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파티에서 만난 사람 바벨의 도서관 17
빌리에 드 릴아당 지음, 박혜숙 옮김, 이승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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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큼 이력이 낯설고 흥미로운 작가들이 있다. 빌리에 드 릴아당이라는 프랑스 작가는 낯선 어감에 오히려 흥미가 끌렸다. 환상적이면서 낭만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는 19세기 작가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단편소설은 짧고 강렬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알맞은 양식이다. 이 작품집에서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잇는 단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베라’는 포우의 ‘리지아’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칼로 자기를 베어낸 듯 가까운 연인을 잃은 사람이 미치지 않고 자아를 지키는 방법은, 연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환상 뿐이다. 환상, 혹은 의지의 힘으로 인간은 혹독한 일상을 견딘다. 마술은 뇌에서 시작해서 삶 전체를 지배한다. 헛것 또는 거짓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면, 부정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다. 문득 고개를 쳐드는 의심 하나에도, 환상의 성은 산산이 부서진다.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쉽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다.


‘이자보 여왕’은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 크나큰 권력은 서서히 조여드는 덫을 치고 기다린다. 진실보다 중요한 건, 진실이라 드러난 증거다. 가장 잔혹한 건 인간의 마음이다. 서로를 애무하던 손길도 한 순간의 감정의 어긋남으로 칼날같이 차갑게 변한다. 사랑이 깊은 만큼 증오도 깊다는 건 오래된 역설이다.


‘어느 슬픈 작가의 슬픈 이야기’는 이야기의 역설을 보여준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건 모순된 말이다. 실제와 허구,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의 위계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소설은 현실의 복제인가? 그렇다면 그건 꾸며낸 이야기라고 볼 수 없다. 있을 법한 이야기, 개연성 있는 허구와 같은 수식들은 소설이 항상 현실의 그림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극적인 사건을 ‘소설 같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지난 파티에서 만난 사람’은 병리학적인 증세를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정신 영역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현대에서야 이런 편집증 증상이 낯설지 않다. 죽음, 혹은 살인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그 남자는, 기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가둘 만큼 돈이 많은’ 그 남자는 큰 돈을 쏟아부어 기꺼이 취미를 즐긴다. 예의바르고 업무에 충실해보이는 겉모습 뒤에는, 잔악한 한 인간의 초상이 있다. 그의 직업이 진짜가 아니라는 점이 소름끼치는 진실이다.


‘체일라의 모험’은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신비롭고 독특한 이야기다. 암살자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주는 대신 엄청난 재산과 공주와의 결혼을 요구하는 체일라라는 사람이 있다. 이 제안 앞에서 왕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질문 자체에 답이 존재하듯, 어떤 제안에도 결론이 존재한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은 인간의 잔인함을 돌아보게 만든다. 제목에서 이미 밝히듯,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은 한 줌의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다. 가느다란 빛에 의지해서 목숨을 건지려는 이를 희롱하는, 그 고문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간악한 짓이다. 죄수에게 일생을 건 모험이, 간수들에게는 한낮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 단편집의 소설들이 ‘잔혹한 이야기’에서 발췌했음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겹치는 작품들이 꽤 있어도 충분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작품들이다. 현재 국내에는 이 두 작품만이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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