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들 손녀들이랑 보테로전을 봤다고 좋아하신다. 나는 일정상 빠졌지만 엄마와 열한살, 일곱살 조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긴다. 큰아이가 조카보다 어렸을 때 선재미술관에서 보테로전을 보며 충격에 빠졌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다. (그때 선재미술관 앞의 조각에 대한 인상이 강해서 그후로도 길게 내 의식 속의 보테로는 조각가였다.) 시골 출신이지만 도회적 성향의 엄마는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버스를 한 시간 씩 태워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다니셨다. 큰 동백나무가 있는 섬에 가기 위해 버스와 배를 번갈아 타며 몇 시간씩 고생을 했던 기억도 선명하다. 여름이면 가까운 바다에만 가는 게 모자라 버스를 갈아 타고 두 시간도 더 걸려 계곡에도 몸을 담그게 하셨고, 여원 잡지에 나온 요리 레시피대로 당시에는 평범하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먹이셨다. 아빠와 우리의 이용.미용을 손수 해결하셨고 천을 떠다 옷을 지어 입히기도 하셨다. 작년엔 바티칸전이 보고 싶다셔서 모시고 갔는데 작은 성상화 앞에서 바짝 다가서는 엄마를 보고 흠칫 놀랐는데 연로하셔도 아직 저 열정이 식지 않았구나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바로 나의 노후를 보는 것 같아 마냥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사람의 열정이란게 세월이 갈수록 피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뇨와 혈압으로 몇 년새 부쩍 노쇠해진 엄마. 엄마가 그렇게 업고 걸리고 줄줄이 사탕으로 데리고 다니던 엄마의 딸들은 또 딸들을 낳아, 예전과는 비교가 안되는 안락함으로 전시회장을 찾는다. 오늘 엄마는 막내딸이 운전하는 차로 편히 가서 예술의 전당에서 보테로전을 보고 그 때 우리만 했던 손녀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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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06 15:19   좋아요 0 | URL
쑥님 어머님의 열정이 깊이 와닿아요. 멋진 어머니세요. 그런것으로 살아가시는 게 아닐까 싶기도하고 나이들어가시는 모습 뵈면 짠하지요. 무더위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2015-08-06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6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6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7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5-08-07 06:26   좋아요 0 | URL
훌륭하신 어머님이세요!
어머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