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2013 문학동네
도서관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에 영풍문고에 들렀다. 책 구매에 관해서 편하기로 치자면 인터넷 서점이 당연히 일등이지만 가끔은 볼일이 없어도 마실삼아 대형문고나 중고서점에 들린다. 업계 관계자라도 되는 듯이 매대에 깔린 책들을 확인하고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체크한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쌓아놓은 베스트셀러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저렇게 쌓아놓으면 무슨 책인들 안팔릴까?‘
출판시장도 빈익빈 부익부다. 팔리는 책만 팔린다. 아무리 부동의 베셀이라해도 아니다 싶은 책에는 눈길도 안줬는데 많이 팔리다보니 흘러흘러 내게로도 와서 예의상 들춰보지만 역시 나는 아니다 싶은 책도 많다. 이 와중에 김지영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소설은 그렇다쳐도 종합베스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선전에 응원을 보낸다. 산처럼 높이 싸인 특정 책들에 시큰둥한 눈길을 보내며 베셀 순위들을 보는데 어제 강의를 들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여기저기에 깔려있다. 조만간 영화가 개봉될거라 영화 장면 띠지까지 둘러서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선두를 다투는 모양새다. 최근에 나온 오직 두사람도 순위에 올라있다. 평소 나는 이렇게 말해왔었다.
‘김영하, 김연수 소설들은 이상하게 안읽혀~~ 몇 번 시도했으나 포기!‘
주변에 매니아들이 많아서 한 두번 시도를 해봤으나 다른 책들로의 이행이 안됐으니 두 작가의 매력을 못 느낀 셈이다. 그런데 강의를 들은 다음 날 살인자의 기억법이 눈에 띄었고 심지어 200페이지가 안된다. 휘르륵 펼치니 글도 듬성듬성 빈 공간이 많다.
‘그래? 어디 한 번 더 시도해볼까?‘
그리하여 <살인자의 기억법>은 내게 김영하를 기억하게 한 첫 책이 된 셈이다. 수년전에 어렴풋이 단편집 한 권을 읽은 기억이 난다고도 아니난다고도 할 수 없으므로. 한 시간 남짓 걸려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졌다. 2013년도 나온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이 32쇄다.
간결하고 감각적인 문장, 유머코드(여성들이 좋아할만한),평소 많은 독서량을 소설 곳곳에 얽어 넣는 재주, 가독성, 속도감!
아! 김영하소설이 이런 거였어? 겨우 한 권 읽고 재단할 일은 아니지만 막힘없이 톡톡 튀는 그의 추진력있는 언변과 닮아 있었다. 적어도 살인자의 기억법은. (아, 이렇게 쓰고 있으니 얼마전에 <오직 두 사람>에서 읽은 오직 두사람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키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52쪽
한 권 더 읽어 볼까하고 도서관에 간 김에 김영하로 검색을 했더니 왠만한 책은 다 대출중이다. 뭐야 이런 인기남 같으니라구 하고 포기하려는 찰나 얻어 걸린 것이 <김영하여행자도쿄>.
2008년 7월에 나온 책이다.
대충 훑어보는데 별로 잘 찍은 것 같지 않고 촛점 안맞는 사진들이 많다. 만만해 보여서 읽어 보기로 했다. 마침 도쿄 여행도 계획하고 있으니.
세 파트로 나뉘어진 구성이다. 1부 쇼트 스토리, 2부 아이즈 와이즈 샷, 3부 에세이.
쇼트 스토리는 여성화자가 서술자이다. 어찌나 풋풋한지 김영하의 여성성이 발현 된 케이스다. 다만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하고 펼친 독자에겐 다소 긴 스토리였다. 맨 뒤로 배치하는게 좋았단 생각. 읽다보니 흐릿한 사진들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애초 이 책의 기획의도가 이런 거였다.
이렇게 길게 롤라이35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여전히 남은 질문이 있다. '여행자'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카메라로 한 도시를 찍는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하이델베르크의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 문득, 도시마다 궁합이 맞는 한 대의 카메라가 있찌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첫 번째 도시인 하이델베르크는 콘탁스G1으로 찍었다. 그럼 도쿄는? 도쿄에는 어떤 카메라가 어울릴까? 나는 선반 위의 내 카메라들을 훑어보았다. 푼돈을 모아, 때로는 거금을 들여 마련한 낡은 카메라들, 처음에는 일제 카메라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은 펜탁스로, 러시아는 로모로, 독일은 라이카로, 그럼 멕시코는?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는? 국적에 따라 카메라를 도시와 짝짓는다는 발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헥 되면 상당히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도쿄는 어떤 도시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206쪽
그렇다, 롤라이35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지루하게 이어진다. 나는 사진을 배운답시고 기웃거려도 보고 카메라에 관심도 많은 터라 그런 이야기들을 공부하듯이 읽었지만, 여행에세이를 기대하고 읽었던 독자라면 읽다가 팽개칠 만한 수준의 길이였다.^^; 하지만 이런 발상, 기획을 알고나니 뭔가 산만했던 책이 다르게 보였다. 알기 전에도 뭔가 책을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행에세이라면 대개는 감성적인 멘트와 아기자기한 사진을 기대해봄직하다. 하지만 김영하여행자도쿄는 일견 기록 다큐멘터리 같다. 그는, 무엇을 봐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ㅎㅎ 쇼트 스토리는 재밌었고, 사진은 애매모호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야기하는 롤라이35의 특징을 설명들으며 사진을 보는 맛이 있다. 그리고 에세이. 여행자로서 도쿄에 놓여졌을 때의 방향을 일러준다. 시행착오와 다년의 경험의 통해 얻은 나침반 같은 단상들이었다. 그냥 갔다면 전혀 관심이 없었을 토쿄만에 접한 신도시 오다이바에 가보고 싶어졌다. 골목골목 상점투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