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천절날, 지연이랑 옥찌들이랑 산에 다녀왔다. 전에는 산책로로 갔다왔는데 산을 오르는 맛도 있어 옥찌들에게 오르막길을 보여주며 자신있냐고 물었더니 강한 자신감을 보여줘 산을 타기 시작한지 이주째. 좀 타봤다고 막 앞서가는 옥찌들. 난 지연이와 손을 잡고 천천히 올랐다. 가면서 뭐뭐로 시작하는 글자 놀이를 했는데 응용력과 똥치 좋아하는 옥찌는
-눈눈눈자로 시작하는 말, 눈탱이
-잠잠잠자로 시작하는 말, 잠지
-코코콧자로 시작하는 말, 콧구멍
-똥똥똥자로 시작하는 말, 똥치.
하면서 혼자 신나 어쩔줄 몰라하는데 아직 단어 초보인 민은
-가가가자로 시작하는 말,
토마토.
이래놓고 혼자 자랑스러워 어깨를 으쓱거렸다.
2.
힘들어하는 지연이와 손을 잡고 가라니까 자기들 속도에 취해 야마카시처럼 뛰어다니던 옥찌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거다. 그래서 민에게 부탁했더니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도와줘야겠다는 표정으로(이런 표정은 어디서 배우는걸까?) 내려와선 지연이 손을 잡고 가는 민. 지연이와 민은 동갑인데도 괜히 으쓱해졌던지 민이 지연에게 의기양양하게 하는 말했다.
-지연이도 네살, 오빠도 네살
남자 아이들은 이 오빠란 말이 왜 그리 좋을까.
한참 산을 오르던 민은 산이 무거워서 자꾸 발이 안 떼진다고 꽤 있어보이는 말을 해줬다.
3.
오르막길이 다하고 내리막길이 나오자, 그동안 부진했던걸 일소하려는 듯 정신없이 내려가는 지연. 뒤쳐지자 내심 안타까운 옥찌는
-어린애가 왜 저렇게 빨리가.
라며 속상해했다.
4.
다시 산책로로 나와 걷고 있는데 강아지가 지나가자 민이가 또
-멍멍아, 멍멍아.
이러면서 메롱메롱 하자, 주인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민아, 멍멍이가 지민이 싫나봐. 이리와. 이모랑 같이 가자.
이러니까
옥찌는 냉큼
-너 코파서 싫대.
이러고.
5.
민이가 웃으며 막 뛰어가는게 예뻐보였던지 어떤 여자분이 민이 어깨에 손을 살짝 대고선 웃자, 민 왈.
-이모, 사람이 만졌어.
그치, 사람이지.
6.
내가 쓰던 모자를 옥찌가 가져가서 써보더니 나, 이모야 이러니까 민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이모, 이모. 이러면서 자꾸 불러대니까 한마디 안 하고 못배기는 옥찌.
-앤간히 좀 불러라.
7.
집에 와서 마늘까며 텔레비전을 보는데 신나는 음악이 나와서 막 몸을 흔들어보았다. 옥찌도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며 웨이브 비슷한걸 흉내내는데 귀여워서 웃었더니
-아, 왜 웃어. 이모도 아까 춤출 때 추접시러웠거든.
이러는데 점점 말조심 해야겠다는 경각심이 생기고야 말았다.
8.
민과 포도를 먹다가 치우려고 몇개 남은걸 엄마랑 내가 얼른 먹어버렸더니 옥지민, 부아가 잔뜩 나선
-야, 너네만 먹냐!
9.
무슨 말 끝엔가 이모랑 고모 중에 누가 이쁘냐고 물었더니 단박에 이모!라고 대답하는 옥찌. 한번 더 떠볼려고 너 이모랑 있을때만 그렇게 말하는거지, 너 그럼 고모랑 있을때는 뭐라고 말할건데 라고 물었더니
-고모랑 있을때는 이런 말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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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걸 틈틈히 적는 날 보는 옥찐
-이모는 뭘 그렇게 적어. 풍신나게.
아, 정말 이런 말을 다 어디서 배우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