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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어야 할 일이 있었다. 도서관 인문학 강의를 듣는데 필요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역시나 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말았다. 철학책은 늘 시도하지만 혼자 읽기는 버겁다. 개념 정리도 안되고, 번역투의 그 문체는 정말 읽히지가 않는다. 결국 책을 못 읽고 강의를 들었는데,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이 본 것이 정말 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등등의 질문을 받고 멘붕에 빠졌다.
하지만 난 늘 이런 식의 화두를 혼자서도 생각하는 편이고, 이런 질문들을 좋아하기에 수업이 재밌었다. 유명한 데카르트의 명제에 대해서도 뭔가 더 알아진 기분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강의 말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째 동양 철학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동양철학과 데카르트를 비교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고 그 질문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찜찜함이 해소되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백프로 인지는 검증 되지 않지만 스스로 이해했다고 느끼는 것이 어딘가. 철학책이라면 두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과거의 전례에 비춘다면 말이다. 어쩜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줄 수가 있지? 동서양의 사유들이 달콤한 꿀처럼 혀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쉬운 비유와 반복. 기초부터 단계별로 확장해가는 강의 기법? 입말로 씌여있어서 시리즈물 티비를 시청하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자아실현'. 이 책은 자아실현의 방법에 관한 책이다. 자아실현이라는 단어도 구닥다리가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내 삶의 목표는 자아실현이었다. 요즘의 세태는 어떤가 자아실현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왠지 현실감 없고 뜬구름 잡는 못난이들 취급을 당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자존감을 잃고 방황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나 보다. 자아를 확고히 세우고 눈치보지 말고 멋대로 내질러라.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그런 인간이 많은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회라고 말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확고한 자아가 내지르는 멋대로는 건강성과 이타성을 당연히 가지고 있을 테고, 누군가 시켜서 하는 억지로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잘함이 모이면 당연히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책에서 강조했는데 또 사회 걱정이다.ㅎㅎ 나만 잘 살면 다 잘산다라는 나의 신념에 신념을 불러 넣어 준 책.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가벼우면서 농밀하다. 나도 추천 받아 읽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상상력이나 창의성은 이념이나 가치관의 굴레를 벗고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우뚝 섰을 때 움트는 것입니다. 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입니다.인간이 이 세계에서 움직이며 형성하는 결이지요.이 세계에 살면서 생존을 효과적으로 잘 도모하고 자신만의 의미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가장 근본적으로 이 무늬의 청체를 알아채고 느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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