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신문에서 지오가 '나쁜 남자'로 변해서 어쩌고 하길래 설마 했는데 역시나 설마였다. 대체 나쁜 남자, 좋은 여자, 착한 사랑, 운명적인 것, 갈등의 단순화란건 어떤 머리로 개발한걸까. 갑자기 교육정책까지 떠오른건 좀 오바긴 하지만 그전의 독법으로 그사세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한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지오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 그저 초라하기 싫었고, 젊었을 뿐이다.

내가 예고편과 몇 가지 힌트를 얻어서 추측을 해본건 지오가 자신과는 다른 준영에게 거리감을 느껴선 헤어지자고 하는 것까지. 그러다 녹내장에 걸린걸 준영도 알게 되어 유야무야 화해하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 역시 기존의 드라마 독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노희경에 미칠려면 한참이나 멀었다.

11, 12회에선 자꾸 IP박스를 툭툭 치고서 멈춤으로 놓고선 기록하고 싶은 대사들이 많았다. 지오가 헤어짐의 이유는 사실없다란 말을 한 것에서부터 자신이 이러는걸 엄마가 보면 젊어서 힘이 남아돌아 어쩔줄 몰라 그러는거라고 말할거란 나레이션 뒤에 그만, 어쩌겠는가 젊은데란 말을 하는 것, 괜찮아질거란 말에 전혀 괜찮지 않고, 엄살 아니라고, 자꾸 몸에서 열이난다는 준영의 말까지. 나는 그사세가 드라마인데 드라마같지 않아서 점점 좋아진다.

다시 신문은 말한다. 지난주 대비 0.2%의 시청률 상승으로 인기몰이를 한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현빈의 오열 연기와 송혜교의 눈물 연기에 호평이 쏟아진다고. 솔깃한 기사이긴 한데 그다지 와닿진 않은게 그사세의 시청률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살짝 뻥이 아닌 대단한 뻥이란 느낌이 오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게 시청률로 결정되는건 아니다. 그리고 분명 그들의 연기에 찬탄하는 사람들과 열광하는 무리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사세의 PD들만큼 시청자며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시청률에 연연하게 된다. 왜냐하면 시청률은 광고수입과 연결되고 이건 나중에 또 드라마 작업을 할 수 있는가까지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호들갑 이면에 있는 안간힘을 더 일찍 봐버린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몇천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는 시청률 조사가 정말 광고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걸까? 그토록 많은 돈을 들이는 광고인데 효과와 비용을 따져서 안배를 한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엔 그사세 열혈 팬들이라면 광고주가 그사세이기 때문에 광고를 붙인다는식으로 홍보를 한다면 충성 고객 선언을 할지도 모르는데. 이건 그쪽 사정 모르는 어느 그사세 광팬이 되어버린 자의 푸념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그사세가 기존의 드라마 독법에서 비껴선 것처럼 시청률에 조금만 연연했으면 하는 맘에서, 언론에서도 다른식으로 접근했음 하는 맘에서 막 얘기해보는거다.

오늘 고속 버스 안에서 본 에덴의 동쪽 광고에서 '애증이 엮인 관계, 지독한 복수와 거침없는 사랑, 대단원의 화해'란 문구가 눈이 띄었다. 이런 식인데 어떻게 게임이 되겠어.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다른 쪽으로 보자면 사정없이 몸달도록 재미있는데.

그나저나 난 난데없이 헤어지자는 지오 때문에 준영이 울 때마다 맘이 너무 아파서 자꾸 준영아, 울지마.라고 중얼거렸다. (송혜교야 어찌됐든 말이다. 그럼에도 송혜교 재발견 중이다.)베개에 얼굴을 붙이고 누워선 준영아 울지마라고 하는데 이 친구는 작정이라도 한 듯이 친구들까지 불러와서 운다. 그러면서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갖게 한 자기 얘기를 한다. '설레여서 어쩔줄 모르고 만지고싶고 보고싶은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준 따뜻함은 그가 보듬어준 부분들은 참아지지가 않는다. 그는 내게 아빠였고, 선배였으며 멘토였고, 애인이었으며 친구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펑펑 울고 싶을 때 친구들 앞에서 무너지는 법을 알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많은 부분을 생략한데다 입에 착 달라붙지 않게 읽히는건 받아쓰기 대신 순전히 내 기억에 의지해 휘갈긴 탓이다.)

앞으로 둘은 쿨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차마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던 헤어짐의 이유에 대해서도 서로 이해하고 넘길 것이고, 그러다 문득 누군가 차가운 손으로 목덜미를 움켜쥐듯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날이 오겠지.

그러니까 준영아, 그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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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12-0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여성스러운 연애담이고 사실적인거 같아요.

Arch 2008-12-08 09:46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반갑습니다. 그렇죠? 여성스럽다는 것에 씌워진 이미지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편이 더 맘에 와닿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