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기억 보르헤스 전집 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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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기억>

-아무도 한순간에 자신의 과거 전체를 회상할 수 없다. 인간의 기억은 통합이 아니다. 그것은 부규정적인 정적인 가능성들의 혼돈이다. 

: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선물받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한 연구가가,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결국 그걸 선물하게 되는 이야기. 타인의 기억은 지옥이 될 수 있다. 그게 평생 나를 사로잡고 지배하던 나의 영웅일지라도.

<타자>

-만일 내가 당신을 꿈꾸고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요. 따라서 비록 상세하긴 하지만 아까의 그 목록은 전혀 소용이 없는 거예요. 

-불가능한 것에 대한 본질적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경악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살과 피로 만들어진 자식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그 가련한 청년에게 나는 물밀듯 밀려오는 사랑을 느꼈다. 


-그는 인류의 형제에 대해 노래하게 되리라고 단언했다. 우리 시대의 신은 자신의 시대에 등을 돌려서는 안된다고. 그에게 진실로 모든 사람에게 형제 같은 느낌이 드는지 물었다. 그는 형제란 억압받고 소외당한 수많은 민중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자네의 억압받고 소외 당한 민중들이란 단지 하나의 추상에 불과해. 만일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오직 개인들만이 존재할 따름이지. 어제의 인간은 오늘의 인간이 아니라고 어떤 그리스인이 선언했지." 


-나는 흔하면서 더 명백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고 우리들의 상상력이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그런 은유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인간의 노쇠와 황혼, 꿈과 삶, 시간의 흐름과 물이 바로 그것들이다.


-만일 당신이 나였다면 1918년에 자신 또한 보르헤스라고 밝힌 한 노신사 와의 만남을 잊어버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채스물이 되지 못한 청년에게 칠십이 넘은 사람이란 거의 시체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 보르헤스가 보르헤스를 만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와의 만남이라는 소재를, 이토록 우아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나는 나에게 영원한 타자인 것이다.어쩌면 매 순간, 매 날을 살아가는 또다른 내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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