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돌아다니다 보면 김치 담그는 광경이 생각난다. 소금에 간간하게 절인 배추를 받침에 바쳐 물이 다 떨어지길 기다린다. 쪼르르 떨어지는 물소리마저 경쾌하다. 갖은 양념을 준비해 배추를 버무리는 것도 처음 김치를 담그듯 조심스럽다. 배춧잎 하나하나마다 정성껏 양념으로 무치고, 버무리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아내는 과정. 김치 만들기 23p를 직접 시연하듯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일관되다. 전기작가들이 곧잘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일관된 큰 틀을 좇다보니  한 개인의 삶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는거라고 한다. 그치만 대체 그 틀이란게 있는건지 의심스러운 나로선 '정체불명' 서재의 정체성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서재 김치를 담그는 나는 서툴고, 우왕좌왕하고. 알스님 말처럼 과연 '네 정체는 뭐냐'싶은 순간이 많다. 나대기 좋아하고, 딴지걸기 좋아하면서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애들 노는 것만 구경하고.  머릿속에 돌아다닌걸 전혀 연관없이 툭 꺼내놓곤 엉뚱하단 소리를 듣기 일쑤이며 주위에서 결혼해라 어쩌라 할때는 귀찮소로 일관하다 달 밝은 밤, 정말 그 장면을 떠올려보곤 쑥쓰러워서 결혼식을 대체 어떻게 하냐고 얼굴을 붉히는 나는 뭔가.

 사실 카테고리만해도 그렇다. 메피님처럼 아주 근사한 제목을 달지도 못하고, 순오기님이나 웬디양님, 마노아님처럼 다방면의 카테고리를 장착하지도 못하고. 여러모로 부실과 잡다함을 무기로 페이퍼만 달아대고. 이건 서재라기보다는 블로그라고 해도 될만치 책 얘기는 없고. 그렇다고 페이퍼로 승부를 보는 산사춘님만한 내공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재의 카테고리 정리만으로도 하루를 꼬박 허비했다.

 이슈 브리핑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올리다가 금세 아프님의 막강한 의욕과 내용에다가 넘치는 열정에 턱도 없이 못미치고, 느긋하지만 날카로운 드팀전님만도 못하고. 발빠른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차니스트답게 여러모로 삐긋댄다. 그러다 계속 ~ 만도 못하다보니 비교에 비교에 비교를 낳다보니 정작 내가 정말 서재에서 뭘 하고 싶어했는지도 까먹고 말았다.

 나는 서재에서 뭘 하고 싶었을까. 뭘하고 싶은걸까?

 알라디너랑 같이 알콩달콩 댓글 놀이도 하고 싶고, 서재의 달인이란 칭호도 듣고 싶고, 책선물도, 정모 모임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건 같은 책을 읽고, 얘기하고 공감하는. 온전히 알라딘에서만 더욱 빛을 발하는 책과 관련된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바램이었다. 그런데 자존감 없는 인간답게 이리저리 휘둘리다 정작 내가 바랐던건 빛을 바래고, 이건 즐찾수와 방문객수에만 열을 올리는 지경이니,  제대로 반성해야겠다.

 사실 내 위치는 굳이 내가 발악을 한다고 찾아지는건 아닐거다. 도리어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묘사한 것과 비슷한 수순이 되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사랑이, 이렇게 노을처럼 젖어드는걸 수도 있는거구나.

 알라딘이, 이렇게 조용히 내게 다가오는구나.

 욕심 좀 버리고, 어깨에 힘 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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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다 아니고, ~와는 다르게! ^^

Arch 2008-06-23 23: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순오기님!! 목포는 잘 다녀오셨어요? 다름다움이 아름답다잖아요. 제가 아름답단건 아니고.^^

웽스북스 2008-06-2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내가 다방면의 카테고리라니 말도 안돼요 ㅋㅋㅋ

Arch 2008-06-24 09:4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아님 말구. 그래도 전 좋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