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방콕이다. 책과 영화, 맥주와 낮잠의 나날이다. 책은 두서 없이 이 책 저 책을 보다 말다 하는데,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들이 강렬하다. 순간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심리 묘사나 결말의 잔혹함이 카타르시스를 준다. <플래너리 오코너>에는 단편 서른 한 편이 실렸고,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엔 열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제목을 비슷하게 번역했다는 가정하에 <플래너리 오코너>에 없는 단편이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에 두 편 더 있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좋은 사람은 드물다)와 '그린리프', '선한 시골 사람들', '제라늄', '깊은 오한'이 특히 좋았다.
플래너리 오코너 (1925~1964)는 스물다섯 살에 루푸스병으로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임을 알았지만 이후 12년을 끈질기게 살아내어 장편 소설 두 편과 단편 소설 서른 두 편만으로 문학사에 깊은 자취를 남겼다. 고향에서 은둔하며 걷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 같은 확고한 작가 정신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20세기 미국 소설의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맹위를 떨친 미국 남부 출신의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던 오코너는 그러한 특수한 정체성을 작품 속에 탁월하게 녹여 냈다. 그러나 카톨릭 작가로 한정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종교적 비전과 믿음을 인류 전체의 메시지로 승화시켰다. 인간 실존의 모순과 부조리, 허위와 위선을 해학적인 언어로 그려 냄으로써 극적인 재미를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과 독자들에게 강렬한 구원의 순간을 체험하게 했다. 오코너의 구원은 무자비한 폭력이나 돌연한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녀가 만들어 낸 크로테스크한 비극의 세계는 지난 몇 십년 동안 놀라울 만큼 무수한 평론을 낳았고 대중적으로도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첫 장편소설 <현명한 피>는 소위 '남부 고딕' 장르를 정의하는 미국 소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생존 시와 사후에 걸쳐 세 차례의 오 헨리 상을 수상,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상과 <단편소설전집>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 알라딘 저자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