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인가 은유작가의 북토크에 갔다가 저이와 함께 글쓰기를 하면
참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삶과 쓰기가 겉돌지 않고 얘기하고 웃고 나누는 그런 모임?
은유작가는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정기적으로 만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
요즘 쓰기강의를 듣겠다며 여기저기 검색을 해서 커리를 봐달라며 들이미는 남편이 참 난감하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나름 지성과 감성을 조금은 겸비했다고 느껴지던 사람이었던 남편은 오랜 직장 생활로 자본논리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중년남으로 변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글쓰기 강좌를 듣겠다며 읽기커리가 포함된 프로그램을 들이밀며 자기한테 적합한지 봐달라고 한다. 요즘 한국소설도 읽기 파트에 들어가있는 5단계 프로그램이었다.
글쓰기강좌 듣겠다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으나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이라 어떤 책을 읽어도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수업 시간에 이상한 질문? 내지는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할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구찮다.
더구나 문학은 거의 안읽던 사람이라...요즘 한국소설을 어떻게 읽어내겠다고. 여튼 요즘 남편의 관심사가 이러한 것을 알아만 모시던 차였는데 책꽂이에 꽂혀있던 <글쓰기최전선>이 책상 위에 나와 있다. 남편이 들춰 본 모양이었다.
-여보. 이 책 좋은 책이란 냄새가 확 풍겨
-응? 어떤 점이?
-서문만 읽었는데 그런 냄새가 나
-그치? 그 작가님 글쓰기 강좌도 하셔. 자기 엉뚱 데서 찾지말고 은유샘 글쓰기강좌나 찾아서 들어. 근데 <표현의 기술>은 읽었어? 자기가 원하는 글쓰기 스타일은 표현의 기술일 것 같은데
-아니, 정훈이 만화만 읽었어, 표현의 기술을 읽어야 겠구나! 근데 잘 쓰려면 읽어야지. 난 읽기부터가 문제야.
나한테 늘 그렇게 쓰기강좌를 들으라고 하던 남편. 안에는 결국 자기가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건가?
바쁜 직장 생활로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제 좀 여유를 찾으니 자신을 돌아보게 된 거? 부부간에는 가능하면 깊은 대화는 피한다가 나의 원칙인지라, 왜 글쓰기 강좌를 들으려고해?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보고 쓰라 쓰라해도 안쓰니까 자기가 쓰려고 한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듣긴 했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 바야흐로 남편이 ‘쓰는 인간‘의 대열에 합류하려 하고 있다. 일기든 잡문이든 끄적거림이든 뭐든 쓰지 않는 또는 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궁극적으로 통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살면서 느껴왔다. 모르고 만났어도 뭔가 잘 통한다 싶었던 사람들은 알고 보면 쓰는 인간이었다. 나와 남편은 극과 극에 있는 사람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평행선이란 느낌만 확고해지는 부류이다. 지금 잠시, 그런 생각이 든다. 말로 할 때 통하지 않았던 그런 갑갑함도 글로 쓰면 최소한의 갑갑함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머지않아 남편이 글 쓴답시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평생을 자신이 들어 온 이 말을,
내게 좀 뱉어 주길 기대해본다.
여보, 제발 나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둬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