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긴 여행 0100 갤러리 3
앨런 세이 지음, 엄혜숙 옮김 / 마루벌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여행 중

 평소 그림책만큼은 독자 연령대의 구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가 선호하는 책과 어른이 선호하는 책이 구별되는 것이 현실이더라도. 그래서  <할아버지의 긴 여행>을 보면서 이건 어른이 더 좋아하겠는걸 하는 생각으로 옆에 놓아두었다. 초등 2학년인 작은아이가 쓰윽 한 번 보더니, 한 번 더 봐야겠다며 혼잣말을 하곤 곰곰 앉은자리에서 두 번을 본다.
"엄마 이 책을 보니 여행을 가고 싶어요...아, 아니,,,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네가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말이지?"
"네 바로 그거 에요..."
그림책의 신비한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얘야 인생이란 것은 말이지...여행과도 같은 것이거든...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어쩌구...' 아이에게 어른의 말을 들려주고 있는 어른을 상상해보라. 그 옆에 하품하는 아이가 보인다. 그림책은 논리적으로 얘기하기 힘든 인생의 철학적인 부분을 그림과 간략한 글로서 내보인다는 측면에서 유아동기의 철학책이라고 할만하다.

<할아버지의 긴 여행>은 우리들의 긴 여행이라고 제목을 바꿔도 무방하리만큼 인생의 보편적 진실을 다루고 있다. 그 배경이 일본과 미국이고 일본인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구체적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다루고 있기에 시대와 국적을 떠나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그림책이다.

할아버지가 동경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과 고향으로의 회귀본능은 인간이 가진 양면성이다. 떠나고 싶으면서 안주하고 싶은, 그래서 인간들은 한 곳에 붙 박혀 살면서도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는 것이겠이라. 그런 인간의 내면적인 갈등을  강렬한 색의 대비나 흐트러진 형태감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잔잔한 색감과 단순화된 형태를  사용해서 풍부한 울림이 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그리고 그림마다 테두리가 있는데 그것이 마치 액자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액자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그림책 안의 공간을 무한대로 상상하게 한다. 책 속 그림 안의 그 무한한 공간감이 그림책의 특성 중에 특성이라고 한다면 <할아버지의 긴 여행>은 그 여행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우리가 할아버지의 여행에 동참하는 순간  세상사의 순환고리 안으로 빨려들어간 느낌을 받게 된다.

단순한 기법에 단조로운 색채의 그림이건만 인생의 유의미한 긴 여행의 느낌을 풍부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 느낌을 주는 이유는 파노라마 같은 인생의 펼쳐짐... 그 곳에 자연과 인간, 문명이 공존하는 역사의 장면 장면을 담담히 펼쳐 놓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할머니가 손자에게 읽어준다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인생의 의미를 되돌려 보며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아이는 아이대로 미래를 꿈꾸게 될 것 같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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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1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책과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어요. 보고 싶어지게 리뷰하신 chamna님, 감사^^

. 2004-03-2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게 보고싶어지게 만드는 마력...하하...님의 매력과 통하는듯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2004-11-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라 그런지 미래보다는 추억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들어 노년의 내 생이 어떨건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은 아름다운것이라고 잔잔하게 내 손자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며 눈길을

마주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런 가을기분이라 이런 책들이 무척이나 땅기는 군요.

목록을 만들고 있어요. 이 책도 그 목록에 끼어주고 싶어지네요.

님의 리뷰 너무나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