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찌 감기가 좀 더 독해지려는지 열이 나서 수건에 물을 적셔 머리에 대줬다. 장난치다가도 정말 안 아픈가보네 하면 금세 정색을 하며 앓는 소리를 내던 어제까지만해도 금방 나을줄 알았다. 머릿수건 몇번이면 열이 금방 내려왔고 밥도 잘 먹고 잘 놀아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어제보다 더 열이 나는데다 배도 아프다고 해서 전전긍긍하면서 얼음물에 적신 수건을 이마에 대주고, 연신 손과 발을 찬 수건으로 닦아줬다. 가만히 누워있는 지희 옆에 나도 누워봤다. 아이의 열이 전해지자 맘이 뻐근해져 너무 뻔하지만 절실하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고 말았다. 옛날 얘기를 해줄까 하다가 머릿 속도 복잡해서 한 얘기는

 -지희야, 우리 지희가 지금도 예쁘지만 아기였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로 시작한다.

-나 몇살 때?

-음... 우리 지희 1살 때는 이렇게 자랄지 모를 정도로 조그만했어. 지희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방에서 씻기면 쬐끄만한게 좋다고 막 물장구 치고, 울 때는 얼마나 소리가 컸다고. 이모가 업고서 안고서 달래면 새근새근 잘 잤고.  2살 때는 방바닥에 배를 착 대고선 쓱쓱 기어다녔어. 이모가 옥찌 옥찌 이러면 좋다고 신나서 이모 쪽으로 왔다~

-이모가 (강아지 부를 때처럼 손을 까딱거리며) 이렇게 했어?

-아니, 손뼉을 막 치면서 호랑이 흉내내면서 불렀지. 막내 이모랑 엄마도 있었는데 꼭 이모한테 왔었어. 옥찌가 특별히 이모를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런데 이모, 이모한테 똥 냄새랑 오줌 냄새나.

-응? 칫.

-사실은 가짜고, 이모한테 걸어다닐 때 나는 냄새나. 거울 냄새 같은거.

-거울 냄새는 또 뭘까. 겨울 냄새라면 좀 알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냥 이모 냄새가 난다는 소리네.

-애기 냄새나.

-아, 나 애기 냄새 너무 좋은데... 그런데 이모 안 씻어서 지지한 냄새 날텐데 그게 애기 냄새라면 듣는 아기 기겁하겠다.

-그럼 내가 세살 때는?

-음.. 옥찌 세살 때는 조금씩 말도 배우고, 걸어다니기 시작했지. 넘어지기도 잘 하고, 말도 곧잘 하고. 엄마란 말 다음에 바로 이모란 말을 했다는거 아냐. 그리고 네살때는 음, 딱 지민이만 할 때네. 그땐 지민이처럼 말썽 잘 부리고, 징징대기도 잘 하고. 말로 안 하고 바로 울어버려서 엄마를 많이 속상하게 했지.

-다섯살 때도 그랬어?

-글쎄. 다섯살 때는 떨어져 지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처럼 예쁘고 멋졌지.

 그렇게 나이 얘기를 하다가 점점 7살, 8살이 되고, 10살이 되자 이제는 더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고라며 너무 뻔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데 옥찌는 그게 하나도 뻔하지 않나보다. 학교에 가고, 새로운 친구들이랑 만난단 소리를 하자, 아이 얼굴이 반짝였다. 11살 이후와 좀 더 나이를 먹을 때의 얘기를 계속 듣고 싶어하는 옥찌를 꼬옥 안았다. 할말 없어서 그러는줄 알고 어서 얘기를 해보라며 채근하는 옥찌를 더 꼭 껴안자 예전에 이 아이에게서 나던 냄새, 예전에 내 품에서 버둥거리던 작은 몸이 와락 떠오르고 말았다. 우리 옥찌 이만큼 컸구나. 이만큼 자라서 이제는 이모 품에 폭 안기는구나. 매번 어쩜 이렇게 새삼 느끼고, 다시 새삼 호들갑을 떨까.

 낮에 지희는 친척 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고상운을 닮았다며 내게 귓속말을 해왔다. 어어, 그래?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고 하자, 나를 꼬집으며 이건 이모랑 나와의 비밀이라고 못을 박았다. 아, 어쩌면 이건 지희의 첫 비밀, 그걸 나와 간직하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아마도 10살의 지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비밀을 나눌 것이며,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며, 어쩌면 지금보다 더 씩씩하게 놀고 더 신나게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학교 들어가고, 친구 만나고란 얘기는 옥찌니까 들어줬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금세 하품을 하며 자리를 뜰 만한 얘기였다는 것이다.

 열이 조금 내린 옥찌는 잠이 들고, 나는 몇방울의 피를 모기에게 바쳤다. 배가 조금 고프고, 두통이 있지만 괜찮다. 그리고 참 더디게 옥찌들 덕분에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깨닫는지, 맘이 자꾸 엉켜서 아릿거리는지 알아가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스탕 2008-11-2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찌야~ 어여 나아라~ 아프지 않아야 맛있는것도 많이 먹고 지민이랑 이모랑 놀수 있지.
아픈 아이 옆에서 지켜보고 간호하는것도 참 못할짓이지요.. 정말 가능하다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은..
앞으로 이쁘게 커나갈 옥찌를 지켜보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

Arch 2008-11-24 10:32   좋아요 0 | URL
네, 무스탕님도 잘 아실거라고 생각해요. 대신은 아니고 같이 아파버려서 골골대고 있어요. 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