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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 '고의는 아니지만' 탄탄하고 매력적인 문장력과 감각적인 비유가 단연 돋보인다.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상상력과 문명 비판적 메시지가 오밀조밀하게 얽혀 있다. 탈국가적인 배경과 지극히 한국적인 시대상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이야기판이다.
특수금속으로 땅에 박혀 점점 인간에서 물체가 되어가는 남자. 카프카의 전언처럼 우리 모두는 벌레도, 물체도 될 수 있다.(타자의 탄생) 생존마저 위협하는 아이를 오븐에 넣는 상상을 할 정도로, 모성이란 이름의 폭력성을 고발한다.(어떤 자장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선의에 의해 행동한다는 믿음이 사실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작품. 고의가 아님에도 우리는 남을 칼로 찌를 수 있다. 감수성이 모자라다는 건 단순한 악덕이 아니라 수치다.(고의는 아니지만)
히치콕의 영화처럼 새가 절망에 찌든 사람을 공격한다. 새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긍정적인 사고을 하자는 희망타령이 난무한다. 당장 미래가 불투명한 취업준비생은 갖은 고생 끝에 차라리 먹히기를 꿈꾼다. 거짓희망전도사들에게 날리는 한 방.(조장기)
그 외에도 비유가 금지된 나라의 우화 '마치 ...같은 이야기'나 성범죄자들에게 가한 국가의 폭력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해낸 '곤충도감', 감각을 잃어버린 남자의 절망을 다룬 '재봉틀 여인'도 좋았다. 최근 읽은 단편집 중에서 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