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술잔은 기울고

싼게 비지떡이란 말뿐인 말은 잠시 접어둬도 괜찮다. 비지떡이 아니라 가끔은 횡재를 하는 수가 있으니까. 푸짐하기 그지없는 파전과 새콤달콤한 술. 이건 가짜 서평처럼 칭찬 일색의 품앗이는 아니다. 다만 아주아주 편애하는 맘이 깃들인건 살짝 밝히는바다. 어쨌든 난,

그곳에 들어선 순간 그곳의 분위기가 맘에 들어버렸다.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백열등도, 음악도, 심지어 탁자까지 맘에 들었다. 불빛은 그윽해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부드러운 그늘을 드리웠고, 음식 맛은 물론이고 투박한 그릇까지 맘에 쏙 들었다. 물론 무엇보다 같이 자리를 했던 분들이 더 맘을 당겼다. '자, 몇위!'라며 한번씩 던지는 멜기님의 틈새 유머와 역시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푸하님의 뜬금 질문.(푸하님 이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지셔서 곤란하다고 이의 제기하시면 말이죠, 사실 푸하님께선 다른 매력이 출중해 이렇게 조금 안티 비스무레하게 가도 괜찮을...거란, 블라블라, 푸하님께서 옆구리 찔러 제대로 말해란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 얘 왜 이래!) 아프님은 뭐가 즐거운지 혼자 흐뭇해하시고. 난 나대로 벽에 기대 가끔 발을 쭉 폈다가 꼼지락댔다. 차가운 숭늉과 얼음으로 혼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사실, 민들레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에 예상 귀가 시간을 넘어섰다. 지금쯤 자리에서 일어나야 군산까지 가서 집에 들어가기 알맞을거란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눌러 붙은 엉덩이가 쉬이 떨어져야 말이지. 이실직고 고백하자면 그 자리가 10점 만점의 10점일 정도로 최고로 재미있거나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신나서 죽을만한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우리는, 게다가 나를 제외한 세분은 안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말씀이 없어서 어색하게 보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좋았던 것이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마음 씀씀이를 봤기 때문이라면, 책을 좋아하고 책 얘기를 할 수 있고 점점 책장을 넘기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눈빛들 때문이라면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설명 이전에 너무 느껴버리는 타입 핑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의 대화는 핑퐁처럼 착착 감기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엉뚱한 애며 4차원으로 규정짓기 좋아하는 시선에서 비껴나 '난 그냥 책을 좋아해'란 공통분모만으로 많은 부분들이 메워질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서로간의 간격이 좁아지는건 분명히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기 전인데도 미리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듯한 느낌과 같았다. 그건 서재를 통한 선행학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수유주와 오미자주로 바싹 달궈진 입에 얼음을 몇 바퀴고 굴리며 대화의 언저리쯤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오랜만에 말들이 상식적인 망토를 걸친걸 비실비실 웃으며 지켜봤다. 점점 맛있게 취해가고 있었다.

멜기님이 먼저 일어나셔서 지하철역까지 바래다드리기로 했다. 멜기님께서 푸하님과 아프님과 악수를 하다가 나를 쏙 빼길래 뭐 없나 싶은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집에 꼭 들어가셔야해요.(오늘 중으로!)

란 알고보니 복선인 말을 남기셨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그토록 자신했던가, 그 밤을, 그 밤의 행여 노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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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2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오늘도 음주인가? 갗는 페이퍼가 두번 올라왔어요~ㅎㅎㅎ
말들은 상식적인 망토를 걸쳤는데~~ 페이퍼는 주인의 음주에 취해버렸나?ㅋㅋㅋ
즐거운 만남을 살짝 엿보고 갑니다~ 보기 좋았어요!!

Arch 2008-10-27 10:28   좋아요 0 | URL
하악하악, 나 자꾸 순오기님께 지적만 당하고... 하나 지웠어요. 그게 알라딘이 갑자기 닫혀서 안 올라갔길래 다시 올린건데 말입니다. '같은'인데 나도 막 배웠어요.

웽스북스 2008-10-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라고라고라...노숙이라고라고라....

Arch 2008-10-27 22:31   좋아요 0 | URL
4장 지나서 5장쯤에 내막이 나오는데 흥미 떨어지게 글을 늘이는 바람에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웽스북스 2008-10-27 23:2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길래. 5장까지 가는거에요? ㅎㅎ
알고보면 한 7장쯤 있는? ㅎㅎㅎ

Arch 2008-10-28 00:59   좋아요 0 | URL
뭐 우려먹으려면 그 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