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작가의 책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아무도 단 한 구절도 읽지 못했을 때부터, 글쓴이 말고는 그 누구의 시선도 스치기 , 책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제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세상을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달라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놓는다. 129

<악마의 시>도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리고 작가의 책상 바깥 세상에서 이 책은 유난히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작가는 책상 건너편 벽면에 줄곧 이런 좌우명을 붙여 두었다. "책을 쓰는 일은 파우스트의 계약과 정반대다. 불멸을 얻으려면, 하다못해 유산이라도 남기려면, 일상생활은 아예 포기하거나 지리멸렬을 각오해야 한다." 129

한 곳에 붙박여 한 문화 속에서 한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글쟁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여러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은 스스로 납득할 만한 해답을 찾아야 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하고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혹시 소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덫이나 감옥은 아닐까? 이렇게 탈출했으니 오히려 행운이 아닐까? 작가는 이미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터였다. 그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장소나 뿌리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 어디 있을 때 마음이 흡족한가?138

그에게는 늘 우정이 대단히 중요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족과 멀리 떨어진 채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친구는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다. 괴테는 선택적 친화력이라는 과학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애정관계, 결혼, 우정 등이 화학반응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화학적으로 서로에게 끌려 안정적 화합물-즉 결혼-을 형성하기도 하고 다른 영향을 받으면 서로 분리되기도 한다. 화합물의 일부분이 새로운 성분으로 교체되면 새로운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루슈디는 화학적 비유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결정론적이라 인간 의지의 기능을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했다. 선택적이라는 말은 그에게 자발적이라는 의미였다. 무의식적 화학작용이 아니라 의식적 자아의 판단이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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