 당장 돈이 필요해도 돈봉투를 자신있게 거절할 수 있는 배짱을 지녀야 한다.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면 당연히 가문을 위해 일신을 봉사해야하고, 사회적인 성공이나 자부심과는 별개로 결혼 단 하나로 인해 모든걸 재배치하는 과감한 모험성도 지녀야 한다. 한술 더떠 모든 여자들은 곰인형과 꽃다발을 선물 받는걸 즐거워하고, 남편이 아무리 바람을 펴도 시어머니한테는 꼼짝도 못해야 한다. 되려 맞바람의 기미라도 보이면 당장에라도 주인공을 물어뜯어줄 '시'자 들어가는 무리에게까지 충성을 다해야 한다. 이게 소위 말하는 현실재현 드라마의 유구한 내러티브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뻔한 전시에 불과했던 여성의 몸이 착취 당하는 장면은 그후의 화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이란 지위에 똑바로 눈뜨며 직면했다는 사실, 현실의 재현이지만 현실을 뛰어넘는 사유와 해석을 보여줬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녀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서로의 존재를 번호를 붙여가며 헤아리고 있을 때 영화 밖의 현실재현 매체들은 못생긴 여자에게 굴욕감을 주고(개콘을 즐겨보면서도 동의할 수 없게 만드는 지점 중에 하나, 박지선이 내겐 정말 예쁘기도 하지만, 남녀 대결 구도나 못생긴 사람을 곯리는걸로 웃기려는 수작은 너무 뻔해보여서.) 예쁘지만 내숭을 떨지 않는 여자들에게 온갖 자막을 동원해 창피를 주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현실 재현의 도구로 사용되는 많은 것들은 반어적인 의미로서 꿈에서도 보지 못한 빛깔로 다가올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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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12-3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담이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 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책 띠지에 영화 포스터에 쓰인 이미지가 떡 박혀있는 걸 보고 참...싼티나 보였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많이 읽히고 유명한 책인데 말입니다.

Arch 2008-12-30 14:50   좋아요 0 | URL
정말 잡담이군요^^ 농담인거 아시죠? 그럼요.. 저처럼 문외한인 사람도 읽은걸 보면.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판매가 되지않아 출판사측에서 도발을 한게 아닐까란 생각도 드네요. 도발의 긍정적인 측면은 어필과 호기심이겠지만 이게 조금만 엇나가도 촌스럽거나 식상하니까요. 아쉽게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후자인 듯. 그러고보니 눈 먼일 수도 있군요, 라고 하고선 검색을 해봤는데 붙여쓰기가 되어 있고. 심정적으론 띄어쓰는게 맞는거 같고. 뭘까요.

2008-12-30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0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08-12-3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같은 댓글, 이 긁어부스럼이라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농담
행복한 한해 되시길 바래요 :)

모르고 있었는데 어제 밤에 자다가 갑자기 동냥아치의 '아치'로 바꾸시겠다고 하신 시니에님의 글이 급 떠올랐어요.
지나쳐가면서 봐서 몰르고 있다가 어제 잠결에 문득 생각이 나더라구요 ㅋ 히히ㅋ
그러니깐 원래 시니에님은 알고 있었는데(혼자) 시니에=아치 인것은 모르고 있었단거죵..

밤이 되니 말이 많아져요~ ㅎㅎ

Arch 2009-01-01 12:22   좋아요 0 | URL
^^ 아침인데도 말 많은 전 어쩌라고!
forgettable님도 즐거운 새해되세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