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9시 넘어서까지 잠을 안 자던 옥찌들은 등치 큰 사람들의 윽박지름을 귓등으로 흘리며 놀다가 집을 발디딜틈도 없이 어질러댔다. 그러다 그만,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온 이모의 눈에 걸려 혼나기 일보직전! 할아버지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아빤 둘은 무리고 조금 더 편애하는 옥찌만을 데리고 나간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민은 바로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민을 달래고 달래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무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시점에서 정확히 3시간 40분만에 집 안에 정적이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민이 다시 거실을 배회하다 내 방으로 들어와 같이 놀자는 의미로 방을 뒹글대다 나를 불렀다.

-이모

-응?

-내가 노래 불러줄까?

 이전까지 누나와의 크로스로 나는 거들떠도 안 본데다 할아버지만 따라가야한다는 생각에 더더욱 나는 염두도 안 둔 민이 내게 호의적으로 나오자 으쓱한 기분이 들어 아주아주 따뜻한 눈길로 민을 바라보았다. 민은 곧 바닥을 등으로 밀면서 내게 다가와

-이모 NGO 이모 NGO

 이러면서 빙고 노래를 불러줬다. 이 기회를 놓칠쏘냐. 잽싸게 민은 누구 아들? 이냐고 묻었고 금세 '이모 아들' 이란 원하는 답을 받아냈다. 더할나위 없이 기분이 좋아져선 녀석의 보드란 볼에 얼굴을 대고 마구마구 비볐다. 민 역시 이 기회를 놓칠세라 책상에 있는 물건이며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고, 이 녀석이 뭘 부숴놓지는 않을까 염려되면서도 외견상으론 오랜만에 므흣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밖에서 돌아온 옥찌가 옥찌라면 바로 눈이 멀어버리는 할아버지를 조종해 사온 장갑이며 스티커 여러개와 삔과 알록달록한 머리끈에 민은 눈이 휘둥그레져선 나를 내팽개치며 거실로 나가고 나는 그런건 많이 관심없단 표정으로 나가선 이모건 없냐며 옥찌한테 같이 보자고 졸라댔다.

 옥찌는 꽤 의젓한 태도로 자신이 골라온 물건들을 우리에게 선보이며 이거 다 자기가 골랐다며 자신의 안목이 이모보단 낫단 눈빛을 보냈다. 그런 것은 상관 안 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떨어질까 눈먼 민과 나는 이거줘라 저거줘라 하다가 옥찌의 뻐김질에 지쳐버렸다. 그러다 내가 먼저 머리핀만 한웅쿰 가지고선 도망을 쳤다. 나를 따라 하려다 스피드에서 뒤진 민은 누나한테 꼬집힘을 당하고 말았다. 민, 지못미. 옥찌는 할아버지한테 가서 나의 죄상을 고해바치고 아빠는 나를 좇는 척을 하시고 그런 아빠를 피해 나는 다른 방으로 도망을 가고. 이렇게 다 늙은 우리 아빠와 점점 더 늙어가는 딸이 쿵쾅대고 있을 때 옥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들끼리 사온 물건을 가지고 놀고있고. 한참 아웅다웅하던 아빠와 내가 몇걸음도 안 돼 숨이 차선 자리에 앉을 즈음엔

 이 녀석들 졸리운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놀처럼 포근한 표정이 되어선 비척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가방 위엔 내일 작은 손에 끼고갈 장갑이 놓여져 있었다. 양장갑에 굵은 실로 연결된 벙어리 장갑, 참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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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11-1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찌의 안목이 궁금해요. ㅎㅎ
그나저나 '이모 아들' 이라는 말은 최근에 제가 들었던 말들 중 제일 역설적인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Arch 2008-11-19 12:37   좋아요 0 | URL
상당한 수준이죠. 옥찌 컬렉션을 올릴려다 사진이 잘 안 찍혀선.
웬디양님 그런가요? ^^ 역설적인데 나 그 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