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직업학교 사람들 얘기 좀 할게요.

밥을 먹다가 S가 기가막히다는 듯이 손언니 얘기를 했어요.

-손언니가 나보고 어리게 입고 다닌다고, 그래서 내가 언니, 제가 몇살로 보이는데요? 이러니까 뭐라고 한줄 알아요? 니, 26살 아니냐. 이러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언니 저 아직 20살이거든요. 그러니까 손언니가 가타부타 얘기도 안 하고 그냥 휙 사라졌어요.

 전에 채식주의자 손언니 얘기에서 미리 눈치채셨겠지만, 손언니가 이렇게 엉뚱하답니다.

-S야, 그건 그렇고 너 왜 그렇게 부르텄어.

-오빠랑 옷을 같이 사기로 했는데 내가 살을 뺀대니까 다음에 살 빼서 사라고 해서요.

-너, 살빼면 그때 사면 되잖아.(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

 그러자 S가 눈을 이글거리며

-지금 사야하는데. 지금 오빠 카드 갖고 있는데

라며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시긴 하는데 사실 난 S가 하는 짓이 귀엽기만 해요.

 예전에 안지 얼마 안 됐는데 커플끼리 나란히 같이 공부를 하길래 넘겨짚고 물은적이 있어요.

-둘이 친구 소개로 만났나봐.

그랬더니 단박에

-아니요. 채팅 했는데 저랑 채팅한 사람 아는 형이었어요. 그때는 정말 별로였는데 이렇게 계속 만나네. 미운정이 다 들어버려서.

 요즘 다들 알게 모르게 인터넷으로 사람을 만나잖아요. 그런데 이게 의식이 부정적으로 반영된 부분도 있지만 당사자들도 왠지 인터넷으로 누군가를 만났다고 하면 가볍고, 쉽게 생각하다보니 막상 사귀거나 할때면 괜히 돌려말하고 어떻게 만났는지 잘 안 밝히는 편이잖아요. 밝히더라도 채팅보다는 동호회에서 여럿이 만났다 이런식으로 말끝을 흐리거나. 물론 전 혹시나 어쩌면 간절히 알라딘에서 누군가를 만나 좋은 감정이 생긴다면 막 떠들고 다니겠지만.(제가 이래서 실속이 생길려다가도 달아난답니다.) 그런데 S는 망설임 1초는 밥알 흘리는 것보다 안타깝다는 듯이 망설임없이 술술 털어놓더라구요. 처음엔 너무 어려 세상물정(난 알고?)을 잘 몰라서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꼭 그것만이겠어요. 굳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에서 그들의 편견이 단단하단걸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견해가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굳이 알아서, 자신의 의식까지 검열하지 않았으면...

 연장선상에서

 밥을 먹다가 S가 자주 연발하는 말은

-밥이 줄어드니까 아까워.

예요. S는 좀 뚱뚱해요. 알겠지만 뚱뚱한 사람이 밥 먹을 때는 두가지 수사에 걸려서 파닥거리죠. 밥을 잘 먹으면 저렇게 잘 먹으니까 살이 쪄. 안 먹으면 안 먹는데 왜 살이 찔까, 분명히 집에 가서 많이 먹을거야란 억측. S는 간단히 두가지 수사를 넘어선데다 그걸 유머로 풀어내는 여유까지 지녔죠. 물론 전 S를 잘 모르니까 그 아이가 자신의 몸 때문에 고민한다거나 유머 외의 관습적인 생각으로 자길 괴롭힐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단적으로 보는 S는 그저 먹는게 정말 좋아 맛있게 먹고, 씩씩하게 재미있는 얘기를 할줄 아는 친구예요.

 그런 S가 어느 날은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말을 했어요.

-언니는 약간 4차원 같아요.

-그래? 가끔들 그러더라. 난 정말 평범한데.

-사실 전 16차원이에요.

-그래? 역시나. 내가 4차원인줄은 모르겠고 난 네 캐릭터가 부러운데.

-봐요. 맞아맞아. 4차원 맞다니까. 내 캐릭터가 부럽다는 사람은 또 처음이야. 뭐가 부러운데요.

-그냥. 나오는대로 막 내뱉는데 그 말들이 너무 재미있는거? 긍정적이고 자기 확신에 찬거?

 S는 이건 또 뭔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절 쳐다봤고, 저는 4차원에 사실 만족 중이라 감히 16차원까지는 넘볼 수 없겠다고 얼버무렸죠.

그리고 다시 또 제게 한번 더 얘기를 한게

-언니는 왜 밥을 천천히 먹어요. 봐봐, 뭘 뜰때도 느려. 언니 왜 내 물 먹어요?

-얼음 먹으려고.

-것봐요. 언닌 4차원이 맞아요.

 그게 왜 4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웃기고, 가끔 능청맞고, 줄곧 식탐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늘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는 말 안에 숨겨진 귀엽고 맹목적인, 그냥 보고만 있어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오게 할 수 있는 면에선 더더욱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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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8-1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6차원이에요 라니 무려 4의 제곱 ㅋㅋㅋ
S양 이야기 덕에 웃었어요 으하하하 하고 ㅋㅋㅋ

Arch 2008-08-19 09:23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이 웃으면 저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