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애기들 엄마도 일이 있고, 마침 다른 애들도 방학 중이라 학교에도 가끔 오고 해서 나도 옥찌들 데리고 직업 학교에 나왔다.

 가는 도중 택시 안.

 -옥찌, 민아. 오늘 이모 공부하는데 가잖아. 다른 이모 삼촌들도 공부하니까 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약에 떠들면 이모랑 단둘이 얘기 좀 해야해. 대신에 안 떠들면 말야. 울 애기들 좋아하는 얼음 먹으러 가자.

-무슨 얼음?

-응, 팥빙수.

-와

 옥찌들이 탈때부터 아이들한테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신 운전 기사 아저씨도 한마디 거드셨다.

-좋겠네. 아저씨도 팥빙수 좋아하는데. (아니, 무슨 메아리 언니도 아니고)

 뭐,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지속시킬줄 알았는데 민이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그런데 이모, 돈은 있어?

 순간, 택시 기사 아저씨는 어색하게 웃고 계셨지만, 은근 내 행색을 살피셨다.

 나도 억지로 웃으며 민이에게 돈은 있다고 말 했지만 분위기는 좀 야릇했다. 돈 있다며 지갑을 꺼내서 보여주기도 그렇고, 택시비는 있다구요라고 선언하자니 뜬금없고.

 평소에 옥찌들이랑 돌아다니다보면 뭘 그렇게 사고 싶은지 이것저것 사주라고 약속을 받아내고, 윽박지르고 장난이 아니어서 일관되게 '이모 돈 없어'라고 말하고 다녔었는데 이게 또 이렇게 활용이 되는구나.

 괜히 부산스럽게 지갑 뒤져서 택시비를 내네 마네 하다보니 학교에 도착.

 오전에는 옥찌가 어디서 가위를 얻어와서 뭘 만들어준다, 편지를 써준다, 민이도 부잡스럽게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난 나대로 다른 사람들 수업 듣는게 방해될까바 눈을 부라리고, 옆구리를 찌르고, 협박하고. 민이에게 그렇게 떠들거면 생각의 의자에 앉을거란 말을 했더니  메롱하고 도망가고,

 점심 시간엔 카레 언니가 월요일이 아닌 오늘 카레를 가져온 바람에 카레 잔치를 했다. 적당히 익은 감자랑 당근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오전에 사람들이 간식 나눠준걸 먹는다고 옥찌들은 밥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이곳은 정말 울 애기들하고는 안 맞으려니 해야는데 욕심을 부려 먹이려다 그만 민이를 울리고, 언니들은 자기 먹고싶을 때 먹게 놔두라고 말리고. 난 여지껏 쌓아온 되먹도 않는 이미지를 '잔소리쟁이'로 바꿔먹고. 에효.

 그렇게 간신히 점심 시간을 보내고나니 민이는 꾸벅꾸벅 졸고, 지희는 재미있는거 하자고 보채서 다시 급피로감이 몰려오는데 

그때, 총각이 나타났다.

 뒷자리에 앉아서 게임만 하는줄 알았던 총각. 말수가 적어서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던 총각. 총각은 후광을 드리우며 나타나선 칭얼대는 옥찌를 데리고 갔다. 그리곤 노련미 넘치는 솜씨로 옥찌랑 놀아주기 시작했다. 슈가슈가룬을 좋아하는 옥찌에게 쌍둥이 공주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주고, 코디하기 놀이를 컴퓨터로 슥슥 같이하고, 옥찌는 옥찌대로 삼촌이 잘 놀아주니까 좋다며 방실대고. 난 갑자기 총각에게 무한한 애정까지 느끼는데,

 다른 틀로도 사람들을 많이 보지만, 옥찌들과 있다보니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제일 먼저 보인곤 한다. 자신은 아이들을 아주 싫어한다는 부류도 있고, 정말 잘 놀아준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하는 축엔 기껏 괴상한 표정이나 지어대 아이를 울려대는 사람이 있고, 달고 색깔 요란한 군것질거리를 사주는 축도 왕왕 있다. 하지만 정말 아이랑 잘 논다고 자신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밟아나가는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뭘 좋아하는지, 어떨때 즐거운지, 뭘 하고 싶어하는지를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말이다. 무턱대고 자신이 규정한 아이 다루는 메뉴얼대로라면 친해지기는 커녕 놀림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놀림면에서 옥찌들은 최강이고.

 총각은 오후가 되면서 잠이 들었고, 정답게 얘기하던 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총각의 다정다감한 매력만은 지속될 것 같다. 지속되던 매력을 붙잡고 며칠 전부터 뭘 싸와서 준다 어쩐다 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고, 가끔 옥찌 소식만 물어본다. 아무래도 늘 그렇듯 혼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한게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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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2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각들이, 결혼 안한 남자들이 의외로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경우 많아요.

Arch 2008-08-21 10:45   좋아요 0 | URL
그런 총각들이 요새 자꾸 예뻐보여서. 저 이런 말 하니까 굉장히 무르익은 느낌이 드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