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비가 그치고 나면 완연한 봄이라는 예보가 떴다. 완연이란 말이 새삼 이뻐 사전을 찾아 본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하다. 봄이라는 실체는 공기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 정체는 몹시 궁금하다.  정체없는 봄은 오래도록 나를 몹시도 괴롭혔다. 어제 강연에서 들었던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시인이 되거나'라는 문구는 나의 20대의 봄을 말하는 듯한 표현이어서 술생각이 절로 났다. 나는 자살하지도 미치지도(주관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듯 하지만) 시인이 되지도 못한 채 노년을 맞느라 힘들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힘드느라 더 힘들었다.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봄이라지만, 나는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봄이 가는구나 한다. 그 전에 봄꽃은 필대로 피어 지고, 더 이상 필 봄꽃이 다했구나 할 때쯤 개나리 진달래가 핀다. 피다라는 말이 이뻐 또 사전을 찾아 본다. 꽃봉오리 따위가 벌어지다. 연탄이나 숯 따위에 불이 일어나 스스로 타다. 사람이 살이 오르고 혈색이 좋아지다. 암튼 이러다 노루귀를 못 보고 봄을 맞이 할까봐 이번 주말엔 청계산을 가야지 한다. 엎드려야 겨우 보는 이른 봄꽃을 찾아 먼 산에 가는 일은 그만 둔지 오래지만, 여전히 솜털 보송한 노루귀 정도는 실물로 보고 넘어가야 봄이 봄같다.

 

 계절을 맞이하는 일은 보고 먹는 일로 온다. 제철 음식을 찾아 해먹으며 '친구들과 헛소리'를 늘어 놓는 일이야말로 무엇과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라 할 만하다. 꼬막을 핏물이 가시게만 데쳐서 봄마늘을 쫑쫑 다진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것, 주꾸미를 살짝만 익혀 자근자근 다진 마늘과 들기름 소금을 넣은 마늘장에 찍어 먹는 것은 입으로 봄을 맞이 하는 일이다.

 

 꼬막은 구경도 못한 채, 어느 샌가 3월이 푹 익은 느낌이라 마음이 조급하다. 어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만났다. 늦은 시간이다. 서로 5분만 일찍 들어왔으면 완전범죄였을 텐데라며 웃었다. 밥통의 밥이 며칠이 지났는지..색이 바랬다. 저거 버리기 전에 먹어버리자며, 급하게 주꾸미를 데쳐 히히낙낙 밥그릇을 비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서로 문을 닫고 들어가도 상처 받지 않는 무언의 소통이 아이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지난 주 생활 패턴의 변화가 있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그러느라 육체적으로 힘든 며칠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좀 정신이 차려?진다. 내일은 큰 시장에 가서 '봄것'들을 좀 푸심히 사야 겠다. 주말에 할 일이 너무 많다.( 책은 언제 읽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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