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로메가스 바벨의 도서관 13
볼떼르 지음, 이효숙.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 / 바다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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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상가로 더 유명한 볼테르의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와 인간상을 풍자하고 있다. 풍자는 고도의 수법이라 이 기법을 쓰는 소설은 많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또한 어설픈 풍자는 웃음꺼리가 될 뿐이므로 섣부르게 시도하기도 어렵다. 전략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주제를 정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볼테르는 사상가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시가 삶에 대한 가장 고도의 은유라면, 소설은 그 다음이리라. 우회적인 말하기가 가장 훌륭한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방식인 건 사실이다. 모두에게 각자 다르게 기억되는 이야기는, 모호하기에 현실에 더 가까워보인다. 모호함, 혹은 모순이야말로 존재의 조건이 아니던가.


‘멤논 혹은 인간의 지혜’는 현명해지기를 바라는 한 청년의 어리숙한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다. 멤논은 “아주 지헤로워져서 그 결과 행복해지려면 열정이 없어야 한다(19)”고 생각한다. 그는 언젠가 잃어버릴 미모를 가진 여자를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또 술이나 음식에 탐닉해서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다. 욕망을 절제하여 소비를 조절하고,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지 않도록 무난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그는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도, 누군가가 부러워하게 만들지도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런 멤논의 결심은 삶의 변수를 무시한 얕은 지혜로 그려진다. 볼테르는 멤논을 ‘현자’라 반어적으로 명명한다. 그러나 멤논은 계획을 세우자마자 유혹에 흔들린다. 한 여성이 친 사기의 덫에 걸린 것이다. 절망하여 집에 돌아온 그는 친구의 초대를 받고 파티에 간다.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다 실수로 눈을 잃게 된다. 이어 재산을 잃는 사고도 당한다. 이 모든 것은 삶의 복잡다단한 변수들 때문이다. 보다 못한(?)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금기를 알려준다. 어리석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완벽하게 능숙해지는 것, 완벽하게 강해지는 것, 완벽하게 세력을 떨치는 것, 완벽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모두 불가능하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는 못한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행성이 하나 있긴 하지만, 광대무변함 속에서 흩어져 있는 수천억 개의 세계들 속에서 그 모두가 서서히 잇따르고 있지. 두 번째 세계에서는 첫 번째 세계에서보다 지혜와 쾌락이 적고, 그 다음도 그런 식으로 마지막 세계까지 이어져서, 그 마지막 세계는 모두가 완전히 미쳐 있지.”(28)


‘위로받은 두 사람’은 타인의 불행에 대한 충고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준다. 슬퍼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보다 더 불행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위대한 철학자’의 이야기다. 인간은 자기의 불행에 몰두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정작 그가 불행에 처했을 때, 위로받은 사람들은 그와 유사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의 목록을 그에게 가져다준다. 하지만 짧은 반전은, 가장 효과적인 위로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스카르멘타도 여행기’는 불관용한 종교에 대한 풍자이다. 너그러운 관용과 무한한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가 정작 이방인들에게는 얼마나 불친절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크로메가스’는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걸리버여행기’의 우주판이라 부를 만하다. 키가 오천 미터 가까이 달하는 시리우스 거인이 우주를 여행한다. 엄청난 수명을 지닌 그는 수많은 분야에 박식하다. 그는 토성에 가서 키가 이천 미터인 ‘난쟁이’인 토성인과 친해진다. 미크로메가스와 토성인은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토성인들은 일흔두 가지의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상상력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수많은 정념을 가지고도 그들은 지루해한다. 시리우스인은 천 개의 감각을 갖고도 “더 완전한 존재들이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뭔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욕망과 불안(63)”에 시달린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존재들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진정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욕망하고, 만족스러운 정도보다 더 많이 필요로(63)” 했다고 한다. 시리우스인과 토성인은 자신들의 수명이 너무 짧다고 한탄한다. 토성인은 만 오천년을 산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거의 동시에 죽는다는 것을 잘 아시겠죠.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점이고, 우리의 지속 시간은 한순간이며, 우리의 별은 하나의 원자입니다. 우리가 조금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경험을 얻기도 전에 죽음이 찾아옵니다.(64)” 


그렇다면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지구인은, 점의 원자인 셈이다! 보르헤스가 좋아하는 문장도 이어 나온다. 


“영원을 겪었다는 것이나 하루를 겪었다는 것은 정확히 같은 것이라는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별에서보다 천 배 더 오래 사는 나라에도 가보았습니다. 거기서도 주민들은 여전히 투덜거리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창조주는 이 우주에 풍요한 다채로움과 아울러 경탄스러운 일종의 균일성을 널리 퍼뜨려 놓았습니다. 생각하는 존재들은 서로 다른데, 모두들 생각과 욕망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합니다.(65)”


그리고 그들은 지구로 왔다. 그들은 너무 작은 인간을 보지 못해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현미경으로 겨우 고래를 식별할 정도로 그들은 컸다. 그들은 인간처럼 작은 원자가 말을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며, ‘영혼에 상응하는 것’이 있으리란 사실이 부조리하다고 여긴다. 고래들의 소유인 듯한 지구에서 인간이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라니! 그러나 토성의 난쟁이는 그들의 키를 알아낸 인간의 지혜에 놀란다. 극미한 물질도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신을 찬양한다. 그러나 지구에도,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양보다 더 많은 물질이 있어서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요.(82)” 


한 인간의 말이었다. 지나친 물질, 혹은 지성이 악을 만들어낸다는 풍자다. 우리 종은 모자를 쓴 미치광이들이 터번을 쓴 광대들을 죽이곤 하니까.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분노한 미크로메가스가 지구인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인간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죽일 것이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자기네들의 신에게 감사드리는 야만인이니까 말이다.


거기다 인간의 영혼에 대해 논해보라는 말에 인간들은 서로 다른 철학자를 인용한다.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 못하는 언어로 인용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86)” 그리스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 철학자의 논리다. 그리고 모든 철학자들의 말을 정리해버리는 인간의 한 마디. 모든 비밀은 신에게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마들어졌다는 장엄한 주장에 두 우주인은 배꼽 빠지게 웃어댄다. “무한히 작은 것들의 무한히 큰 오만함(89)”이라니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백과 흑’은 우리의 영혼을 조정하는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에 대한 이야기다. 천사와 악마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원칙과 나쁜 원칙은, 우연이란 실타래에 걸려 뒤섞여버린다. 신탁은 수수께끼처럼, 진실을 가린다. 한편 우리의 삶이 우리가 꾸는 꿈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볼테르는 우리가 책을 읽으며 팔십 만년의 역사를 훑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한한 역사의 바퀴 아래 끝없이 작아지는 바퀴들이 함께 돌아간다. “노아의 방주에 있었던 앵무새는 모든 것을 보았지만 겨우 한 살 반밖에 되지 않았다.”(116)


‘바빌론의 공주’는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신비로운 여행기이다. 아름다운 공주와 그에 걸맞은 신랑감이 사랑의 결실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모험기이다.


볼테르의 단편소설을 읽다보니 ‘캉디드’도 읽어봐야겠다는 의욕이 솟는다. 볼테르의 단편집도 찾아봐야겠다. ‘미트로메가스’의 상상력과 풍자력은 여전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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