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작정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알게 모르게 개개의 사정을 드러내는 알고자하는 욕구로 질문을 한다.

 밥 먹었니. 뭐 좋아하니.
이건 일상적 질문의 유형. 이럴땐 응 아니오 내지는 아무거나라고 답해도 무방하다. 

 학교는 어딜 나왔니. 부모님은 무얼 하시니. 넌 뭐하고 있어?
이것 역시 흔히들 하는 질문이지만 나같은 경우엔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편견을 조장한다거나 너무 뻔하고 내 진면목을(그런게 있기는 한거야?) 알기도 전에 내 배경을 진단하는거 아냐라고 비분강개하며 말하고 싶지만 기실 어렴풋이 당신도 공감하고 있듯이 그닥 내세울게 없는데다 내세울게 없는 답변이다보니 행여 오바하거나 무심하게 말하기조차 상당히 꺼려진다는 것. 오바하면 저거 자격지심이라고 볼 수 있고 무심하게 말하면 단련됐다고 말할테니. 피해자 놀음의 다름 아니다.


 그 다음 질문으론 어떤 체위 좋아하니. 자위는 어떻게 하니란 식의 성적인 코드로 중무장한 질문들.
 솔직한걸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나이지만 이런 질문은 하품 먼저 나와서 그냥 아무렇게나 답하곤 한다. 침대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자와의 이런 덜떨어진 질문을 나눠받고 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그걸 또 당당한 여자 운운의 꼬임에 넘어가 술술 얘기하는 나란 애의 정체성이란.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살짝 동할지도 모를 질문들을 받고 대답도 제대로 못한채 쩔쩔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를 만나는거, 왜 하는거야? 외로워서나 심심해서인거 말고. 정말 니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거야.
-욕구라... 사람들 알고 싶고 내가 어떤식으로 반응하고 움직이는지 궁금해. 시뮬레이션 체험은 아니고 뭐라고 해야나. (아 이 그지같은 말빨.)

 넌 꿈이 뭐니.
-내 꿈은 세상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책을 쓰는거야. 그 책이 말야. 내가 죽은 후에도 남는다면 끔찍하게 기분 좋을 것 같아. 약간의 허영심, 아니 다량의 허영심을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꾸준히 생각한거거든. 그래서 지금 내가 붕 떠있고 친척 모임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썩소만 날리고 있어도 조급하진 않아. 사실 좀 조급하기도 하다. 아닌척 하는거지.

  외로울때 뭘하니.
-요즘은 주로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요리를 해. 비상시엔 무한도전으로 1시간 분량의 위안을 얻어. 지금 일을 안 하고 있으니 사람들도 곧잘 만나는 편이고. 


 그리하여 나의 허접한 답변은 그가 나란 인간을 느끼게하는 계기를 마련해줬고, 차마 난 그에게 같은 질문을 하진 못하게 만들었다. 이건 주로 내가 하는 질문의 유형이었으니 선빵을 맞고 질문의욕을 상실했다고 해야나. 그런게 왜 궁금하냐고 하면 뭐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사람을 좀 더 알고 싶은데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자신있는 신체부위가 어디인지 아파트 시세는 어느정도인지를 물어선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해본다.

 그동안 인터뷰어처럼 질문만 해대서 이실직고 좀 섭섭했다. 나의 모든 존재를 오감으로 받아들인다는 사람도 있었고 차차 알아가는거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난 비유적인 표현이나 농담도 구분 못하는 메타포치에다 차차 알아갈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인연이란게 복잡다단한 삶에서 가능한지 알 수 없어서 그들의 진의조차 의심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전에 본 귀여운 녀석이 대화 중에 꺼낸 얘기 중에 '아는 여자'의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그동안 늘 아는 여자라고만 일컬어진 이나영에게 정재영이 헤어지면서 이름이... 나이가... 라고 묻는 장면 말이다. 혹시 우린 그저 아는 사람 아는 여자로 지칭된 내가 아니라 어떤 색을 지니고 어떤 색을 발현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관심을 일찌감치 접고 있는건 아닐까. 나를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만남의 수요를 재느라 정작 상대방을 알아주고 그 존재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것조차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상대에게 집중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노력하는거고, 적어도 자위하듯 표현 욕구만 앞세워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하진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대화가 통한다는게 어떻게 말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그건 분명 공감의 힘이고 나를 알아주는 상대에게 자극받아 더 그를 알아가는 과정일진대.

 질문에 이력이 나면 다른 형태의 소통 방식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지난한 내 식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다만 그 방식이 무례하거나 집요한게 되지 않도록 세련된 포즈로 진의를 표현하는 것과 일방적인게 되지 않도록 좀 더 타이밍과 질문의 질에 대해 고민해야겠지. 과연 그게 잘될지 한참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사뽀로 덕에 아침부터 알딸딸하다. 이 나른한 감각이 일요일의 더없이 나른한 기분과 조응하면 어떤 색이 나올까. 난 매일매일 내가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의 일요일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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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6-1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저로 하여금 이런 저런 얘기를 마구 꺼내놓고 싶게 하는 글이네요.
그래서 그냥 추천만 드리고 갈렵니다 ^^

Arch 2008-06-1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댓글 다셨으면서^^/ nabi님 반가워요. 크. 저도 좋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