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셰프 샘킴의 이탤리언 소울푸드
샘 킴 지음, 강희갑 사진 / 벨라루나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밭 가운데서 그가 환하게 웃고 있다. 흙 묻은 장화에 청바지,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건장한 체격. 하얀 도화지에 다양한 식재료들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농부, 그의 이름은 셰프 샘킴이다. 판형이 큰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요리책이 아니라 화집을 보는 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의 작품들이 펼쳐졌다.

 

'바질페스토와 전복 탈리아텔레'

 '바질페스토와 전복 탈리아텔레'라니 멘붕이 온다. 사진이 없었다면, 이탈리아요리 용어 사전을 구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탈리아텔레를 바질과 잣 마늘을 함께 갈아 만든 소스에 버무려 전복 슬라이스를 올린 요리.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자동연상되는 상황에서 그의 책은 조금은 더 구체적이다. 전복 파스타가 아닌 '바질페스토와 전복 탈리아텔레'인 것. 녹색 섬과 은회색의 섬을 작은 바질 이파리 두 개가 이어주고 있다. 면은 둥글게 오므려 담고, 그 옆에 전복 껍질과 바질 잎으로 데코레이션한 샘 킴 셰프의 작품이다.

 

'훈제오리와 탈리아텔레'

탈리아텔레가 두 번째 나오니 이제 좀 마음이 푸근하다. (그래봤자 좀 넓은 칼국수면인거지 뭐..라는 배짱이 생겼다. 역시 아는 데서 자신감이 생긴다..에험) 훈제오리는 이제 구하기 쉬운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홈쇼핑의 은혜라고 해야하나..) 길게 먹고 지쳐 냉동고 구석에서 한 봉지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는 훈제오리.를 버섯과 함께 작게 다져 탈리아텔레 면과 함께 볶는다.(물론 샘킴 셰프는 오리도 직접 참나무 훈제를 한다. 하지만 나는 셰프가 아니니까...ㅠ) 데친 그린빈과 크레송을 올린다. 로 끝나는 이 요리는 크레송은 이렇게 생긴 이파리구나하는 깨달음을 주는 요리다. 그리고 이제는 알게 된 탈리아텔레와 늘 먹던 훈제오리를 격상 시킨 훌륭한 파스타이다.

 

'살치차와 케일 탈리아텔레'

살치차가 뭐지?하는 극강의 호기심으로 레서피를 뚫어질 듯 훑는다. 그리고 다시 멘붕이 온다. '믹싱볼에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카옌페퍼, 다지 펜넬씨드와 소금, 후추간을 해서 골고루 섞고 2시간 이상 마리네이드 한다'래...카옌페퍼, 펜넬씨드 다시 폭풍 검색질에 들어간다. 검색질 결과 카옌페퍼는 고추가루, 펜넬씨드는 회향씨앗, 그리고 '다지'는 '다진'의 오타라는 것도 깨닫는다.

카옌페퍼는 칠리를 잘 말려 가루로 낸 것인데, 칠리는 북아메리카에서 흔히 자라는 허브의 종류. 텍사스 초원에서 아무 데나 씨를 뿌려 거둔 다음 맛 없는 고기의 맛을 감추기 위해 뿌려 먹었다는 고급 정보도 알게 되었다. 역시 공부도 시켜주고 눈 호강도 시켜주는 훌륭한 요리책..

 

나는 해먹으려고 요리책을 보는 편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요리들은 집에서 해먹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토끼고기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나, 처음 들어보는 향신료들을 일부러 구해 요리를 시도할 정성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한 번 시도하고, 그렇지 않은 요리들은 눈으로 감상하고, 새롭고 신기한 요리의 재료들이나 용어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좋았다. 기본적으로 샘 킴 셰프는 슬로 푸드를 지향한다. 케일 탈리아텔레는 케일즙을 내어 반죽을 하고 밀어서 면을 만드는 식이다. 요리의 과정들을 천천히 보면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피해 밥상을 차리는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만두피나 칼국수 따위들을 직접 반죽하고 밀어서 해먹기를 좋아하던 옛날의 나도 있었는데, 요즘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엄두가 안나 금세 마음을 접곤 했다.(번거롭게 해먹느니 안먹고 만다..)

 

토마토 한 개를 들고 왕~하고 베어 먹는 것(샘킴책을 읽기 전의 나)이 아니라,  슬라이스한 토마토 위에 소금 후추를 뿌리고 생바질과 다진 파슬리를 올려 준 뒤 화이트 와인 드레싱을 뿌려 먹고, 토마토 카프파초를 먹었다고 자족감을 느끼는 것, 이탈리아식으로 먹었노라고 허세를 한 번 부려 보는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닐까. 집에서 파스타를 먹을 때 토마토 카르파초를 곁들이면 레스토랑 기분이 나기도 할 테니까..그리고 아드리아해의 바다 빛을 잠깐 떠올려 보는 거지.(급 이탈리아 가고 싶다.워~워~)

 

암튼 이 책에는 70여가지의 요리가 실려있는데, '해산물구이', 전복과 관자구이' 주꾸미 파스타' '브로콜리 수프' 처럼 쉬워 보이는 요리와, '감자 프리타타와 채소 카포나타' '토끼 라구 파파르델레''홍합 샤프란 키타라' 같이 어려워 보이는 요리들이 뒤섞여 있다. 모르는 용어들은 찾아 보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를 반복하면서, 그래도 펼쳐보게 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요리책 하나로도 내가 확장됨을 느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이렇게나 많고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리고, 내가 추구하던 느림을 어느새 질려하고 있었구나를 환기하면서, 다시 느림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느리지만 아름다운 요리를 하는 남자, 샘 킴. 이 책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이다.

 

 

식재료를 구하다보니 아무래도

구미에 딱 맞는 것을 찾기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지어보자 생각했지요

자주 들러야 하는 만큼

집 가까이에 있는 곳 위주로 물색했는데

마침 공항 근처에서 개발이 안 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땅을 발견했어요

주변 농부들의 도움을 받으며

12가지 종류의 채소를 기르고 있는데

땅고 볕이 좋아서인지 무척 잘 자라요

다른 데서 구입할 필요 없이 여기에서 기른

식재료만으로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지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농작물을 보는 재미가 대단합니다.

 

 

 

주방에서의 작업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무한한 가치를 더하는 일입니다

 

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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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비가 그치고 나면 완연한 봄이라는 예보가 떴다. 완연이란 말이 새삼 이뻐 사전을 찾아 본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하다. 봄이라는 실체는 공기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 정체는 몹시 궁금하다.  정체없는 봄은 오래도록 나를 몹시도 괴롭혔다. 어제 강연에서 들었던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시인이 되거나'라는 문구는 나의 20대의 봄을 말하는 듯한 표현이어서 술생각이 절로 났다. 나는 자살하지도 미치지도(주관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듯 하지만) 시인이 되지도 못한 채 노년을 맞느라 힘들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힘드느라 더 힘들었다.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봄이라지만, 나는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봄이 가는구나 한다. 그 전에 봄꽃은 필대로 피어 지고, 더 이상 필 봄꽃이 다했구나 할 때쯤 개나리 진달래가 핀다. 피다라는 말이 이뻐 또 사전을 찾아 본다. 꽃봉오리 따위가 벌어지다. 연탄이나 숯 따위에 불이 일어나 스스로 타다. 사람이 살이 오르고 혈색이 좋아지다. 암튼 이러다 노루귀를 못 보고 봄을 맞이 할까봐 이번 주말엔 청계산을 가야지 한다. 엎드려야 겨우 보는 이른 봄꽃을 찾아 먼 산에 가는 일은 그만 둔지 오래지만, 여전히 솜털 보송한 노루귀 정도는 실물로 보고 넘어가야 봄이 봄같다.

 

 계절을 맞이하는 일은 보고 먹는 일로 온다. 제철 음식을 찾아 해먹으며 '친구들과 헛소리'를 늘어 놓는 일이야말로 무엇과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라 할 만하다. 꼬막을 핏물이 가시게만 데쳐서 봄마늘을 쫑쫑 다진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것, 주꾸미를 살짝만 익혀 자근자근 다진 마늘과 들기름 소금을 넣은 마늘장에 찍어 먹는 것은 입으로 봄을 맞이 하는 일이다.

 

 꼬막은 구경도 못한 채, 어느 샌가 3월이 푹 익은 느낌이라 마음이 조급하다. 어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만났다. 늦은 시간이다. 서로 5분만 일찍 들어왔으면 완전범죄였을 텐데라며 웃었다. 밥통의 밥이 며칠이 지났는지..색이 바랬다. 저거 버리기 전에 먹어버리자며, 급하게 주꾸미를 데쳐 히히낙낙 밥그릇을 비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서로 문을 닫고 들어가도 상처 받지 않는 무언의 소통이 아이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지난 주 생활 패턴의 변화가 있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그러느라 육체적으로 힘든 며칠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좀 정신이 차려?진다. 내일은 큰 시장에 가서 '봄것'들을 좀 푸심히 사야 겠다. 주말에 할 일이 너무 많다.( 책은 언제 읽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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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설만 읽던 시기를 지나 시와 소설은 도저히 안 읽히던 시기를  지나고 다시 시와 소설이 재밌어진 요즘. 이전에 보았던 소설가 김영하의  강연 동영상을 다시 보기 하던 중, 이런 도식이 떠오른다. 낭만기-현실기-복합기. 내가 '나'로서 존재하던 청소년 시기에는 본능적으로 끌리던 시와 소설만 읽었고, 성인이 된 이후는 시와 소설이 못 읽었고, 안 읽혔고, 지금은 다시 시와 소설이 쫀득하게 읽힌다. 그러니까 나의 성인기는 내가 '나'를 밀어내던 시기였고, 노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나를 '나'로 받아 들인 셈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년기 김승희가 언뜻 떠오르는 김이듬의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이 언니 집에 있길래 빼왔다. 시집은 사서 읽어야 하지만...읽어 보고 사려고 일단.

 

 

 

 

 

말할 수 없는 애인

 

김이듬

 

물이 없어도 표류하고 싶어서

외롭거나 괴롭지 않아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거나 영 돌아오지 않겠지

가까운 곳에서 찾았어

우리는 모였지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

지난해 여름부터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어

불한당 청년들의 표류처럼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어

불한당 청년들의 표류처럼 불규칙적이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어휘와 문법을 습득하는 그들이 참 신기하더라

말이 무색해서 팔다리를 브이 자로 벌렸지

매일매일 뱃멀미가 났어

멀리서 돈 벌러 온 한 이방인에게 나는 미약했지만

그의 까만 손가락이 내 얼굴을 두드렸지

장난스럽게 단지 두드리는 시늉만 했는지 몰라

전혀 두드리지 않았는지 몰라

적절한 문장을 못 찾겠어 도무지 사랑할 수 밖에

그는 자신의 긴 이야기를 음악 소리로 듣는 마을에 가서

내 갈색 귀에 다 털려버렸지 코 고는 소리도 뭔가 이상했어

외국인 남자는 어떨까 상상하지 않았다면

말 못할 관계로 가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어

생면부지의 것들을 만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닌 건 아니지만

끝없이 문제를 만들어야 했어

시험 문항을 만들고

혼혈의 아이들을 낳아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이 모국어를 섞어 말할지도 몰라

콩밥을 나누고 에이즈 환자 모임에 가야 한다 해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 밖에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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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마크 로스코 전을 보러 가기 전에 책을 한두 권 읽어 야지 한다. 검색 되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지만 일단 모아둔다. 더불어 이우환의 책도 이 참에 더불어 읽고 싶어 찾아 본다. 두 명이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겐 서로의 그림으로 연상되는 관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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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여울
이우환 지음, 남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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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예술
이우환 지음, 김춘미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8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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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이우환.심은록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5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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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찾아서- 현대미술의 시작
이우환 지음, 김혜신 옮김 / 학고재 / 2011년 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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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

 

이성복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곁에서 당신이 멀어져 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 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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