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죽도.

한 겹 한 겹 꽃잎이 열리는 게 너무 신기하다.

이스탄불에 많이 피어 있던 꽃, 협죽도

남쪽 섬엔 이제 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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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좇는데 사람이 싫고 책을 좇는데 책이 싫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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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무언가에 대한 필요와 외로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사람이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워하지도 않는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귀향>43

장은 ˝아무 짝에 쓸모없는 얘기였다˝고 썼지만 정태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플라토노프의 단편소설<귀향>을 떠올리기도 했다.˝플라토노프는 실패한 소설가다.그는 소비에트로부터 비난받았다.˝<창백한말>35

아침에 급하게 넣어 온 책 두 권.

<귀향>을 이제 막 읽었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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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7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7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 가고 싶은 카페에는 좋은 커피가 있다
구대회 지음 / 달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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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2016-06-14 18:47   좋아요 0 | URL
오! 서울에 산다면 꼭 가보고 싶은 행사네요ㅜㅜ

2016-06-15 22:42   좋아요 1 | URL
기회가 되면♡
 

책의 두께에 경기하는 속성이 있는지라, 시리즈물을 잘 읽지 못한다. 왠만한 대하소설들은 그래서 다 패스~ 아마도 난 단편소설이 취향일거야, 라는 생각은 있었으나 정작 또 단편들을 우습게 여기고 읽어오지 않았다. 최근에 단편집인 줄 모르고 손에 잡았다 읽게 된 케이스라든가, 몇 개월 전 앨리스 먼로의 책을 접하고 다른 작가의 단편들도 읽어 보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한국 단편들도 잠시 기웃했다. 

 

어제 존 치버의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를 읽으며 이 참에 옆에 있던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의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도 읽었다. 그리고 레이번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다. 그랬더니 자연스레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과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도 떠올려졌다. 또 최근에 읽은 고골의 <외투>와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도.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정용준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한강의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과 권여선의 '이모', 황정은의 '웃는 남자'도. 아, 생각만으로도 탄식이 내뱉어 지는 최인호의 '술꾼'까지.

 

청소년에게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무람 없이 하는데, 나 역시 중학생 시절에 다이제스트 세계문학을 읽은 세대지만, 그 시절에 무얼 알고 읽었겠는가. 물론 독서란 순간의 읽기를 즐기는 자기 만족의 행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생각이지만, 어쨌든 요즘 아이들에게 고전 읽기란 턱도 없는 이야기다. 괜히 고전 읽기로 아이들에게 부담이나 주지 말고 단편 읽기로 책을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독서교육이 요원한 실정이지만 단편 읽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수행평가 같은 것도 평가가 힘들긴 해도 이런 식의 읽기 교육이 당연히 병행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단편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독후감도 없어서 그런 것 찾아내느라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될 터. 뜬금 옆길..

 

아무튼 플레너리 오코너와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작가를 제시해주지 않고 글을 내밀어도 누군지 알수 있을 것 같은 확실한 분위기가 있다. 문체와 뉘앙스라고 해야할까. 치버와 카버 역시 한 두 편 읽었을 뿐인데, 둘의 색깔이 확실하다. 카버는 직유 치버는 은유. 단편이니 은유라고 해봤자 많이 돌아가는 스타일은 아닌데 치버가 확실히 더 부드럽고 서정적이고 카버는 내지르고 힘있는 스타일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존 치버는 "교외의 체호프"라 불리는 20세기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소개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잘살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녀는 다시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좁혀 뜨자 눈가에 눈물이 배어났다. 무엇이 여름을 항상 섬이 되게 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무엇이 여름을 그토록 작은 섬으로 만들었을까? 그들은 무슨 실수를 했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들은 이웃을 사랑했고 겸손의 미덕을 존중했으며 이익보다 명예를 지켰다. 그런데 그들이 능력과 자유와 위대함을 잃어버린 곳은 어디였을까? 어째서 그녀 주위에 있는 이 선량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보이는 것이었을까?156

존 치버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나한테 묻는 건 적당치 않아. 난 그 남자를 알지도 못하는 걸. 지나가는 말로 이름만 들었을 뿐이야. 난 모르겠어. 자세한 것을 모르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자네는 사랑이 어떤 절대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대답했다.

"내가 말하는 종류의 사랑은 사람을 잡으려 드는 것이 아니야."

멜이 말했다.

"난 에드나 그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데 타인의 상황을 판단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요?"

로라가 말했다.

206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 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작가들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궁금해서 생몰연대를 찾아 보았다.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도 관심이 가는 항목이다. 시집과 마찬가지로 단편집 또한 한 권에 한 두 편만 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추천하고픈 단편집이었다, 한 두 편이 아니라 거의 고르게 모든 작품이 좋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눈 한 송이가 녹는동안>역시 괜찮은 단편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치버와 카버를 몇 편 더 읽고, 걸어서 도서관에 다녀와야겠다.

 

니콜라이 고골1809년-1852년

안톤 체호프 1860년~1904년

모파상 1850년~1893년

스콧 피츠제럴드 1896년~ 1940년

헤밍웨이 1899년~1961년

존 치버 1912년~1982년

플래너리 오코너 1925년~1964년

앨리스 먼로 1931년~

레이먼드 카버 1938년~1988년

최인호 1945년~2013년

권여선 1965년~

한강 1970년~

이기호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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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6-12 21:20   좋아요 1 | URL
곳곳에서 권여선 단편집 좋다고 그래서 읽어야지 하고 있던 차인데 여기서도 또!
저는 계속 체호프 단편들 읽는중~

2016-06-12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2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2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