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올 해 유난히 봄을 '본' 것 같다. 예년에 체감했던 봄은 얼음장 밑으로 봄물소리 들릴 때나 눈을 뚫고 올라오는 갸녀린 야생화들을 보러 다닐 때 였다. 늘 이르게 봄을 맞았기에 벚꽃이 개나리가 흐드러졌다 싶으면 여름을 예고하는 듯이 느껴져서 그 꽃들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현충원에 수양벚꽃을 보러 가거나 동네나 남산 나들이를 하며 벚꽃을 보고는 넘어갔지만, 올 봄처럼 피기 전부터 벚꽃을 주시하게 된 해는 처음이다 싶다. 첫 벚꽃 필 때 시작으로 꽃이 지는 매일매일을 보게 되었다. 그 기간이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음을 체감하고 나니, 허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올 해 처럼 꽃이 유난히 희게 보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화사함이 마냥 화사하게 좋지만은 않았다. 그건 그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꽃길을 한 시간씩 걸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꽃은 지고 잎은 나고, 풀꽃과 나무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었다. 아, 꽃대궐이구나 감탄을 하기가 무섭게, 이 모든 것이 다 한 때이구나 하며 그렇게 오락가락 봄바람을 맞았다.

벚꽃동산 하면 여느 사람들은 체홒을 떠올리겠지만, 내게 벚꽃동산은 이광택선생님을 먼저 생각나게 한다. 꽃이 만발한 봄 산골짜기 그림을 그리는 분이다. 아이들을 어릴 때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가서, 그 곳에서 처음 우연히 전시회를 본 이후로 이광택빠가 되었다. 올 봄에도 안국역 근처에서 전시회를 하셨는데, 시간이 안 맞아 전시회를 보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춘천에서 하는 전시회도 극성스럽게 몇 번을 가서 보곤 하던 한 때가 지났지만 나는 영원한 이광택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갖고 싶은 공부방'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나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봄을 맞아 선생님의 글을 한 번 더 읽어봐야 겠다. 중국유학 가실 때도 짐보따리에 국어사전을 먼저 챙겼다는 선생님의 글은 정말 맛깔스럽다. 봄에 특히나 어울리는 글빨이시다.

엊그제는 석촌호수 곁의 반디앤 루니스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온 후배와 친구와 함께 '구대회 이병률의 커피수업'을 들으러 간 것이다. 구대회커피 원두로 이병률시인이 핸드드립한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전문적이고 명료한 구대회씨의 답변과 어눌한 듯 핵심을 찌르는 이병률시인의 질문과 귀를 쫑긋 기울인 열혈독자들의 후끈한 분위기가 봄밤과 잘 어울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커피수업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좋다. 그 때 그 때 상황이 다르기에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게 되더라도 새롭고 조금 아는 상태에서 더 듣게 되어 깊이가 생기는 그런 느낌들 때문에 피곤해도 이런 자리에 참여하려고 기를 쓴다. 커피와 관련된 강의들은 기회만 되면 듣고 다녔지만 구대회작가님 만큼 명쾌하고 과학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주는 강사는 없는 것 같다. 이시인님의 핸드드립 커피 맛은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다정한 맛'이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더 진부하게 표현한다면 '내 옆에 있는 다정함'이 커피에 녹아 있었노라고..핫핫핫,


뒤풀이는 늦지 않게 끝났지만 후배와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날이 밝았다. 하루를 비몽사몽으로 보내고 이틀만에 아홉시간 숙면을 취하고 나니 오늘은 몸이 너무 개운하였다. 역시 잠을 잘 자야 하는구나 절감하면서 아침에 산책도 한 시간 하고 오전에 일도 좀 열심히 하였다. 열심히 하는 것과 별개로 진도는 너무 안나가서 욹그락 붉그락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오후엔 같은 지역에 살지만 명절에도 보기 힘든 친정 언니를 만나 강의를 함께 들었다. 얼마나 꾸준히 이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리...집으로 돌아오며 언니야 강의 좋았어? 하고 물었더니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답이 왔다.

반디앤루니스 잠실점은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뷰가 멋드러졌다. 커피수업 전에 서점을 돌아보는데, 기다리던 장석주시인님의 신간이 눈에 띄었다. 봄스럽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라니 가만히 혼자 읽고 싶은 책이다. 이제 벚꽃도 지고 5월에 피는 꽃들까지 일제히 다 쏟아져 피었으니 개심사 왕벚꽃과 청벚꽃을 보러 갈 차례다. 매 년은 못 갔던 것 같고, 격 년은 가진 것 같은데 올 해는 요원하다. 재작년인가 정말 좋은 타이밍에 좋은 날씨에 가게 되어 감탄을 하고 보았던, 왕벚과 청벚 사진을 다시 꺼내 본다. 보낸 봄을 다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