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꽃시장에 갔다. 시간에 쫓겨 실컷 보지는 못했지만 잠시 꽃향기에 취한 시간이었다. 프리지아나 한 단 사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꽃을 보니 그 짧은 시간에 눈이 뒤집혀 폭풍 스캔하고 꽃향기를 흡입했다. 아네모네, 리시안셔스, 러넌큘러스 모두 제각각으로 어찌나 이쁜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늘 장미가 반값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나마도 안팔려서 버려진다고. 불경기여서 사람들이 생화를 안사고, 실용성을 추구해서 그렇다는 요지였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이제 사람들이 평범한 꽃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 봐왔던 장미나 안개꽃 보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고급스런 꽃이 지천이다. 이제 꽃=장미, 라는 등식에서 사람들이 벗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도매시장에서 나는 장미 가격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리시안셔스는 한 단에 만원, 프리지아 마저도 좋은 단은 만원에 팔았다.  기사에서는 장미 한 단에 2천원이라고 나왔던데, 장미도 장미 나름. 모든 장미가 2천원일리가 없건만. 암튼. 나는 부자재를 이용해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보다 도매시장에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는 꽃들이 진짜 꽃같고 진짜 선물 같다. 그래서 약속 시간 전에 시간이 되면 꽃시장에 즐겨 간다. 그냥 한 단 턱 안기는 꽃선물이 하고 싶어서다.

 

어제는 어떤 식당의 마지막 영업날에 초대를 받았다. 친구의 지인 식당인데,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초대를 받은 곳에 딸려? 간 것이다.  친구한테 그 식당 여주인에 대해서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녀는 고려인이었고, 그 곳으로 미술 유학을 온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들어왔다. 남편의 내조를 위해 식당을 열었는데, 365일 휴일 없이 하루종일 일만 하는 그녀가 안타깝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식당이 바빠져서 남편과 함께 식당을 하게 되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남편을 따라 다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식당을 그만 둔다는 거였다.

 

나는 친구와 그 식당에 간 적이 있었고, 그녀가 직접 쑨 메밀묵과 굴향 가득한 매생이국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었다. 어제서야 그녀를 좀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친구와 동갑인 그녀는 순수하고 앳된 모습이었다. 나는 막연한 마음으로 쉼없이 일한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었고, 프리지아를 맘에 두고 꽃시장에 간 거였다. 그녀가 오래 꽃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장 안 핀 녀석으로 파릇한 단을 골랐다. 식당에 들어서서 그녀에게 꽃을 내밀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들었어요. 그동안 애쓰셨어요... 한 번 본 사이지만 그녀와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그녀는 평생에 꽃선물을 처음 받아 본다고 하였다.

 

집에 와서 찾아 보니 프리지아의 꽃말은 천진난만, 순수지만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는 의미도 있었다. 신기하다. 그녀가 프리지아를 들고 웃는다. 그녀의 밥상에 오른 풋마늘 무침을 보며 나는 봄을 떠올렸다. 그녀는 봄웃음을 웃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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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2-22 14:43   좋아요 0 | URL
아마도 선물 받은 꽃다발 한송이는 가슴에서 두고 두고 피어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2016-02-22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22 20:00   좋아요 0 | URL
쑥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노란 후리지아 참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