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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열 여섯 살의 인도 소년이 가족을 모두 잃고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에서 227일 동안 살아남는다. 이백 오십 킬로그램이 나가는, 벵골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생존 능력은 정말로 재미있는 소재다. 우리 대부분은 지극히 평화로운 삶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누군가는 살해당하고, 누군가는 물에 빠지고, 누군가는 맹수에게 목숨을 앗기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나 다 그 재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재난이 일어나기 0.1초 전까지는, 재난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재난’의 경험을 갖고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것은 아니지만,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검은 물체-자동차-에 받혀본 적이 있다. 버스에서 내릴 때,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내가 그 재앙을 겪게 되리라는 걸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원망과 후회는, 일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파괴된 일상을 원래대로 복귀시키느냐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파이는 그 일을 해냈다. 그는 살아남았고, 위대해졌다. 그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그가 특별한 인간이 되었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을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발견했다. 무엇보다 그가 살아남음으로 신의 존재는 그 안에서 증명된 것이다. 그는 어떤 조난자보다 오래 살았다. 그것도 누군가를 ‘길들이면서’ 말이다.
그의 아버지가 동물원을 운영했었다는 것은 복선이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열 여섯 살의 소년이 도대체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동물원 운영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존재다. 그래서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뭘까요?’라고 적힌 질문을 따라 가면 거울이 나오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아버지는 파이와 그의 형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동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각인시켰다. 그리고 서열이야말로 동물의 생존을 지배하는 법칙이며, 동물은 ‘지배적인 인간’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물은 인간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두려워해서 공격한다. 인간이란 동물에게 ‘특이한 종족’이다. ‘조련사의 꼿꼿한 자세, 차분한 태도와 흔들림 없는 눈길,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가는 태도, 이상한 소리(채찍 휘두르는 소리나 호루라기 부는 소리)’ 등이 그런 증거다.
또 한편 동물원의 경험은 파이에게 동물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인식을 길러주었다. 야생의 동물이어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동물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와 완전히 다르다. ‘야생동물들은 가차 없는 서열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언제나 공포를 느끼고, 먹잇감은 부족하고, 영역을 사수해야 하고, 기생충을 참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야생동물들은 공간도 시간도 자유롭지 못하고, 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발언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동물원은, 인간의 집과 같은 역할을 동물에게 한다. 풍부한 먹이, 적당한 기후와 자연 조건, 천적이나 동족으로부터 영역을 사수해야 하는 긴장감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물을 가두는 것이 최상이라는 말이 아니다. 동물에게는, 그 영역이 밀림의 한 부분이든 동물원의 좁은 부분이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동물원은 이미 확고한 동물의 영역이 되어 있는 셈이다. 동물원에서 적응하고 있는 동물을 갑자기 쫓아내는 행위는, 우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자유라고 외치며 밖으로 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물은 관성의 법칙에 충실하며, 장기판의 말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파이에게 동물은 같이 공존해야 할 위험한 적이었다. 그리고 호랑이 리처드 파크는 어떠한가. 그는 파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만약 리처드 파크가 죽는다면, 파이에게는 오로지 고독과 절망만이 남겨질 것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것은 파이에게 의지를 주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야말로 삶을 흥분하게 만들고, 깨어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겪기 힘든 그 공포가, 파이에게는 태평양의 극한 상황에서 주어졌다. 파이는 호랑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호랑이는 이 작은 주인에게 복종했다. 도대체 사방에 물밖에 보이지 않는 방수 보트에서, 이 사람은 어떻게 나에게 먹이를 주는 것일까? 그리고 이상한 호루라기 소리는 동물원에서 얌전히 자란 유순한 청년 호랑이를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 실화 같지 않은 실화는, 실제 경험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수보트 위에서의 조난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리얼하다. 처음부터 배 위에 두 개체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얼룩말, 오랑우탄, 쥐, 하이에나도 함께 있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은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혔고, 하이에나는 리처드 파크에게 잡아먹혔다. 심장을 멎게 할 정도의 공포 속에서, 파이는 살 길을 찾는다. 방수보트는, 조난자를 위한 보물 상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물과 식량, 그리고 물을 만들 수 있는 태양증류기나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담요 등은 파이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닳아지고, 없어지고, 찢어졌다. 태양과 소금물, 파도와 벼락 등은 시시각각으로 파이와 리처드 파크의 삶을 노린다. 채식주의자였던 파이는, 한 번의 살생 이후, 거침 없는 사냥꾼이 된다. 모든 종류의 물고기와 새까지 먹어치울 수 있는 비위를 갖게 된 것이다. 파이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먹여살려야 하는 대형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생존기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파이가 잠시 눈이 멀었을 때, 눈 먼 다른 조난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슬프게도, 조난자는 리처드 파크의 밥이 되고야 말았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만난, 대화를 나누는 인간을 먹이로 줄 수밖에 없었던 파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파이는 수도 없이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
한편 파이는, 기묘한 화초섬에서 식물의 먹이가 된 인간의 치아를 목격하기도 한다. 현대의 과학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식충섬에서 다시 한 번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지구에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파이의 섬 이야기는, 눈으로 볼 수 없으므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마침내 그들이 멕시코에 도달하는 순간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리처드 파커와 파이의 관계는, 여타의 동물 이야기에서 보이는 감동의 수순을 전혀 밟지 않는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뒤, 리처드 파커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는 파이의 감정은, 본능으로 움직이는 호랑이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파이에게 있어 리처드 파커와의 이야기는, ‘사랑이 얼룩진 악몽’인 것이다. 그런데 리차드 파커는 그렇게 불쑥, 파이의 곁을 떠나버릴 수 있었을까? 단 한 번의 뒤돌아봄이나 망설임도 없이, 리처드 파커는 밀림 속으로 쑥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생사의 위기를 함께 겪은, 파이와 생명을 나눠가진 호랑이는, 그저 앞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밀림 속으로. 그러나 리처드 파커가 돌아봤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믿고 싶다 해도, 그것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천진성이, 자연스러움이, 이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했고, 리처드 파커를 더욱 신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삶을 향해 걸어나가는 그 본능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자신만만하게, 전 존재를 걸고 순도 높게 무언가에 몰두하는 그 순간, 동물은 대소를 불문하고 너무나 아름다워보인다.
제 3부는 파이가 탄 배가 추락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인 두 사람과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파이의 이야기는, 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파이는 결국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이 나오는, 끔찍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 말이다. 혹자는 호랑이가 나오는 파이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거짓이라면, 엄청나게 교활하면서도 놀라운 거짓말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이토록 재미있는 ‘거짓말’은 최근에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서술은 재치가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비극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따뜻하다. 도대체 열 여섯 짜리 소년이 어떻게 이토록 영리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질문도, 이야기의 독창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다.
‘파이 이야기’는 새삼 이야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었다. 현재 영화화가 되고 있다는데, 소설로 읽은 감동을 영화가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물론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게는 너무도 훌륭한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눈에 잡힐 듯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