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잘 알고 지내는 착한 남자 중학생 두 명이 우리 집에 다녀 가다가 앞 집 초인종을 누르고 후다닥 도망을 친 것이다. 평소 성실하고 으젓하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 하던 두 녀석에게 뒷 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랄까. 앞 집 사는 아가씨가 별렀다는 듯이 뛰어 나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야~!! 니네들 죽을 줄 알앗!" 현관문을 통해 들린 그 소리는 내 귀에 따갑게 와서 꽂혔고 그 녀석들이 간간히 그런 장난을 쳤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녀석들이 안잡히고 잽싸게 도망을 쳐 준 것을 감사하며 어쨌건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의 심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주위의 착하고 얌전한 그 아이들이 사실은 급류의 에너지를 가진 청소년기의 아이들였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빨간 기와"를 읽는 내내 나는 '나'를 공감했다기 보다 "녀석"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어서 기뻤다.

"빨간 기와"는 어른이 된 주인공 임빙이 유마지 중학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가 서술하는 여타의 성장소설에 비해 이런 점이 좋았다.

"'대중' 앞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태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일 것이다. 사람의 쾌감은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비친 자신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내 정신력이 약한 것에 화가 나서 스스로 볼따귀를 때리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지만 여전히 잘 안되었고 졸음은 산처럼 무겁게 나를 내리 눌렀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현상을 배고픔 탓으로 돌렸다. 열여덟이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력과 체력의 성장이 거의 극점에 달한다...나는 어린 시절 천천히 성장하는 부류에 속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세포가 왕성하게 발달하고 있을 때 나의 세포는 새싹인 채로 깜깜한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일량은 달랐다. 그는 어릴 때 부터 빠른 성장을 보인 부류였다."

위에서 처럼 그 시기에 자각하기 어려운 삶의 조각들을 시간이 흐르고 나서 깨달은 자의 시선으로 꿰어 맞춰주고 있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는 다는 느낌 없이도 훌륭한 수업을 듣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부모세대가 자녀 세대의 독서에 기대는 바라면 인식의 지평을 넓혀서 앞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유용한 경험과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빨간 기와'는 그런 의미에서 부모 세대에겐 충족감을 느끼게 하고 청소년 세대에겐 유용한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한 편 한 편이 단편으로서 완성도가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인생의 큰 흐름에 합류하는 이 소설은 배경이 되는 강마을 과도 잘 오버랩 되고 있어 아주 감성적이면서 비주얼이 강하게 읽히는 것도 매력이다. 청소년기의 편집광적인 면모, 열등감, 우쭐함등이 역사와 맞물리면서, 그 또래에 맞게 또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어른 군상들을 통해 때론 고통스럽게 때로 유머러스하게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5-09-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글이 왜 리뷰가 아니고 페이퍼일까요?

아영엄마 2005-09-0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그러게 말이어요! @@

파란여우 2005-09-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로 올리셔야 할 분위기임돠!!!

2005-09-04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올리려다 뭔가 서투르고 어색해서..쩝-.-;:

반딧불,, 2005-09-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글은 매번 참 좋아요. 진솔하고 아름다운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