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선생님이 다자이 오자무의 <사양>을 강추한다. 나는 일본 소설을 잘 못 읽는다, 하지만 이 책 참 좋아요 식의 대화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사양>을 바로 구입했다. 마침 나온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구입했다. 그 참에 동생네서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나의 소소한 일상>이 눈에 띄어 빌려 온 것이다.
아침 나절 조금 펼쳐보니 읽었던 책이다. 그래도 누군가 추천해 준 작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다르다.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번째 산문에 웃음 짓는다. 내처 읽고 싶고 밥하기가 싫어서 발가락으로 남편을 쿡쿡 찔렀다.
여보야 아침은 빵 먹자.
그래 빵 먹자. 빵 어딨어?.
자기가 사와..
했다가 둘이 빵 터졌다.
나가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자고 할까 굶자고 할까 온갖 궁리를 다하다가 결국 일어나 수제비를 끓였다. 콩가루를 넣어 밀가루 반죽을 하고 감자와 당근 양파, 파를 듬뿍 넣고 멸치 가루를 넣어 국물을 넉넉히 잡았다. 역시나 셋이 먹을 분량인데 6인분쯤이 되어졌다. 아마도 점심은 식은 수제비를 먹어야 할 듯. 그래도 점심까지 확보 되었으니 마음이 푸근하다.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나의 소소한 일상>을 유지해야 겠다.
뭐니 뭐니 해도 정말 친한 사람과 집에서 느긋하게 마시는 것보다 큰 즐거움은 없는 것이다. 마침 술이 집에 있을 때 훌쩍 친한 사람이 찾아와 주면 정말 기쁘다. 20
술을 마시면 기분을 속일 수가 있어서 엉터리를 지껄여도 그다지 내심 반성하지 않게 되어 정말 도움이 된다. 그 대신에 술이 깨면 후회도 심하다. 땅바닥을 구르면서 와, 하게 크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슴이 쿵쿵 뛰고 안절부절 못한다. 뭐라 할 수 없이 울적하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21
"마셔야지요, 오늘 밤은 죽도록 마셔야지요."
라는 식으로 한시라도 빨리 취하고 싶어서 자꾸 마셨다.
그렇지만 왠지 모두 그렇게 좋은 사람들뿐인데, 모처럼 이런 시골구석까지 와 주었는데 내가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해서, 모두 일종의 쓸쓸함이나 환멸을 안고 돌아간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금방 걱정이 먹구름처럼 전신에 퍼져, 이불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W군이 우리 집 현관에 술 한됫병을 몰래 놓고 간 것을 그 날 아침 처음 발견하고,W군의 호의가 견딜 수 없이 마음에 사무쳐서 그 주변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24
Y군은 그 날이 메이지절로 휴뮤였기 때문에, 두 셋 친척집을 돌면서 인사하고 온 길로 이제부터 한 집 더 인사하러 가야 한다고 툭하면 도망치려는 것을, 아니 그 한 집을 남겨 두는 것이 인생의 맛이다. 완벽함을 바라서는 안된다, 라는 등 억지 이유를 늘어 놓고, 결국 넉 되의 술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정리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25
나의 수많은 악덕 중에서 가장 몹쓸 악덕은 나태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 나태는 어지간한 수준이다. 적어도 나태에 관해서 만큼은 나는 진짜다. 설마하니 그렇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이지 스스로도 한심하다. 이것이 나의 최대 결함이다. 분명 부끄러운 결점이다.26
괴로움이니 고매라느니 순결이니, 순수이니, 그런 말은 이제 듣고 싶지 않다. 쓰라고. 만담이든, 콩트든 상관없다. 쓰지 않는 것은 예외 없이 나태해서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맹신이다. 사람은 자기 이상의 일도 할 수 없고, 자기 이하의 일도 할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이다.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