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이름
마사 스타우트 지음, 김윤창 옮김 / 산눈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의 용어는 학자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소시오패스'는 '사회 규범에 순응하지 못하고, 기만적이고 간교하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이며, 자신을 포함한 사람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며, 학대나 폭력을 쓰거나 범죄를 저지른 뒤에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기막힐 정도로 무정한'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 즉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미국 사회에서 대략 4%의 사람이 소시오패스로 추정된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보다 훨씬 적은데,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적 환경 덕이라고 한다. 하지만 끝을 모르고 펼쳐지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오늘의 우리 사회는, 소시오패스라는 괴물을 만들어낼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남을 속이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일에 개의치 않는 사기꾼이 명망을 얻고,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나 역시 살아오면서 양심이 결여된 듯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설마 그런 행동을 하리라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물론 언제나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어느 정도 우울하듯 어느 정도는 비양심적이다. 그렇지만 온전히 양심이 없는 상태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심지어 큰
'고통 속에서도 죄의식은 존재한다. 완전한 무죄의식은 상상을 불허'(29)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자신의 감정과 정상적인 동기로서는 애초에 왜 그러고 싶어 하는지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행동'(153)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중립적인 낱말과 감정적인 낱말에 반응할 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사탕'보다 '사랑'에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것이 의미있는 말이라고 여기기 때문인데, 그들에게는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소시오패스들은 일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감정적인 문제들을 대할 때, 마치 '수학 문제를 풀도록 요구받은 듯이 반응'
(198)한다.

소시오패스들이 꼭 범죄자인 것은 아니다. 실제 감옥 수감자 중에 소시오패스의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소시오패스를 환자나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더구나 소시오패스들은 자신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사악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살이 방식에서 아무런 잘못도 보지 못하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85) 도대체 사회에서는 소시오패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누군가 소시오패스임을 알게 되었더라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현재의 연구로는 소시오패스를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그들과 관계맺지 않고, 그들과의 게임에 빠져들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이누이트 족은 보다 강력하게 소시오패스를 배제한다. 이누이트 족은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들', '거짓말하고 속이고 물건을 훔치고 사냥하러 가지 않고 여자를 농락하는 사람들'(211)
을 '쿤랑에타'라고 하는데, 그들이 불치임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누이트 족은 쿤랑에타라고 판단된 사람은 얼음 벼랑에서 떨어뜨린다.

양심과 감정이 없는 소시오패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쥐는 일-
'남을 이기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가장 완벽한 수단은 목숨을 빼앗는 것이기에, 그들의 일탈 행위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살인을 하는 소시오패스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은 남을 이기는 순간의 짜릿함을 즐긴다. 심지어 남을 지배하는 순간에 분비될 '아드레날린'을 위해, 자신에게 소득이 없거나 피해가 가는 짓을 하기도 한다.  '영리하거나 능력 있는 사람들, 매력적이거나 인기 있거나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거꾸러뜨리는 것'(18)도 그들의 놀이 중 하나다. 다만 '실존적 복수'
에 불과한 이런 장난에서 그들은 쾌감을 얻는다. 권력 놀이를 제외하고는 소시오패스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의 삶은 지루하고,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충동적으로 시작해서 몰두한 무언가에도 금방 질리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된다.

한편 그들은 대단한 연기자이며, 매력적인 유혹자이기도 하다. 소시오패스의 특징 중 하나가 '불가해한 매력'이다. 그들의 자유분방함은 카리스마로 비춰지기도 하고,
'사회적, 신체적, 경제적, 법적 위험을 무릎쓰는 행위' 는 매혹적이다.  그래서 양심의 제약과 제도에 얽매여 있는 보통 사람(불행히도, '양심이 없는 자들은 타인에게 친절하며, 남의 말을 곧대로 믿는 사람을 즉각 알아볼 수 있다.'(145)은 그들의 유혹 앞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그들은 감정적 유대를 이용해서 '복종이나 돈, 정보, 승리감, 일시적인 연인 관계'(146) 등을 얻는다. 관계는 그저 이기기 위한 게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감정적 결여를 감추는 데 대단한 재능을 갖추고 있기에, '보통 사람'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빈둥거리며 타인의 삶에 기생하는 소시오패스는 궁지에 몰렸을 때,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우울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말하며, '동정'을 구한다. '동정'은 그들의 행동을 자유롭게 해 주며, 누군가가 그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때린 소시오패스 남편은 울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선한 사람들의 동정은 두려움보다도 더 편리한 백지 위임장'
(173)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러 명의 소시오패스의 일화를 제시하여 그들이 결코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저자에게 상담받은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시오패스임을 확인하기도 한다.  소시오패스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나름대로 제시되어 있는데,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악은 악한 이들보다 악에 대항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확산된다. 소시오패스라는 인간종에 대한 연구와 대처법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양심을 갖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의미 있고 행복하다는 주장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타인과의 유대감, 자아 성취감,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추구야말로 우리를 진심으로 살아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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