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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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 옥타비오 빠스, 존 바스 등에게 영향을 미친 소설가가 있다. 이른 바 <책에 대한 책쓰기>를 주요 전략으로 삼은 이 소설가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1899년에 태어나 각종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그는 그 명성에 버금갈 정도로 일생에 후회 없는 작품들을 남겼다. 오죽하면 스웨덴 한림원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지 않은 것을(혹은 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두고두고 탓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유럽에서 언어와 예술을 배우고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그는 50대 이후에 거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악스러운 책벌레였다. 고전과 신화, 철학, 언어 등에 대한 그의 해박함은 소설 곳곳에서 묻어나와 <실용적 책읽기>를 하는 독자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소설가가 끊임없이 공부하여 지식을 축적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그에게서 증명된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수법과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 


1-가짜 주석(책, 잡지 등을 인용한)을 이용한 사실적 환상주의 

2-실존 인물의 가짜 주석에 대한 언급 

3-가상 인물의 실존 사실에 대한 발언 

4-실존 인물의 가상 인물에 대한 발언 

5-전혀 관계없는 연대에 활동하는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 

6-사실에 대한 왜곡과 역추리 


그의 소설은 각종 환상적 수법과 드라마틱한 반전은 물론 거대한 명제를 담고 있다. 그의 소설은 한 마디로 우주적이고 무궁무진하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지식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으며, 각각의 다른 우주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그의 아포리즘은 오랜 시간의 사색을 통해 얻은 명증한 진리, 혹은 창조적 진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물론 그의 주석들은 읽기 어렵고 까다롭다. 대체 보르헤스 소설이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과 탐구 정신(?)으로 집중하지 않는다면 탐독하기 어려운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정말로 내 말을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는 보르헤스가 독자를 우롱하거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다. 다만 무엇인가를 '이해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오류와 억측을 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 


보르헤스의 이야기에는 고전적인 주인공이나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가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주인공들은 실존하는 그나, 그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상의 인물이기도 하고, 가상의 인물에 주석을 단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소설은 철학이기도 하고, 에세이, 우화, 전기이기도 하다. 그의 소재에 다양하듯이 그의 소설의 형식이나 구성도 역시 다양하다. 이 <바벨의 도서관>은 주인공이 없으면서 모든 이가 주인공인 그러한 소설이다. 그는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신적인 것들과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고찰과 인식론적 절망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듯한 글씨로 찍힌 책의 활자와 서투르고 열이 맞지 않게 덧붙여 놓은 글씨로 신과 인간을 비유한다. 그렇다면 도서관이란 어떤 곳인가. 이 정교한 활자들로 이루어진 모든 책들이 담겨져 있는 육각형 진열실들은. 그리고 보르헤스는 이보다 앞서 철학적으로 풀리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결을 묻는다. '도서관과 시간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도서관이 모든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게 공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은 첫 느낌은 엄청난 행복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겨진 어떤 보물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서관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신념은 이러했다. 우선 바벨의 도서관은 '모든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다. 지상의 모든 책이 하나의 도서관에 모두 모여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이 도서관에 대한 소문만으로도 지식욕에 불타는 사람들은 들뜨게 된다. 그들은 아직 읽지 못한 수많은 책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혹은 책장에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들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다만 지상의 모든 책들이 이미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기뻐한다. 그리고 언제나 관념 속에서 '모든 책'-그것이 하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 또한 보르헤스는 세상의 모든 책이 각각 다른 책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한 권의 책은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대체가 불가능하지만 도서관은 총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항상 그것에 대한 수십만 권의 복사본이 있다. 그것들은 단지 글자 하나, 또는 쉼표 하나가 다를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상의 모든 책들은 이전이나 현재의 모든 책들의 조합이며, 변형이라는 뜻일 것이다. 순수하게 창조적으로 나오는 글이 없기 때문에 보르헤스는 단 하나의 새로운 책도 없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탐욕스러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자신들이 살았던 행복했던 도서관을 버렸고, 각자 자신의 <변론서>를 찾으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층계 위로 내닫았다. 그 순례자들은 비좁은 낭하에서 서로 논쟁을 벌이고, 음험한 악담들을 지껄이고, 신성한 층계에서 서로를 목졸라 죽이고, 자신의 <변론서>로 잘못 알았던 책들을 터널의 밑바닥에 버렸고, 뒤이어 당도한 사람들에게 떠밀려 죽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정신 이상이 되어버렸다. 변론서들은 존재한다(나는 미래의 사람들, 실제로 존재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두 권의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변론서>를 찾아나선 사람들은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 또는 그 책의 불충분한 해적판들이나마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영>이라는 것을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도서관은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인간의 손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손실 부분은 극소량에 불과하다'.바벨의 도서관이 소장한 '모든 책'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같은 인간의 영원한 지식에 대한 탐욕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모든 책은 하나이다―혹은 하나의 책은 모든 책이다'라고 말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는 '나머지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책'이 있다는 것이 인식론적 한계에 부딪힌 인간의 환상이다. 그러나 바벨의 도서관의 수많은 책 속에서 '모든 책'을 과연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그 책을 찾는 자는 아마도 신이 될 것이다. 급기야는 그 '하나의 책'을 본 사서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이 등장한다.



#한 사서가 그것을 대략 훑어보았고, 그는 신과 유사하게 되었다. 


겨우 훑어 본 것으로 신과 유사하게 된 사서. 그렇다면, '그 책'을 지은 이는 (당연히)신이 아니다. 그는 신을 뛰어넘은, 신을 초월한, 가공의, 위험스런, 괴기스러운 존재이다. 보르헤스는 '미지의 신들 중에게 한 사람―단 한 사람, 그게 몇 천년 전일지라도―이라도 좋으니 그 책을 들춰 보고, 그것을 읽어본 사람이 있기를 기도했다'. '만일 영광과 지혜와 행운이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되게 하소서. 비록 나의 자리가 지옥일지라도 천국이 존재하게 하소서.'라는 것이 그의, 혹은 인류의 간절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다시 이 위험한 가정을 딛고 하나의 현명한 대안을 내놓는다. 


#우주의 어떤 책장에 그러한 총체적인 책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나는 반복해 말한다. 어떤 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단지 불가능한 책만이 존재할 가능성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어떤 책도 사다리가 될 수 없다. 물론 틀림없이 이러한 가능성을 주창하고, 부정하고, 증거하고 있는 책들과, 그 구조가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그런 책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책>을 부정하고 저주하는 무리 또한 있다. 나는 부정하고 냉담하며 도서관을 파괴하려는(테러리스트?!)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모든 것이 이미 씌여졌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폐기처분되어 버리거나 환영으로 돌변해 버린다.' 왜 그러한 책이 있기를 바라는가? 그러한 책을 찾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세계를 모두 알아버린 후 당신은 과연 생을 지속할 의욕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 책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모든 것이라는 말은 얼마나 추상적이며 불안한가.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을 '마치 정신착란에 빠진 신처럼 모든 것을 긍정했다가 부정하고, 그리고 나서는 혼동에 빠져버리는 책들이 소장되어 있는 '열병'에 걸린 도서관'이라고 말한다. 이 열병은 바로 우리가 지닌 '위대한 책-혹은 도서관'에 대한 상상을 저지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라함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 모든 것에 기대를 걸었다가는 아무 것도 아닌 이 신(책)에게 세계는 파괴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열병에 대한 두려움 또한 완전이 잠식당하면 위험한 사고이기는 매한가지이다. 이 두려움은 자칫 세계에 대한 탐구, 영원성에 대한 탐구와 그 도전을 말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해서 절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영원 또한 사실은 유한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가. 유한이 없다면 무한도 없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책'이 있다는 가정 없이는 우리의 책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보르헤스의 말에 따르면 한계가 없지만 주기적이므로. 그 주기적인 상황 속에서 행운을 얻을 그러한 사람이 반드시 있지 않을까? 


#세계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 아득한 곳에 이르면 그들이 상상하는 어떤 모습으로 낭하들과 층계들과 육각형 진열실들이 끝이 날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것은 이치에 어긋난 생각이다. 반대로 세계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책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 오래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되리라. 신적인 질서가. 


어쨌든 도서관은 존재한다.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바벨의 도서관. 그 혼란스러운 지식의 육각형 창고 속에서 사서는(또한 우리는) 영원히 하나의 책을 갈망하며 저 모든 책을 읽고자 할 것이다. 모든 책은 하나의 책이다. 하나의 책은 모든 책이다. 어차피 한 인간이 평생을 다해 읽은 책은 그에게 '모든 책'이자 '하나의 책'일 뿐이다. 


#아마 나이와 두려움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인류―유일한 종족―는 소멸해 가고 있는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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