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로 묶여있는 것처럼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한계치에 다다른 잠수의 끝처럼 숨이 가파왔다. 숨은 가프고 가슴을 커다란 손으로 누르는 듯 아팠다. 아프다고 소릴 지르고 싶은데 목안에선 굵은 손아귀가 성대를 움켜쥐고 놔주질 않는다. 말과 울음을 뺏긴채 몸부림치다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사과 먹고 씩씩하게 잘 자라는 말을 해주던 그. 그가 나온 꿈. 한동안 꾸던 행복 컬렉션 제품 번호 1호처럼 방실방실 웃는 가족과 나오는 모습보다는 생생하지 않았다. 멋쩍은 턱시도를 차려입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엉거주춤 꿈 특유의 뿌연 배경 앞에 서 있던 그. 나에 대해서, 혹은 그에 대해서 얘기를 했던가. 나는 그를 보면서 지금은 괜찮은거지, 별다른 감정이 안 남은거지, 난 가끔 이렇게 꿈까지 꿀정도로 그립... 더라는 말을 주억거렸던가. 목울대가 울렁거릴 뿐이다.


 턱 아래에 깊은 우물이 있어 한동안 푹 잠길 수 있었더라면... 그를 잃어버린 상실감이나 미진한 얘기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다. 한창 어린 나를 한창 바쁜 그가, 고만고만한 거리를 놓고 바라봐준 사실. 두려워서 멀어진 것도, 너무 가까워서 얼굴에 난 점까지 셀 지경도 아닌 딱 일정한 자기력이 둘 사이를 배회하게끔 만든 거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게 처음으로 강준만 선생님을 알게 해주고, 다짜고짜 화이팅이 아니라 공감하고, 어쩌면 부질없을 일들에 대한 말을 아껴두며 힘내란 말을 해준 것. 젊은, 소용없는 변덕에 마음 쓰며 선의로 해석해준 맘 씀씀이. 그렇게 사소했던 일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아침을 무겁게 열줄이야. 가끔 이렇게 예고없이 그가 찾아오는 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 내리는 이 비가 내가 내리는 날이란 유치한 비유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매번 꽃꽂고 고개 살랑살랑 흔들며 뛰어다니는 것마냥 비맞기 좋아하는 주제에 오늘은 울적하다며 우산까지 챙겨갖고 나서는걸 보면 wish가 아닌 dream의 부작용에 대한 생각까지 날 정도이다.

 비가 내리고, 다시 또 내리고 기온이 내려가면 가을이 오겠지. 가을이 오면 가을 타는 여자가 돼서 낙엽이 쌓인 거리를 휘젓다가 우연인듯 내 손가락 닮은 나뭇잎을 주워와 책 속에 묻어둬야지. 많은 날이 지난 후 나뭇잎을 꺼내보면 종이 사이에 잠자고 있던 꿈들이 되살아날런지도. 그때쯤이면 나의 우물도 낡은 두레박이 자길 퉁퉁 울려대도 그저 그런, 혹은 참 괜찮은 두레박이군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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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8-1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순오기 2008-08-1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알겠는데~ 글이 너무 이뻐요!^^

Arch 2008-08-1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그저 웃으시니 저도 뭐^^/ 순오기님 제가 글만 이쁜게 아니랍니다. (이런! 닥쵸! <--정말 이거 해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