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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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흔 살이 되었다. 그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 ‘외모는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못생겼고, 수줍음이 많고, 유행에 뒤떨어진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늘 그와는 정반대인 사람처럼 행동해 왔다. 오늘 아침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그러니까 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까지 그래왔다.’ 그래서 그는 이십 년 간 연락을 끊었던 포주인 로사 카바르카스에게 전화를 건다. ‘나쁜 짓이라면 그 어떤 남자 못지않게 환히 꿰고 있는 그녀’는, 처녀를 구해달라는 그의 부탁을 듣고 이틀의 시간을 달라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이 죽어 있을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사십 년 동안 신문의 전신 편집자로 일한 그는, 보잘것 없는 연금을 받고 있으며, 반세기가 넘도록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써오고 있는 일요 칼럼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간다. ‘아무런 공적도 영예도 없는 종족의 대장이며, 위대한 사랑에 얽힌 사건들 말고는 우리 종족의 생존자들에게 남겨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들었기에 쇠약해졌으며, 온갖 통증에 시달렸고, 기억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해서 얼굴들의 목록과 이름을 일치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섹스를 할 수 있는 나이의 한계’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다. ‘노인들이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은 생의 승리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다.

그는 한평생 창녀들과만 관계를 맺어 왔다. 즉 여자와 잠을 자고 돈을 주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직업적 창녀가 아닌 여자들에게도 논리적으로 설득을 하거나, 억지로라도 돈을 주곤 했다. 그리고 그는 이십 대부터 모든 상대의 나이와 이름, 장소, 사랑을 나누게 된 상황과 스타일을 기록했다. 오십 줄에 들어설 때까지 그가 관계한 여자는 총 514명이었다. 그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정해서 여자를 만났다. ‘순정한 여자란 세상에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던 그이다. 결혼을 할 계기도 있었으나 결국 그는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그는 14세 소녀를 보고 한 가지 경이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고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사실이었다. 아흔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는’ 그였다.

신문사에서, 아흔 살 생일 축하파티를 치르고, 그는 나이 든 페르시아 고양이 한 마리를 선물받는다.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와 단둘이 집 안에 있다는 생각에 오싹’해질 정도로, 그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와 그는 즉물적인 관계를 맺었을 뿐이다. 그는 고독했다.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는 다시 소녀를 찾는다. 아흔 살이 되어서야, 그리고 가장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그는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분 상태에 따라 그녀는 눈동자의 빛깔을 바꾸었’고,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소녀의 이름을 ‘델가디나’라고 지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그 상황에서, 그는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고, 예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강렬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 덕택에 구십 평생 처음으로 타고난 성격을 알게’ 되었다. ‘질서정연한 정리벽은 근본적으로 무질서한 정신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었고, 규칙적인 생활도 게으름에 대한 반작용이었으며, 야박한 심성을 숨기기 위해 인자한 척 하고, 그릇된 판단을 숨기기 위해 신중한 척하고, 쌓인 분노가 폭발할까봐 화해를 청하고, 타인의 시간에는 무관심하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시간을 엄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고전들을 읽었고,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버림받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일요칼럼에도 소녀를 위한 연애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는 일요칼럼에 대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에 당황해한다. ‘이제 너도 알겠지? 유명해진다는 건, 누군가와 잠을 자지 않아도, 잠에서 깨어나면 항상 침대 위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저 뚱뚱한 여자의 시선을 느끼는 것과 같아.’

그러나 로자의 비밀의 집에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그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델가디나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그는 무너져 간다. 규칙적인 생활은 헝클어졌고, 그는 씻지도 않는다. 그는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런 누군가를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도 고양이도 없이 집에 돌아오면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것도 사실임을 깨달았다. 즉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델가디나를 다시 만나게 된 그는, 로자가 그녀의 처녀성으로 거래를 했다고 짐작하고 맹렬한 질투를 내보인다. 다만 잠적해 있었을 뿐이란 로자의 말을 그는 듣지 않는다. 그는 방 안의 물건을 산산이 부수어버리고 그 곳에 가지 않는다. 그는 그에게 처음으로 섹스를 가르쳐주었던 창녀 카실다를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병든 몸으로 은퇴한 뒤, 중국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최악의 남자라 할지라도 평생 내 곁에 있어주려 했다면, 영혼이라도 바쳤을 거예요. 다행히 적절한 때에 중국인 남편을 만났지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경이를 맛보지 못한 채로 죽을 생각은 말라’며 충고한다. 그는 점점 건강의 이상을 느끼며, 죽음이 가까이 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소녀에게 자신의 남은 것을 남겨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로자는 그에게 ‘그 불쌍한 아이는 당신을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준다. 그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받았다’는 말로 소설을 맺는다.

이것이 아흔 살 노인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경이롭다. 아흔 살이라니, 짐작도 되지 않는 나이다. 그러나 아흔 살의 노인에게도 정열과 열정이 있었으며, 삶의 경이를 깨닫는 순간의 순수한 기쁨이 있었으며, 진정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노작가의 연륜은 역시 빛을 발했다. 한 평생 창녀들과만 관계를 맺었다는 것, 열 네 살 처녀인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등은 하나의 은유로 보인다. 어떤 인간과도 진심 어린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로지 규칙적인 심장 박동대로 살았던 사람이,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삶의 시간은 달라진다. 그는 아흔 살부터 ‘비로소 살기 시작했다’지 않은가. 사랑은 삶을 변화시키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종류의 사랑은, 삶과 하나가 된 셈이다. 진정한 삶의 이야기는, 어느 종류의 것이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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