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찌들이랑 옷정리와 손씻기를 마치면 막내이모가 보낸 편지를 읽어보기로 약속했다. 아침에는 그렇게 느릿하게 움직이던 녀석들이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옷도 잘 챙겨놓고 얼굴도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고 왔다. 이렇게 뭐가 잘 맞는 날이 참 오랜만이란 생각. 역시 옥찌들은 당근 효과가 더 잘 맞는걸까? 아니면 오늘은 뭐, 이모 기분 좀 맞춰주자고 서로 합의를 봤던가.


막내의 편지


 막내가 그림도 제법 그린다 싶었는데 그림은 같이 사는 친구가 그려줬다고 한다. 자기 그림이며 뱃살공주 카드를 보니까 기분이 좋아서 자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옥찌. 특히나  '선물 사갈게'란 말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아마도 호주에 있는 동생은 '선물, 선물' 이란 옥찌 말 때문에 잠깐 귀가 간지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한테 카드를 맡기고 저녁 준비를 했다. 반찬을 꺼내고 계란국이 먹고 싶다고 하길래 김을 넣고 국도 끓였다. 부리나케 식탁으로 온 민은 한번 휙 보더니 왜 반찬이 네개 뿐이냐며 자기가 직접 봐야겠다며 냉장고문을 열고 뭐 더 내놓을게 없는지 살펴봤다. 요 녀석 하는짓이 웃겨서 엉덩이를 툭 쳤더니 반사적으로 똥치똥치란 말이 나왔다.

 국도 다 끓어가고, 밥도 다 됐는데 옥찌가 오질 않고 베개에 얼굴을 대고 있는게 보였다. 가보니까 이 녀석, 그 사이에 울었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옥찌, 왜 그래. 괜찮아?

-응, 내가 이모 편지 보고 슬펐어.

-이모 보고싶어서?

-응, 막내 이모 보고싶어서.

 선물 때문에 그러는게 아니냐고 농을 치려다 옥찌의 작은 몸을 꼭 안아줬다. 벌써 그리움을 알아버리면 어떡하란 말야.

 민은 누나의 눈물쯤이야 하는 식으로 부지런히 부침개(그렇다. 추석에 만든거다.)를 먹기 시작했고, 옥찌도 내가 얼굴 테크토닉을 보여주자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걸 놓칠리 없는 민은 웃다가 울어서 엉덩이 치푸리둥통둥 한다고 하는데 옥찌가 엉덩이에 뿔나는거라고 정정해줬다. 이쑤시개에 고기며 파를 꽂아 만든 산적을 먹던 민은 이쑤시개를 가리키며

-이모, 이거 이에 뭐가 있으면 빼내는거랑 비슷해.

 라고 말해줘서 행여나 이쑤시개 용법을 몰랐을 날 가르쳤다. 용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온 반찬 중의 두개가 김치라며 찌개를 하라며 옥찌에게 타박을 받고, 자기들은 0등이랑 1등 했는데 이모는 왜 꼴등으로 먹었냐며 추궁을 당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옥찌들이랑 밥 먹으면 흘릴까 딴짓할까 신경쓰이긴 해도 밥을 먹는지 뭘 먹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긴 해도 좀, 즐겁다. 이만큼이나 식사시간이 즐거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밥을 먹고 옥찌는 숙제를 하고, 민은 자기들 책상 다리의 동그란 접지면을 죄다 풀어놨다. 난 나대로 초저녁 잠이 와서 드러누웠고. 이때를 안 놓치는 옥찌, 잽싸게 찐빵 놀이 하자며 몸을 부딪혀왔다. 역시나 발빠른 민도 누나 위에 드러눕고. 아이들 배며 엉덩이며 발바닥을 간지르자 깔깔대는 소리가 쏟아지는데 딱 이 소리를 아득하게 들으며 잠자고 싶어서 혼났다. 엄마가 들어오시길래 좀 살았다 싶은 생각으로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어서 10시쯤 깼을까. 아직도 안 자고 라면 한개와 감 두개, 기타 등등을 먹어치우고 여전히 신나게 노는 옥찌들.

 방으로 불러와서 책 읽어주려고 했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논댄다. 그래서 뭘 하고 노는지 봤더니


니들이 타짜냐
 

 아직 짝을 맞추진 못하지만 비슷한 그림이 있으면 모아놓고, 책을 꺼내선 그 위에 화투를 늘어트려 놓았다. 타짜와는 비교 안 되는 손놀림이지만 옥찌의 쭉 뻗은 다리는 흡사 정마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나 이거 아동희롱이 아닌지 모르겠단 생각이 퍼득 들기도 하고.

 타짜놀이를 마친 민은 잠들고, 옥찌는 오늘따라 잠이 안 오는지 내게 와선 뭐하는지 물으며 종이를 달라고 해서 알라뷰란 말과 하트가 숑숑 들어간  편지를 쓰다 잠이 들었다. 편지의 수취인은 말 안 해도 막내란걸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난 선배가 자신이 과외했던 얘기를 해주면서 체벌이 잘못된걸 알면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소리를 한적이 있다. 역시나 발끈해선 현실적으로 어렵고 어쩌고의 얘기를 했는데 선배는 내 말을 찬찬히 듣고선 '그래도 체벌이 아니란건 알고있지'라며 재차 물었다. 내가 '동의하지만'을 시작으로 부연설명을 하려고 하자 선배는 체벌을 안 한다는건 이상적인게 아니란 얘기를 들려줬다. 자신도 과외를 하면서 몇번이고 뛰쳐나가고 싶고, 막말을 해버리거나 체벌을 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옳지 않고 그게 어떤식으로든 아이의 자율성을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 더 못하단건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상으로 치부해뒀던 것들이 실은 내가 하기 싫고 어려워서 포기한걸지도 모른 일이란 거였다.

 오늘 아침에 너무 바쁜데 민이가 떼를 쓰고 옷을 안 입었다. 내가 도와주고 좀 더 몇번 더 타이르고 잘 알아듣게 설명하면 됐는데 난 불같이 화를 내며 민이를 때렸다. 나의 이상은 먼게 아니라 이상을 이상으로만 보려는 시야가 좁았던거고 실행하려는 맘이 부족했다. 아침이면 절대로 체벌이며 소리지르는건 안돼라고 다짐하는데 이게 줄곧 다짐으로만 끝나서 옥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민에게 저녁이면 미안하단 말을 하는 것도 이젠 그만둬야지. 미안하단 말만큼 많이해서 진정성이 떨어지는 말이 또 있을까.

 처음엔 소소한 저녁풍경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건 초저녁 잠 탓에 주저리주저리 말이 늘어졌다.

 웃자고 하는 세줄 요약

1. 옥찌들은 타짜가 아니다.

2. 그럼 타짜는 누구냐.

3. 판전체를 꿰뚫지만 늘 돈을 잃는 우리 엄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스탕 2008-11-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성이 유치원때부터 화투 알려줬어요 ^^
엎어놓고 똑같은 그림 찾기부터 시작해서 솔,매조,사쿠라,흑싸리,난초,목단,홍싸리,공산,국화,풍,똥,비 다 알려줬죠.
그런데요.. -_- 지금은 다 잊었나봐요.
이녀석도 타짜되긴 그른것 같아요.

Arch 2008-11-12 10:35   좋아요 0 | URL
정성인 화투 말고 다른 재능이 많잖아요. 요구르트로 통신도 하는데^^ 전 제가 저렇게 거창한 이름들을 잘 몰라서 가르쳐주진 못해요. 화투칠 때 저런 이름 대면서 치면 정말 타짜같단 느낌이 많이 들어요. 역시 타짜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