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구 위에 수십억 명의 인구가 바글거린다 해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공간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 존재할 뿐이다. 더구나 특별한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면,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차단된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깊고 절실하게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물론 사랑을 담는 마음의 자리가 너무 넓어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한 것은 그가 내게 유일무이하며 배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고, 그와 만들어나가는 관계의 자장이 내 삶을 좌우하기 때문이 아닌가.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그러한 관계에 관한 여러 편의 체험기 같은 소설들이 모여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식물이나 동물, 하다못해 공기와도 관계를 맺는다. 온 세계가 바로 관계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관계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파장을 지니고 있는가. 사랑은 일상을 변화시키지만 또 정체시키기도 한다. 사랑은 일상을 황홀한 리듬으로 연주하지만, 연주가 끝난 다음에는 막막한 침묵이 남는다. 리듬이 없는 일상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남은 두 사람의 몫이다. 만약 한 사람의 몫으로만 남는다면 사랑이 이미 끝나버린 것이다.


에쿠니 소설의 인물들은 관계 속에서 언제나 결핍을 체험한다.「생쥐마누라」의 미요코는 남편에게 충실하지만,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함으로써 일상의 건조함을 견딘다. 백화점에서 독한 술을 혼자 마시면서 결코 누구도 자신을 고독한 사람으로 보길 원하지 않는 미요코는 오히려 더 외로워 보인다.「울 준비는 되어 있다」의 아야노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함께 살고, 합의 하에 헤어지고, 합의 없이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식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결국 심장의 일부가 죽었다고 느낀다. ‘빛나는 사랑을 했지만 그뿐’이라고 읊조리는 「손」의 레이코처럼, 사랑은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지듯 삶 속에서 힘없이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오기를 부리며 사랑하는 남자의 포옹을 거부하는 것은 그가 결국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 속에서 사랑은 이미 박제된 동물처럼 싸늘하고 미동 없는 무생물에 불과하다. 몽상적 여행가가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를 꿈꾸듯이 사랑에 목마른 그들은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사람’을 꿈꾼다. 그것은 반대로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을 절실히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계가 지속될수록 사랑하는 상대는 모호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에서 ‘당신을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라고 반문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라. 뭐든지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남편은 고양이를 버리는 낯선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도 아내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그는 이미 알 수 없는 심연 너머에서 물끄러미 이 편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이 완전 소통을 하는 개미처럼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관계는 끔찍한 올가미가 되어버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알고 싶다는 욕망과 알 수 없다는 절망이 어쩌면 사랑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적 같은 사랑이 잠잠해진 뒤에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관계가 남는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아, 라는 자조는 곧 자기 자신을 상투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인생은 연애의 적이다’라는 치카의 말에 동의하는 건 관계가 결국 일상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와 직면해야만 하는 삶의 변화무쌍함 속에서 관계는 변하지 않는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한편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단지 관성으로 지속되지 않기 위해서 관계는 또 변화해야 한다. 정체와 변화라는 딜레마 속에서 수많은 연인들은 피로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관계를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것만이 사랑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창조적인 삶은 늘 현재에 존재하며,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사랑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 삶에 부대끼고 지친 한 사람에게 하루의 피로를 달래며 쉴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는 용기가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이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에쿠니의 주인공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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