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얼마나 많은가.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리자면, 여러 풍경의 컷들이 지나가지만, 내가 가장 감읍하는 장면 중의 하나는 물봉선이 흐드러진 풍경이다.
가을 여뀌는 어쩜 이다지도 붉디 붉은지 가는 길을 자꾸 붙잡는다. 발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들여다 보게 만든다. 가늘고 작은 풀꽃 하나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어쩜 이다지도 강한건지. 나는 그만 무릎 꿇고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졸졸 흐르는 물 가. 여뀌 옆에 고마리. 고마리 옆에 물봉선. 물봉선 옆에 여뀌. 너도 나도 다투어 흐드러졌다. 물기가 빠지면서 더 선명해지는 듯한 분홍 빛깔과 일교차에 너덜더덜 단풍이 들어가는 물봉선의 벌레 먹은 잎사귀들. 맑고 투명하게 피어나는 고마리는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자기 색대로 이쁜데, 어우러지니 더 예쁘다.
흐드러짐의 흥취라는 것은 술을 부른다. 마약 같은 커피도 좋다. 하지만 이것 저것 아무 것도 없는 나는 뭐라도 있나 배낭을 뒤진다. 시집 한 권이 나온다. 그 흐드러짐의 장관 속에 어줍잖게 작은 자리를 펴고 앉는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평화 속으로 싯귀 한 구절이 마음을 파고 든다. 흐드러짐의 흥취는 사람이 마음을 아프게도 한다는 것을 안다. 아프다. 풍경도 사람도.
한 풍경이 등짐지고 일 갔다 돌아 옵니다.
자꾸 먼 데를 보는 습관이 낸 길 위로 사무치게 사무치게 저녁은 옵니다.
다녀왔습니다.
이병률 시. 저녁 풍경 너머 풍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