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오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마흔두 개의 초록을 만난다.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겨

확자한 햇살의 장터가 축제로 이어지고

젊은 초록은 늙은 초록을 부축하며 나온다.

그리운 내 강산에세 온 힘을 모아 통정하는

햇살 아래 모든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물 마시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목마름까지

초록으로 색을 보인다. 흥청거리는 더위.

 

열차가 어느 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바깥이 궁금한 양파가 흙을 헤치고 나와

갈색 머리를 반 이상 지상에 올려놓고

다디단 초록의 색깔을 취하도록 마시고 있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 주일을 골라 친척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마흔두 개의 사연이 시끄러운 합창이 된다.

무겁기만 한 내 혼도 잠시 내려놓는다.

한참 부풀어오른 땅이 눈이 부셔 옷을 벗는다.

정읍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더 남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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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을 책이지만, 습관처럼 가벼운 책을 한 권 찾아 넣었다.

아침 부터 멘붕이 온 상태여서

하루종일 '괴로워'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래도 고백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책을 읽는 것 이외,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요즘의 정신이상적인

모호한 상태들이 결국은 오늘 같은 실수를 만든 것이다.

이 와중에도 숲의 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 어찌 그리 이쁜지

먼 산 실루엣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줄 아는 모양이지'

이렇게 한 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2015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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