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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시작하면 긴장이 된다. 어떻게 하면 철학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리고 철학을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공부 방법 같은 것들은 없을까? (있다면) 를 고민해보기 때문이다. 워낙 강의라는게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스스로도 공부가 모자라서 대가들이 해줄 수 있는 그런 조언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추측해보건데, 철학은 상대적으로 공부를 위한 동기부여 같은 것들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유난히 진입장벽이 높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이것 역시 내 책임이며, 내가 좀 더 잘 가르친다면 이런 문제들이 전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수준에서는 교수법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수준에서는 학문 자체의 특성에 관련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철학은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공부해도 돈과 떡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상대적으로 실용적이라고 우리가 느끼는 다른 학문들은 그것이 아무리 어렵다고 소문이 나도 다들 배워보려고 하지 않는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의존하거나 철학과 삶과의 관련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늘 힘들고 벅차게 느껴진다. 또 철학은 근본적인 것, 추상적인 것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에 그 근본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추상적인 것들을 생각해야만 하며 더 나아가 문제의 지평이라고 불릴만한 사유의 역사들을 알아야지 이해하기 쉽다. 


어쨌든 이런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빌어 해결해보고자 두 권의 책을 골라서 읽었다. 


  













한 권은 <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2012)이고 다른 한 권은 <철학은 이렇게 공부한다>(2010)이다. 


먼저 <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은 일단 분량이 적고 읽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인지 특별히 유용한 정보라고 할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철학공부를 위한 네 가지 습관은 1) 적극적으로 읽기 2) 적극적으로 듣기 3) 적극적으로 토론하기 4) 적극적으로 글쓰기 이다. 마지막에는 특별히 "철학 시험을 준비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 역시 특별하다기 보다는 우리가 시험을 준비할 때 늘상 하게되는 것들을(연습용 논술을 작성한다던가 하는 것들) 알려주고 있다. 글쓰기에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것이 '철학'에만 국한되는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 학술적인 글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써야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철학은 이렇게 공부한다>는 좀 더 상세한 내용들을 담고 있긴 하다. 이 책이 위의 책과 다른 부분은 "노트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과 "자료"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철학사전에 대해서 안내해주고 있는 것은 꽤 유용한 것 같다. 물론 다 영어로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철학 관련 교양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열의를 가진 학생들이 찾아볼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을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꽤 좋은 것 같다. 


두 책 모두 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적어두고 있는데, 사실 어떤 용어(더 정확히는 개념이라고 해야할 것 같지만)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과정의 목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간략한 지적 지형도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좋은 시도인 것 같다. 


근래에 한국어로 된 철학 사전들이 한 두 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 사전들도 번역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기초적인 이정표들이 많아질수록 공부하는 길이 쉬워지는 것 같다. 새삼 이런 책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


철학만을 위한 특별한 공부법 같은 것들이 있고 그것을 소상히 안내해주는 책이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할련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철학에 좀 더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 노력들이 이어진다는 것은 참 고무할만한 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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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된다는 것


 

요즘 나는 부모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제 어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의 성장과정에 대해서 묻곤 한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오사카에서 정육점을 하다가 해방이 되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과 할머니가 문맹이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서 자랐는가를 말하면서, 자신들의 성격 같은 것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다. 어쨌든 부모인간으로, 그러니까 부모라는 딱지를 붙여서 늘 의지할 대상으로 아니면 투정 부릴 대상으로 생각하던 단계를 지나 그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함께 나누겠다는, 일종의 친구 같은 관계로 재설정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건 꽤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모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는 한, 부모의 삶을 이해하게 하도록 돕는 것들은 생각 외로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부모, 특히 아버지상은 어떤 판타지를 구현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그려지는 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은 헌신적인 하지만 쓸쓸한 아버지이거나 강한 아버지인 것 같다. 영화 <테이큰>에서 아버지는 말 그대로 강한아버지다. <7번방의 선물>에서는 자식 밖에 모르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헌신적인 아버지가 등장한다. 또 주말 드라마에서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들이 쓸쓸하게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매체들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판타지를 구현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 특히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들이 가진 진실들에 다가가기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부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나의 관점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두고 겪을 수 있는 어떤 연습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영화이다. 영화는 아이가 뒤바뀐다는 설정에서 시작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서사의 진행 자체이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연습을 거쳐서 얻게 되는 이름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원래 아버지였겠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거쳐야만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아버지가 되기 위해 거치는 연습과 시행착오를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크게 두 유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주인공 료타는 성공한 건축가이자 직장인으로서 도쿄의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자식을 위해 좋은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다이는 전기상회를 운영하면서 자식들과 함께 목욕도 하고 캠핑도 가고 잘 놀아주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버지다. 이 두 아버지가 대립된 것처럼 계속 그려지지만, 사실 이 둘은 우리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역할 같은 것이다. 아버지는 뛰어난 능력과 사회적 성공을 바탕으로 자식에게 최선의 환경과 교육을 제공할 것이 요구되고 동시에 함께 목욕하고 캠핑도 가고 연을 날려주면서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는 살가운 역할도 요구된다. 하지만 이 둘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역할은 아니다. 둘 중 하나를 소홀히 한다면, 무능한 혹은 자식에게 무관심한 아버지로 취급 받기 쉽다. 영화에서 대립적인 두 아버지상은 실제로 한 명의 아버지에게 요구되는 역할이고 영화에서 료타가 겪게되는 갈등과 노력(류세이와 친해지기 위해 하는)아버지가 되는 연습들의 일부인 셈이다.


물론 아버지가 되는 연습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위에서 말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부여될 가장 순수한 역할, 즉 자식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법을 익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연습 과정이다. 료타가 케이타와 류세이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젓가락질이 서투른 아이를, 피아노에 서투른 아이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 과정의 핵심이다. 이 과정은 아버지가 행하는 일방적인 과정만은 아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눈으로 자식의 입장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 같은 것들을 보면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식의 입장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나 고민 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말 그대로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소통이나 이해 같은 것들이 형성하려고 할 때, 다시 말해 아버지가 자식의 눈으로 자신과 가족을 바라보게 되며, 이것을 늘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고 자신의 세계와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연습을 할 때, 비로소 아버지가 된다’.  

보통 자식을 낳는 순간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게 되겠지만, 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수많은 연습과 이해 그리고 갈등의 반복된 과정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아버지도 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도 자식을 보면서 배우고, 자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나가고 또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을 고쳐가고 사과하며 자신을 깎고 덧붙이며 아버지그렇게 되어갈뿐이다. ‘되어간다는 점에서 모든 아버지들은 진행형일 것이다. 그리고 이 진행형으로서 아버지들은 가족이라는 보다 좁은 울타리 내에서 소통이나 이해를 연습하며 성숙의 과정 중에 있는 존중 받을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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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당연히 <어바웃 타임>을 보고 싶었지만, 그리 발빠른 편이 아니라 연인들을 위한 영화 예매에 실패하고 무엇을 볼까 고민하다가 <변호인>을 봤다. 영화를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변호인>에서 그리고 있는 우리의 굴곡진 역사와 그 역사 가운데 살았던 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또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영화 보는 내내 눈앞에 겹쳐지면서 역사의 반복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어떤 카타르시스보다는 걱정과 우려를 짊어지고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걱정과 우려의 근원은 사실 영화 자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변호인>을 좋은 영화라고 말해도 되는걸까? 라는 생각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어떤 영화적 상상력 혹은 감독의 독특한 시선, 그러니까 영화를 보면서 감상자들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만한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가벼이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상기시켜주면서 우리가 품고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들(민주주의, 헌법, 기본권 등의 중요성, 독재나 고문의 야만성)이 힘겹게 우리에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즉 우리들의 상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자리잡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몰상식의 시간들이 있었는지를 확인해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변호인>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행을 말하고 있고 지금 누리는 약간의 안락함에 담긴 시간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그런 점에서 <변호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상기시켜주고 잊지 말라고 권유하며, 그것들의 유산을 지키라고 말하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우리의 불행잘 표현된것이었는가? 내가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잘 표현된’, 즉 영화적 상상력이나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라고 불릴만한 것들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변호인>과 유사하게 송강호 씨가 출연했던 <효자동 이발사>에는 풍자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 영화가 재미있었고 오래 전에 본 영화이긴 하지만 불행했던 시기에 한 시민이 겪었던 고통과 불합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지금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변호인>은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무방한 영화다. 그런 점에서 <변호인>에는 우리의 상상력이나 생각하는 힘을 자극하는 요인들은 별로 없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을 확인할 뿐이다. 이것이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상징을 통해서건, 은유를 통해서건) 무엇을 생각할 때, 그것은 지금 눈앞에 바로 보이지는 않는 저기 너머의 것이나 숨겨져 있는 것들을 눈앞에 있는 것으로 끌어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무엇을 없는 것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 눈앞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눈앞에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 당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안녕하다고 해서, 혹은 내 주변인들이 모두 안녕하다고 해서 세상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때, 혹은 상상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없는 것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폭넓은 의미에서 사유의 힘(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삶을, 내 눈 앞에 미시적인 세계가 아니라 미시적인 세계의 조건이 되는 거시적 세계를 생각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느끼게 하는 힘이다.

 

그런 점에서 <변호인>은 우리의 상식들에 놓인 역사적 흔적들, 시간의 깊이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영화관을 나선 이후에 감상자들이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지나왔던 역사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어떤 반복을 경험하고 있고 안녕하지 못함을 체감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언제든지 반복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사유의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즉각적인 고통들 혹은 눈앞에 보인 고통이나 불합리에는 반응할 수 있을지 몰라도 더욱 세련된 방식의 독재나 은연 중에 체화된 고통에는 대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돼지국밥 집 아주머니의 따뜻함을 기억한 당신의 돈을 지켜주던 변호사가 불합리에 맞서는 변호사가 된다는 이 역사적인 이야기에서 나는 아쉬움을 느낀다.

 

사실 아쉬움은 감독에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아쉬움은 이 정도라도 충분히 해내야 한다는, 그러니까 더 큰 상상력이나 사유의 힘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이 정도는 잊지 말고 살자는 권유나 다짐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꽉막힌 현실의 갑갑함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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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개념에 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

-과학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1.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연구활동 자체의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드러날 수 있는 전혀 다른 과학의 개념(the concept of science)을 그리는 것”(21p)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토마스 쿤의 주된 비판 대상은 과학을 축적에 의한 발전이라는 개념”(22p)을 가지고 이해하는 과학사학자들의 작업이다. 쿤은 축적성을 떠난 발전의 노선을 추적하여 새로운 과학사 서술을 시도한다.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의 발전에서 역사적인 요소들이 차지하는 의미라고 재정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의 기초가 된다고 믿어지는]관찰과 경험만으로는 [과학적]믿음의 특정한 무리를 결정할 수가 없다. 개인적 그리고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겉보기로는 임의적인 요소가 항상 주어진 시대의 어느 과학자 사회에 의해서 신봉되는 믿음 가운데 그 구성성분으로 끼어든다”(25p,[]는 인용자 첨가)는 것이다. 이러한 쿤의 작업은 축적에 의한 과학의 발전이라는 기존의 믿음과 앞으로의 발전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의도하고 있다. 오히려 무균상태의 실험실은 가치중립적인 지식의 생산이 가능한 장소가 아니라 이미 항상 주어진 패러다임의 제약 속에서 실험의 목표와 방법 등이 미리부터 설정되어있는 곳이다. 이렇게 과학의 발전에서 역사적인 요소가 차지하는 의미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일련의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되는 데, 패러다임(paradigm), 정상과학(normal science), 비상과학(extraordinary science) 그리고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등이 주요한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쿤의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전에 관한 하나의 이론을 요약·정리하고 이에 관한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비판적 의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지식이 형성됨에 있어서 역사가 차지하는 의미와 역사적인 것들 속에서 제약된 구체적인 개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에 관한 보다 예리한 이해가 가능해지기를 희망한다.

 

2.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활동을 뜻하고 그 성취란 몇몇 특정한 과학자 사회가 일정 기간 동안 과학의 한 걸음 나아간 활동을 위해 기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인정한 것을 말한다.”(33p)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뉴턴의 프린키피아등이 그러한 성취에 해당한다. 이러한 저술들이 이루어낸 성취는 다른 여타의 경쟁 이론들의 옹호자들을 완벽하게 제거했다는 점에서 전대미문의 것이었고 동시에 모든 유형의 문제들을 연구자들의 재편된 그룹이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열려진(open-ended)것이 있었다.”(34p) 쿤은 이러한 두 가지 특성- 다른 경쟁 그룹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 후속 연구자들이 달려들어 풀 수 있는 열려진 문제들의 존재-을 띠는 성취를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고 이 패러다임은 정상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패러다임이라는]이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실제 과학 활동의 몇몇 인정된 실례들-법칙, 이론, 응용, 기기법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례들-이 그로부터 과학 연구의 특정한 정합성의 전통이 나타나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한다.”(ibid.) 이로써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선형적 발전 모델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쿤은 패러다임의 개념을 보다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정상과학이 굳건히 건립되기 이전을 고찰한다. 과학의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여러 특징적인 학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현상들을 기술하고 해석”(41p)한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분기 현상은 점차로 가라져 간다. 이 분기 현상의 사라짐이 곧 정상과학에로의 길(the route to normal science)이다. 이 차이의 사라짐은 그 학파 고유의 특성적 신념과 선입견 때문에 지극히 방대하고 미완성인 정보 더미의 어느 특수 부분만을 강조했던 패러다임 이전 학파들 가운데 하나의 학파의 승리에 기인한다.”(ibid.) 이렇게 하나의 학파가 승리를 거두면, 이전의 경쟁하던 학파들은 점진적으로 사라져가고 경쟁하던 학파에 속하던 연구자들은 승리한 학파로 전향하기도 한다. 이 정상과학에로의 길은 패러다임이 가지는 일종의 배타성을 적절히 보여준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 분야의 새롭고 보다 확고한 정의를 내포한다. 자기들의 연구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시키는 것을 원치 않거나 또는 적응시킬 수 없는 사람들은 고립된 채로 계속해야 하든가 아니면 스스로를 어느 다른 그룹에 소속시켜야 한다.”(43p)

 “그렇다면 한 그룹의 단일한 패러다임의 수용이 허용하는 보다 전문화되고 심오한 연구의 성격은 무엇인가? 만일 그 패러다임이 일단 완전히 수행된 연구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통합된 그룹에게 어떤 문제들을 해결 과제로 남겨놓는가?”(49p) 이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정상과학의 본성(the nature of normal science)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주어진 문제들을 푸는데 있어서 여타의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정상과학은 주어진 문제들을 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이며 그 약속의 실제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연구자들은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고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에 일치 정도를 증진시키면서 그리고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50p)시키면서 정상과학을 유지해나간다. 정상과학은 세 가지 핵심적인 속성들을 갖는데, 1) “패러다임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특히 뚜렷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으로 밝혀진 사실들의 부류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 사실들을 적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그 사실들을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결정한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52p) 2) “패러다임의 존재는 풀어야 할 문제를 설정해준다.”(53p) 3) “패러다임은 모호한 이론의 일부를 해결하고 이전에는 단지 관심에 그쳤던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준다.”(54p) 이러한 정상과학의 본성을 정리하면, “의미 있는 사실의 결정, 사실의 이론에의 일치 그리고 이론의 명료화”(61p)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정상과학 내에서, 즉 하나의 패러다임 내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종의 퍼즐풀이와 같은 것이다. 쿤은 그것을 퍼즐풀이로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 as puzzle-solving)이라고 표현한다. 패러다임은 문제를 설정하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한다. 따라서 여기서 제공되는 문제들은 과학자 사회가 과학적이라고 인정하거나 또는 그 구성원들에게 참여하라고 권장하게 될 유일한 문제들이 된다.”(68p) 정상과학이 하나의 퍼즐풀이라면, 거기에는 분명한 해답도 있고 또 그 풀이에 관한 일정한 규칙도 존재한다. 패러다임이 바로 그 해답이 확실히 있다는 것과 풀이의 규칙을 제공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패러다임 내에서 주어진 규칙에 입각하여 해답이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추동되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 과학자 개인이 도전하는 것은 나머지 퍼즐들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점이며, 그 규칙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규칙을 부여하는 것은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과학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실재(reality)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과학자들이 자신의 문제풀이가 어떤 규칙에 의해서, 또 문제 자체가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알고서 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은 우선성(the priority of paradigms)는 분명한 것이다. 실제적인 과학적 작업들이 패러다임의 우선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교과과정에서 원리 자체를 배우기 보다는 그것의 응용과 실제적인 풀이를 통해서 원리를 간접적으로 체득하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우선성이 더 중요한 이유는 정상과학이 무리없이 잘 수행될 때가 아니라 정상과학이 위기에 닥쳤을 때이다. 정상과학에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해보려고 시도할 때, 과학자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풀어왔던 문제 설정, 문제 풀이의 규칙 자체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anomaly)의 지각이 곧 새로운 발견이다. 즉 발견은 자연이 정상과학을 다스리는 패러다임-유도의 예상들을 어떤 식으로든 위배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다음 단계로 이상 현상의 범위를 다소 확장시켜 탐사하는 것과 더불어 지속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이 기대치가 되도록 패러다임 이론이 조정되는 경우에만 종결된다.”(90p) 우리가 과학적 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례들, 예를 들어 산소의 발견, X선의 발견 그리고 라이덴 병의 발견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 특성이란 이상 현상에 대한 사전 인지, 관찰적 및 이론적 인식의 점진적 및 동시적 출현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흔히, 저항을 수반하는 패러다임 범주와 과정의 변화를 포함한다.”(101p) 일반적으로 하나의 패러다임은 그것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서 상당히 성공적이란 이유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 아래서 수행된 관찰과 실험은 대부분은 주어진 문제들을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후에 정교한 장치들이 제작되고 이론이 더욱 명료화된다. 이런 전문화는 문제들을 푸는 데 더욱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과학자들의 시야를 크게 좁히는 결과도 초래한다. 따라서 과학은 점점 더 경직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이 발견된다. , “이상은 패러다임에 의해서 제공되는 배경에서만 나타난다. 패러다임이 정확하고 영향력이 클수록 그것은 이상 현상에 대하여, 따라서 패러다임 변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보다 예민한 지표를 제공한다.”(104p)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문제와 그 문제의 규칙들로 설명될 수 없는 여러 현상들이 발견됨에 따라 패러다임은 위기를 겪는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졌을 때, 기존의 플로지스톤 이론에서 라부아지에의 산소에 대한 발견이 제시되었을 때 그리고 뉴턴 역학의 절대 공간 개념에서 아인슈타인의 공간개념이 제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 가지 실례는 전형적인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각 경우 새로운 이론은 정상적 문제 풀이 활동에서의 현저한 실패를 본 후에야 비로소 출현했다.”(117p) , 하나의 패러다임이 위기(crisis)를 겪게 되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이론이 발생(emergence of scientific theories)한다.

 위기가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필수적인 선행조건이라면, 과학자들은 위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먼저 정상과학은 이론과 사실이 보다 가깝게 일치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패러다임 내에서 확증 또는 반증에 대한 시험이나 조사들이 그러한 노력의 증거임을 보여준다. 만약 이상 현상이 위기를 유발시킨다면, 그것은 단순히 변칙 이상의 것일 수밖에 없다. 만약 변칙적인 것이나 단순히 풀리지 않은 문제라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곧 설명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상현상이 그 이상의 것이라면, 하나의 이상 현상이 정상과학의 또다른 퍼즐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되는 때에, 위기로 그리고 비상과학으로의 이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상 현상은 그 자체로서 이제 전문 분야에 의해서 점점 일반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그 분야의 가장 탁월한 많은 학자들이 그것에 차츰 더 많은 주의를 쏟게 된다.”(128p)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패러다임이 제공한 규칙들과 문제 설정 자체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게 된다. 일부는 한 패러다임 내에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할 것이고 패러다임을 명료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럼에도 이상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면, “정상과학의 규칙들은 점증적으로 모호해진다. 패러다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실제로 연구에 종사하는 이들 가운데 그것에 관하여 전적으로 합의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것으로 들어나게 된다. 이미 풀린 문제들의 표준 풀이조차도 의문의 대상이 되고 만다.”(ibid.) 결국 모든 위기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모호해짐과 더불어 그리고 정상과학이 제공하는 규칙들이 느슨해지면서 시작된다. 이상 현상이나 위기에 직면하면, 과학자들은 현존하는 패러다임에 대하여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그들의 연구의 목표나 성격도 달라지게 된다. 이로부터 여러 경쟁적인 이론들이 쏟아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쿤은 비상적 연구라고 부르며 정상과학, 위기, 비상적 연구/비상과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축적적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이러한 위기의 급증, 비상적 연구는 과학학명을 야기시킨다. 그렇다면 과학혁명은 무엇이고 그리고 그것은 과학의 발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141p) 쿤에 따르면 여기서 과학학명이란, 옛 패러다임과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서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비축적적인 발전에서의 에피소드들”(ibid.)이다. 그렇다면 왜 혁명인가?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혁명이라는 개념을 과학적 탐구의 영역에 사용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과학혁명이란, 기존 패러다임이 자연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탐사에서 이전에는 그 방법을 주도했으나 이제 더 이상 적절하게 구실하지 못한다는 의식이 과학자 사회의 좁은 분야에 국한되다가 점차로 증대되면서 시작된다. 정치적, 과학적 발전의 양쪽에서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기능적 결함을 깨닫는 것은 혁명의 선행조건이다.”(142p) 위기를 태동시킨 정치적 시스템 혹은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을 깨닫는 것은 양자에게 동일한 것이며 정치에서 기존 체제와 새로운 체제를 세우려는 편으로 양극화되면 정치에의 의존이 무너져버리듯, 과학에서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려는 측면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측이 대립할 경우 그것은 양립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가 되고 이는 기존 패러다임에의 의존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각 측의 주장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혁명이라 불리는 사태, 새로운 종류의 현상이나 새로운 과학 이론의 동화가 그것들보다 구식인 패러다임의 폐기를 강요해야만 하는 본연적인 이유가 존재하는가?”(144p) 이는 과학이론의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과학혁명의 필연성(necessity of sciectific revolutions)을 설명할 수 있다. 쿤에 따르면 새로운 과학적 이론이 제시될 수 있는 상황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이것들은 인식된 이상 현상들로서 그 특성적 성격(characteristic feature)은 기존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강경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현상만이 새로운 이론들의 작인이 된다.”(148p) 이러한 상황에서 탄생한 이론들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이론,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라부아지에의 이론들이다. 이러한 이론의 탄생은 기존의 패러다임과 양립할 수 없는 개념적 변환을 몰고오며 이는 결정적인 파괴력을 갖는다. 쿤은 그러한 개념적 변환 자체를 과학에서의 혁명적 재배치의 원형으로 보아도 좋을 것”(154p)라고 주장하며, 낡은 이론에서 새로운 이론으로의 전환을 과학혁명이라고 명명한다. 이렇게 패러다임의 전환 혹은 과학혁명이 발생하면, 이전의 패러다임 내에서 과학적 작업과 현존하는 패러다임 내에서의 과학적 작업은 전적으로 양립되지 않은 것(incompatible)일 뿐만 아니라 비교 불가능한(incommensurable)것이 된다. 왜냐하면 제시되는 문제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 내에서 퍼즐풀이는 전적으로 다른 규칙들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패러다임은 단순히 인식적 측면에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규범적 측면에서도 기능한다.

 이러한 과학혁명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세계관의 변화(changes of world view)이다. 물론 이전 패러다임 속에서의 과학자와 현존하는 패러다임 속에서의 과학자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다른 것을 관찰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이는 똑같이 떨어지는 돌을 관찰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떨어지는 것을 돌의 본성(, 상태의 변화에 주목)으로 설명하였고 갈릴레이는 임페투스 이론의 영향을 받아 운동, 즉 하나의 과정에 주목하였다. 이는 직접적 경험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며, 어떤 사태에 대한 관찰이나 실험이 전적으로 패러다임이라는 제약 속에서(이를 적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면 조건속에서) 이루어지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뚜렷한 세계관의 변화를 야기시키는 과학 혁명은 실제로 비가시적인 성격(invisibility)을 갖는다. 이는 일반적인 과학 교육 방법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 교과서를 배우고 그 권위를 의심하지 않는다. 과학교과서는 이미 명료화된 일단의 문제들, 데이터, 이론 그리고 가장 빈번한 경우로는 그것들이 쓰인 시기의 과학자 사회에 공양되어 있는 일련의 특정 패러다임에 관해서 논의하게 된다. 교과서들 자체는 당대의 과학적 언어의 어휘와 구문을 전달하는 것을 겨냥한다[...]그러나 교과서는 정상과학의 영속을 위한 교육적 수단으로서 언어, 문제 구조 또는 정상과학의 기준 등이 바뀔 때마다 그에 따라서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다시 쓰여야 한다. 요컨대 교과서들은 매 과학혁명을 거칠 때마다 바뀌는 것이며, 이렇게 새롭게 쓰인 교과서들은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생산했던 혁명의 역할뿐만 아니라 혁명의 존재 자체까지도 가려버리고 만다.”(198-199p)

 그렇다면 과학혁명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앞서 논의에 따르면 기존 패러다임과 현존 패러다임은 비교불가능한 것이며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각 과학자들은 어떤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며, 또 서로 다른 관계에서 그것들을 본다.”(215p) 그것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혁명적이며 동시에 하나로부터 다른 것의 이행(transition)’ 혹은 개종(conversion)’을 거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이행 혹은 개종이 가능한 것은 옛 패러다임을 위기로 끌고 간 문제들을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다는 점”(218p)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두 패러다임을 날카롭게 구분시켜줄 수 있는 결정적인 실험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실증적인 증거까지 확보된다면 이행이나 개종이 더 쉽게 가능해진다.

 우리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이행을 하나의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양립 불가능하며 비교 불가능한 것 아닌가? 분명한 것은 과학혁명은 대립되는 두 진영의 어느 한쪽이 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종식된다.”(235p)라는 것이다. 이 승리에 발전이라는 개념을 쓸 수 있는가? 이는 과학자 사회의 본성을 설명함으로써 답을 얻을 수 있다. 과학자 사회는 세부적인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풀이로서 수용되어야 한다. 그들은 이미 게임의 규칙을 공유하고 있고 과학자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규칙을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학자 사회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해결되는 문제의 수요와 정확도를 극대화하는 고도의 효율적인 매커니즘”(237p)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연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자 집단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방향은 과학적 진보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 유형의 발전이 그러한 활동이 존속하는 한 필연적으로 과학 활동을 특징지을 것임도 동시에 보여준다. 과학에는 다른 유형의 발전이 있을 필요가 없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우리는 패러다임의 변화들이 과학자와 과학도들을 점점 더 진리에 가깝게 인도하고 있다는 관념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239p)

 

3.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기존의 축적적 발전이라는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진보에 대한 통념을 비판하고 그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개념을 통해 다시 서술하고 있다. 쿤의 관점을 우리가 수용한다면, 패러다임이라는 일종의 제약혹은 조건아래서만 우리는 지식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의 확장이 보편적이면서 필연적인 진리로 다가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탐구는 이미 패러다임에 의해서 방향지워져 있고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것 역시 패러다임이라는 색안경에 의해서 조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식을 생산하고 보존하는 모든 활동은 이와 같이 미리 방향 잡혀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는 특수한 영역, 즉 과학이라는 영역에만 국한된 것인가? 쿤의 논의에서 나는 패러다임이 일정한 물질적 성격 혹은 규범적 기능까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이데올로기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패러다임을 하나의 이데올로기’(여기서 이데올로기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미리 방향잡고 있는 어떤 것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데올로기 비판은 어떻게 가능한가? (쿤에 의해서 그러한 가능성은 이미 차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은 양립 불가능하고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더 나아가서 우리가 앞서 보았던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과 같은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형태의 이념형을 제시하는 것도 일종의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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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상상력과 도전』


1.

『지식인이란 누구인가』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사례를 통해 “지식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지적하다시피 “20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념적 독재도 모르고 식민지 경험도 없고 외국의 영향력 아래 핍박받지도 않았다.(8p) 따라서 만약 우리가 지식인이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의 지식인은 프랑스의 지식인과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지식인은 누구인가?” 아니 도대체 “한국에 지식인은 있었는가?” 이런 특수성에 국한된 질문의 한계를 넘어 진정 “지식인은 누구인가?” “프랑스 지식인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그 지식인의 전형을 밝혀낼 수 있는가?

 이 글을 통해서 위의 질문에 답을 해보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지만, 그 전망은 불투명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다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활동들을 정리하면서 그에 관한 답을 간접적으로나마 찾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1) 19세기 말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자유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삶은 여전히 열악한 저지에 놓여있었다. 그들은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노조 설립을 위한 자유를 확보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 투쟁 했어야 했다. 페르낭 펠루티에는 노조 운동을 펼치며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한 지식인이었다. 펠루티에가 활약하던 시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노동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펠루티에의 노조 운동(부루스 운동)이 다른 운동들과 구별될 수 있었던 것은 펠루티에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의 정신은 집약하면, 혁명은 노동자의 손으로, 노동자의 의식으로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노동자의 독자성이었다.(17p)

 펠루티에는 당대의 노동문제에 관하여 감정적인 접근보다는 과학적 인식을 추구했다. 당대의 계급적 격차는 분명했고 펠루티에는 이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고민했다. 당대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웠고 공교육에서 배제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펠루티에는 이 문제를 고민했고 노동자들이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노동운동이 과학적 지식을 장전해야 사회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21p)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펠루티에는 부르스를 만들었다. 부르스는 일종의 지역별 노조였다. 부르스는 취업 서비스를 제공했고 특히 강좌와 도서실을 열어 위에서 언급한 교육의 격차 및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운동을 위한 지적인 토대를 만들고자 했다. 당대 노동자들은 “직업 강좌에 관심이 많았고 일요일 저녁의 시 낭독회에도 많이 모였다. 그들은 또 산업재해 사고에 대한 구체적 절차, 구식과 신식의 노동 방식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지식을 수집하고 강론을 듣기를 원했다.(29p)

 펠루티에는 부르스를 설립하고 다양한 기고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그 산물이 ‘총파업론’이었다. 펠루티에는 총파업을 “전반적인 파업이 아닌, 인력과 물자의 유통을 와해시키고 그로써 식량 부족과 억압적 기구의 마비를 도발하도록 하는 몇몇 전략 산업 부분에 국한될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낭만적 봉기가 아닌 폭력을 포함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국가를 타도하고 경제적 권력을 근로자들에게 주는 혁명이었다.(34p)

 펠루티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독자성에 대한 강조와 이를 돕기 위한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불평등에 의한 지식의 불평등은 곧 경제적 불평등으로 연결되기에 펠루티에의 문제의식은 의미 있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두 번째 지식인의 사례로 소개되는 것은 장 조레스이다. 조레스가 활동하던 당시 유럽은 전쟁의 위협에 휩싸이고 있었다.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반전주의자들이 우세한 고지를 차지하기는 어려웠다.(46p) 반전 문제에 먼저 대비한 측은 노동운동 측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사회당의 조레스가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레스는 하원의원 이었고 사회주의가 프랑스에 뿌리 내리도록 노력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다양한 매체와 연설을 통해 전쟁을 반대했다. 그는 단순히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기 위해서 전쟁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반전 활동과 사상을 통해 사회주의가 민족과 문명을 수호를 위하려는 것이었다.(51p) 조레스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 세계에세 전쟁은 영구적이고 보편적이었다. 전쟁의 배후에는 무기 상인들이 있고 절대주의 체제가 그것을 후원한다. 조레스의 특이점은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자본주의에서 찾았지만 전쟁을 인류의 문제로 확대”(54p)한 것이다. “전쟁은 그에게 모든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의 전쟁이었다. 전쟁은 한 계급 내에서 개인들에 대한 개인들의 전쟁이며, 한 나라 안에서 계급들에 대한 계급들의 전쟁이고, 인류 안에서 인종에 대한 인종의 전쟁이고, 민족에 대한 민족의 전쟁이었다.(ibid.)

 당대는 민족주의가 강성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대의 민족주의는 주로 우익 민족주의였다. 예를 들어, “독일의 병력이 자국에 비해 강하고 프랑스는 이에 대배해야 한다는 식의 논조”(57p)는 우익 민족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조레스는 이러한 민족주의에 대항에 지속적으로 반전을 주장했다. 그는 의회 연설을 통해 반전을 주장했으며 2차 인터네셔널에서 그 희망의 불씨를 찾고 있었다. 2차 인터네셔널의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민족의 불가침성과 불접촉성, 그리고 평화의 유지를 위해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조직될 의무가 있음을 확인했다.(65p)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레스에게 민족과 계급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는 커다란 숙제로 남아이었었다. “조레스가 추구하는 민족은 혁명 후의 나라와 동일한 상이었다. 민족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자라날 수 없었다[...]그는 어떠한 군국주의 국가라도 그 안에서 자유라는 혁명적 힘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민족이 성립되거나 구출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옛 조국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집단에 의해 착취당했다. 그 조국은 새롭고 우월한 조국으로 바뀌어야 했다. 국제주의는 그러한 각 민족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었다.(67p)

 그러나 결국 독일에 의해 전쟁이 선포되었고 독일의 사회주의는 전쟁에 반대하지 못했다. 조레스는 반전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량을 믿었다. 따라서 민족문제로 인한 대립과 적의에 대한 대중적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중적 감정은 쉽게 반전을 위한 결의로 모아지기 보다는 타자에 대한 적의와 대립의 감정으로 깊어지기 쉬웠다. 조레스의 사례는 이러한 점에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고 곱씹어 봐야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3) 세 번째 사례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작가들이다. 그 중 앙드레 지드가 소개되고 있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파시즘이 득세하고 있었다. 이에 대항해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반파시스트 감시위원회를 만들고 활동하였다. 여기에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앙드레 지드는 본래 정치적 활동을 활발히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시즘의 위협이 대두하자 정치의 세계에 들어섰다. 지드는 먼저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렬한 고발과 반성에 대한 글을 썼다. 그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본 참상을 적었고 당대 식민지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통념의 장벽을 넘어서려고 했다. 또한 반파시즘 운동에 열성을 보였는데, 그는 독일 반파시스트들을 위한 협회의 수장을 맡으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지드 뿐만 아니라 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은 감시위원회 활동을 통해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와 의식을 보였다. “문화의 정의는 전쟁과 파시즘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문명을 침해하는 모든 위협에 맞서 자신의 영역에서 싸우는 것이었다. 작가들이 수호하려는 문화는, 쇄신된 계몽의 문화였다. 권력에 대한 비판, 분명한 사고와 참여, 대중의 교육과 지적이고 도덕적인 행동, 사회구조를 훨씬 큰 개인의 자유와 정의를 향해 진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96p)

 지드를 비롯한 프랑스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파시즘에 대항했다. 그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책자를 발간하는 일과 같은 것들이었지만, 이는 앞서 제시한 문화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숙고해 보아야할 문제이지만,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적 체제를 저지할 수 있는 길은 또 다른 전체가 아니라 명료한 의식과 행동양식을 가진 개인들의 구성체”(98p)라는 생각을 확고히 견지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며, 전체와 개인 사이에서 작가나 예술가들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제시된 사례는 알제리 전쟁기의 청년 지식인들이다. 당대 프랑스인들은 알제리를 프랑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알제리는 프랑스와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에 들어간 것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알제리를 여타의 식민지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2차 대전 후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을 쟁취하였고 알제리에서도 민족해방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민족해방운동의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이에 대항하여 알제리 내의 프랑스 군부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은 ‘고문’에 관한 문제였다.

 프랑수아 모리악은 고문 제도에 대해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었다. 고문과 폭력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프랑스인들에게서 알제리인들의 저항은 정당하게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제리는 프랑스 국토라는 관념이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악은 이러한 상황에서 고문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논쟁을 계속하였다.

 그 후에 오댕 사건이 벌어졌다. 오댕은 알제 과학대학의 조교였으며 공산당원이었다. 그는 고문을 받고 살해되었는데, 그의 부인이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오댕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오댕 사건의 진상조사와 고문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 후 오댕 위원회에는 천 여명의 교사들이 가입하였고 오댕 사건에 관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주요 프랑스 일간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기에 오댕 위원회는 이 사건을 알리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신문(訊問)>이 발간되었고 많은 지식인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 책에 대하여 입수 조치를 취하였으나 지식인들의 반대 서명이 이어졌고 이 책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다른 나라에 까지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러한 고문과 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문은 여전히 합법적인 범죄로 남아있었다. 오댕 사건 이후 자밀라 부파차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이고 공산당원이었던 오댕과 달리 자밀라는 평범한 알제리 여성이었다. 그는 테러범으로 지목 받고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이에 대해 보부아르는 자밀라의 변호인을 만났고 이 사건을 알렸다. 보부아르의 글은 고문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 후 알제리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프랑스 본토에서도 정치적인 국면 변화가 있었다. 특히 알제리 독립 문제에 관하여 “정치적 해법뿐 아니라 사회적인 도덕성이 일부에서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민족자결권을 향한 열망에 대해 고문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여 지식인과 교회 지도자들, 청년과 학생들이 평화를 요구했다.(125p)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 곧 ‘121인 성명서’이다. 121인은 이 전쟁이 정복 전쟁도 아니며 국방 전쟁도 아니며 내전도 아니며 점점 더 군부 자체와, 봉기 앞에서 양보하지 않으려는 일단의 특수계층이 주도하는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알제리 인민에 반대하여 무기를 들기를 거부하며, 프랑스 인민의 이름으로 억압받고 있는 알제리인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 프랑스인들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성명서는, 결정적인 방식으로 식민체계의 붕괴에 기여하고 있는 알제리 인민의 대의는 모든 자유인의 대의라고 못 박았다.(ibid.) 서명을 한 121인은 정치적 계파와 상관 없이 많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좌파와 우파 지식인들은 각론에 있어서 입장은 달랐지만, 좌우에 관계 없이 모두 고문에 반대하였고 알제리 인민의 독립이라는 대의에 찬성하였다.

 전쟁 이후에도 프랑스의 언론은 고문과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이러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언론의 노력은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재생될 수 있는 고문과 같은 민감한 매커니즘을 새 세대에게 제시하여 과거를 모르는 세대에게 공공의식을 심어주려는 것”(131p)이었다.


3.

 프랑스의 지식인들의 사례로 보건대, 저자가 생각하는 ‘지식인’이란 당대의 민감한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의 지평이 무제한적으로 ‘개방’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참여’가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목적’을 갖고 있을 때, 그들은 ‘지식인’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나치의 인종차별에 기여한 우생학자를 지식인이라고 평가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지식인은 누구인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라는 이념은 누구에게나 몫을 내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앞서 말했던 ‘참여’가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목적’은 늘 역사적인 평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여전히 많은 질문들이 이어지지만,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보다 정교한 질문들이 던져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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