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오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마흔두 개의 초록을 만난다.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겨

확자한 햇살의 장터가 축제로 이어지고

젊은 초록은 늙은 초록을 부축하며 나온다.

그리운 내 강산에세 온 힘을 모아 통정하는

햇살 아래 모든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물 마시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목마름까지

초록으로 색을 보인다. 흥청거리는 더위.

 

열차가 어느 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바깥이 궁금한 양파가 흙을 헤치고 나와

갈색 머리를 반 이상 지상에 올려놓고

다디단 초록의 색깔을 취하도록 마시고 있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 주일을 골라 친척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마흔두 개의 사연이 시끄러운 합창이 된다.

무겁기만 한 내 혼도 잠시 내려놓는다.

한참 부풀어오른 땅이 눈이 부셔 옷을 벗는다.

정읍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더 남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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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을 책이지만, 습관처럼 가벼운 책을 한 권 찾아 넣었다.

아침 부터 멘붕이 온 상태여서

하루종일 '괴로워'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래도 고백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책을 읽는 것 이외,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요즘의 정신이상적인

모호한 상태들이 결국은 오늘 같은 실수를 만든 것이다.

이 와중에도 숲의 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 어찌 그리 이쁜지

먼 산 실루엣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줄 아는 모양이지'

이렇게 한 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2015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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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월 전 춘천 재주소년 공연에 갔을 때 구입한 음반이다. 2개월 전 쯤부터 차에 꽂아두고 매일 듣는데 아직 바꿔 끼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래이션과 노래가 번갈아 나오는데 이렇게 듣고도 지루하지 않다면 분명 좋은 노래들이다. 들으면 들을 수록 매일 새롭게 좋다. 오늘 서울 시내 교통 흐름은 대박 짱이어서 넋놓고 <어바웃 재주소년> 듣다보니 어느새 집 앞. 멍하기도 허하기도 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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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에서 `COLDPLAY live 2012 - Yellow (piano intro) - Full HD` 보기
https://youtu.be/TfBlJ00D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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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호철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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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을 조곤조곤 밟아주는 느낌이다. 밟는다는 게 밟아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이른 봄 보리밭을 밟아 주듯 흙의 감촉을 느끼듯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분이다. 손 끝이 아니라 발 끝으로 하는 사랑은 더 조심스럽고 예민하다. 사소해서 표현되지 않았던, 자잘함으로 꽉 차 있었던 뒤죽박죽 느낌들이, 단순한 문장 속에서 단단하고 또렷하게 드러난다. 너를 지탱해주었던 것 그리고 너를 무너뜨렸던 건 이런 사소한 순간 순간이었어. 그런데도 절체절명이었지.라고 말 해 주는 것 같다. 눈으로 활자를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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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에서 `선우정아 -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 (Live)` 보기
https://youtu.be/Rs0EJsDGd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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