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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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매혹적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향기같은 묘한 몽롱함을 주었다. 문장들은 각각 아름다웠고, 눈물겨웠다. 보석 같은 이야기였다. 작가의 독특한 ‘거리 두기’는 냉정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린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프랑스나 배트남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국의 나라 같다. 대상에 대해 지니고 있는 우리의 이미지란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 작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는, 무궁무진한 것이 아닌가.


어린 배트남 황제 칸은 루이 16세에게 배트남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칸을 도울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칸을 어여삐 여기던 피에르 주교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두 척의 배를 준비했다. 선교사, 수녀, 무장한 군인들이 배트남을 향해 떠났다. 불행은 머지 않아 얼굴을 드러냈다. 낯선 기후와 쥐, 괴혈병, 콜레라 등이 그들을 위협했다. 피에르 주교는 배가 배트남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 선원들, 수도사들이 하나씩 죽어 갔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잊혀지기 시작했다. 배트남에 도착한 이들은 두 세력으로 갈라졌다. 성직자들은 전쟁이 싫어 평화로운 마을에 남길 원했고 선장은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사이공으로 떠났다. 선장과 부하들은 곧 죽었다. 배트남 마을에 살게 된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생활 습관을 조금씩 버렸다. 수녀 한 명이 또 죽었다. 다시 황제가 된 칸의 아버지는 바딘에 와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아들이 죽은 보복을 했다. 며칠 전 떠난 세 사람의 성직자 외에는 남김없이 학살당했다. 한 명의 수녀 역시 죽고, 모두에게서 잊혀진 두 명의 성직자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6년 후, 둘은 병에 걸려 죽었다.


줄거리는 간략하다. 한 줄로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원정대가 배트남에 가서 학살당하거나 병에 걸려 모두 죽었다, 라고. 그러나 그 과정은, 낯선 문명 속에서 삶의 원초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초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화가 거의 없고 감정이나 판단 표현이 절제되어 있기에 오히려 이야기의 진정성은 살아난다. 사랑하는 이들, 동행한 이들의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다. 자연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삶에 충실할 것을, 대지에 충실할 것을 명령한다. 소박하고 행복한 배트남 사람들처럼 그들도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카트린느 수녀가 글쓰기를 그만둔 것과 기도하기를 멈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명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들을 잡으러 온 무장한 군인들은, 성스러운 성직자가 아니라 섹스 후에 태연하게 잠들어 있는 두 육체를 보았다. 그들은 이미 프랑스인도, 성직자도, 타국인도 아니었다. 후회없이, 조바심없이 살아가는 자연인이었다. 군인들은 감동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삶은 간략하고 단순해졌다. 그들은 온전히 그들 자신으로 살 수 있었기에 더없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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