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울산에서 일하시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셨다. 할아버지의 등장과 더불어 오랜만에 보는 사람을 향한 옥찌들의 적극적인 편애가 펼쳐졌다. 옥찌들은 새로운 사람만 좋아해! 밥 먹을 때는 서로 할아버지 옆에 앉으려고 싸우고, 무슨 말만 떨어지면 심부름한다며 아웅다웅하고. 나참, 난 순식간에 부엌데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셋이서 눈꼴시게 잘 지내다가 잠시 아빠가 염색하시고 목욕을 하러 간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방에서 잠자코 방안을 어지르며 말썽을 피우는 내게 들리는 그들의 대화
아빠-지민아, 할아버지 담배 어디다 놨어.
옥찌-할아버지. 여기도 많네. 다섯개면 되지 않아?
아빠-여섯갑 있었는데 하나는 어디다 둔거야?
민-(한참 있다가)내가 알려주면 안 혼낼거야?
아빠-(관대하게 껄껄 웃으시며) 응, 말해봐.
대체 어떻게 한걸까? 잠시 뒤 고함소리와 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가봤다.
민인 담배 한갑을 죄다 꺾어놨는지 이불을 걷은 곳에 담배의 잔해들이 무참하게 흩어져 있었고, 아빠는 몇개만 살짝 빼놓은줄 알았는데 다 분질러 놨다며 화를 내셨고, 민은 혼내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진실을 말했다가 화를 당했다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지희는 연신
-지민아, 괜찮지? 누나가 있잖아.
라며 아니! 옥찌가 맞아? 싶을 정도로 침착하게 민을 달랬다.
그 뒤 세 사람은 협상이 결렬된 세 정상들처럼 어색하게 있다가 고기를 먹으러 가는 자리에서 화해 무드가 무르익다가 선뜻 마이쭈를 사주는 할아버지의 호방한 면에 감동받아 극적으로 예전 관계로 돌아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옥찌들은 할아버지 손만 잡겠다고 이모를 밀치기도 했다. 다행히 나의 들러붙는 재주에 홀딱 속아 몇번 손을 잡아보긴 했다.
집에 돌아와 놀이터 가기 전에 민은, 쌀통에 환약을 집어넣어 이모가 혹시나 심심할까 배려를 해줬고 아빠는 아빠대로 베란다에 나가셨다가 화분을 깨주는 가히 민의 할아버지다운 면모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오늘은 옥찌의 생일

지희 고모가 떡케잌을 만들어서 보내주셨다. 저 귀퉁이 갉아먹은 자국은 물론 민이 솜씨. 촛불을 몇번이나 불어도 못끄고 노래 부를때는 쑥쓰럽다며 입모양으로만 따라부르런 옥찌.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예뻤던 옥찌.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등등. 잠자는 옥찌의 귓가에 가만 속삭이고 싶은 말들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