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인 나이와는 별개로 -이젠 더 이상 별개라고 구분지을 수 없는 나이다.- 나는 지지는 것을 좋아한다. 잔가지와 나무로 불을 지피는 예인촌에 요새들어 자주 드나드는 것도 그 때문이고, 틈만 나면 지질 곳을 찾아 찜질방을 찾아 지지는 소기의 목적보다 식혜와 달걀을 '먹어대'는 것도 반쯤은 그 때문이다. 몇번 지져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기장판에선 이 맛이 안 난다. 따뜻하고 좋긴한데 이게 전기를 통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정말 몸이 뭔가를 느껴선지 전혀 지지는 맛이 안 난다. 지질때는 자고로 뜨끈한 온돌이 최고요, 그 중 으뜸은 아랫목이더라. 지지다란 말은 부침개를 부칠 때, 몸을 따뜻하게 해서 피로를 풀어줄 때도 쓰는 말인데 뎁힌다라거나 따뜻하게 한다는 말보다 훨씬 정감이 간다.
어제, 생리 징후가 오는데다 한번쯤 지질때가 된 것 같아 혼자 찜질방에 갔다. 황토불가마며 보석방에서 뒹글대다 땀이 조금 나면 나와선 물을 마시며 책을 봤다. 그리고 몸이 좀 식으면 다시 불가마에 들어가 지지기를 반복. 원래는 식혜와 달걀이 필수인데 요새 너무 '먹어대'서 내내 속이 불편했던터라 꾹 참았다. 몇번 들락날락하다 잠이 와서 여자 수면실에 들어갔다. 아파트 근처라 잠까지 자는 분은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코를 곯아주시는 분은 계셨다.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잤는데 자다깨보니 자기 전과는 다른 배치로 몇몇 분이 보이고, 그 중 구석에 있는 분이 앓는 소리를 내는게 들렸다. 아니, 앓는 소리라니. 가만히 들어보면 꼭 신음소리처럼, 누군가를 희롱하기 위해 고안해놓은 소리처럼 야릇한 맛이 있기도 했다. 술취한 남잔가? 아줌마한테 일러야하나? 그러다 행여 시비가 붙을까봐 모른체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몇번 들락날락하다 책보다 뒹글대다 밖에서 자려고 했다. 그 와중에 의식은 안 했지만 불가마에서부터 괜히 나를 따라다니는 남자가 눈에 띄긴 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라고 생각하고선 셀프 팔베개를 하고선 다시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어떤 여자분이 나를 깨웠다. 그러잖아도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눈만 껌뻑이는데다 손이 저려 못움직이자 그 꼴 볼만했겠단 생각이 든건 나중. 왜 날 깨웠을까. 여자는 나보고 오란 손짓을 하면서 내 옆에 자는 남자가 좀 이상하다고, 좀 전에는 자기 옆에서 잤다고. 이상하니까 다른데서 자란 말을 해줬다. 그러마하고선 생각해보니 뭔가 수상한 것도 같은데 딱히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고, 자는 남자를 깨워선 뭐냐고 묻기도 참 '거시기'했다.
결국 다시 여자 수면실에 와서 자는데 아까의 신음소리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달게 자고 있는데 또 누군가의 앓는 소리. 눈을 번쩍 뜨자 다른 몇몇도 그 소리에 잠을 깼는지 뒤척이는게 눈에 보였다. 예열작용을 충분히 거친 오지랖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결단을 생기게 했고, 난 소리의 근원지인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겉모양은 분명 남자 같았다. 다리는 거칠했고, 가슴팍 부근도 남자 같았다. 그럼 간단하군. 여기서 나가달라고 하면 되겠어. 그래서 깨웠다.
저기요, 저기요.
몇번 깨우자 그 아니 그녀 아니 그가 일어났는데 네? 이러면서 말하는 억양이나 폼 음색이 영락없는 여자인거다. 이런이런. 갸우뚱하며 나를 쳐다보는 그녀에게 남자인줄 알았다는 말만 계속 해대며 미안하단 말을 하면서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방을 빠져나오면서도 남자인데 일부러 안 들킬려고 여자 목소리 낸거 아냐? 방 불빛만 좀 환했다면. 진짜 여자라면 나 때문에 정말 불쾌하겠다. 그런데 난 왜 이 새벽에 대체 왜 이러고 있을까까지. 온갖 생각이 난무하는데 급기야 생리까지 오고.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지짐 현장이었다.
친구는 찜질방에 여자 혼자 자는 문제에 대해 걱정을 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어떤 면에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할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쩌면 위험' 때문에 행동반경과 사고까지 단속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이미 밝혀졌듯이 이토록 무모한데다 가끔은 나보다 먼저 낌새를 알아채는 눈치빠른 눈들이 있으니 다행이랄까. 게다가 난 점점 아줌마 감수성에 가까워져 이제는 한숨 돌려도 될만한 근성있는 존재로 탈바꿈해가고 있으니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