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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 - 문화사 이야기 ㅣ 지식전람회 15
오은경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건, 빅백(Big Bag)이다. 직업 특성상 온갖 책, 사전(!), 펜, 수첩, 화장품, 지갑 등등을 마음껏 가지고 다니려면 빅백이 필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큰 백을 들고 다니면 저녁때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필통도 1/5로 줄이고, 화장품도 안가지고 다니게 되고(-_-), 될 수 있는 한 가볍게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가지고 다니는 책도 문고본이거나 이라이트 종이를 쓴 책이 좋더라.
그런 의미에서 프로네시스에서 최근 나오고 있는 '지식전람회' 시리즈는 내 취향에 맞는 문고본이다. 그래서 즐겨 읽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가장 최신간인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이다. 9.11 이후 전세계적으로 이슬람이 이슈가 되면서, 이슬람 관련 책들을 하나둘씩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이제서야! -_-) 문고본으로 나온 것을 보고 반갑게 읽게 되었다.
크게 3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이슬람에서의 여성의 삶이 무엇인지, 이슬람 여성의 삶의 대표적 아이콘인 베일의 역사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이슬람이 베일을 포기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60쪽이 채 안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어마어마한 주제의 내용을 만족할 만큼 다루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좀 더 다양한 이슬람 여성들의 삶의 모습과 생생한 목소리를 원했는데,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는 이슬람에 대해 궁금한 '완전' 초심자들을 위한 개론 위주로 책의 컨셉을 잡은 듯 했다. 다만 각 나라별 베일 쓰기 현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면, 그걸 계기로 어렴풋이 '중동'이라고 불리는 이슬람권 국가들의 현재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은 있다(여기에는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정도의 이야기만 나온다).
여러모로 못내 아쉬웠지만, 2차 대전 이후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벗어나 민족주의 열풍에 휩싸인 중동, 아시아 등의 어지러운 현실 정세, 혹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9.11로 대변되는 문명의 충돌 같은 현상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베일'을 보고, 그 베일을 써야만 하는(혹은 벗어야만 하는) 이슬람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단순히 서구의 인권 운운하는 논리가 아니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인상적인 책이었다. 또한 이런 개론서 성격의 책들이라도 중동 지역이나, 동남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 등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반길 만한 현상이라는 점에서도 이 책에 의의를 두고 싶다.
이 책에 나온 일화 중 충격적인 사실은, 불이 났는데도 부르카를 하지 않았다고 집안에 갇힌 여성들을 구하지 않은 소방관이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생명이나 직업 윤리(이건 부차적이겠지만)가 종교적 가치나 민족주의보다 더 못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고, 터키 같은 나라에서 저항의 의미로 더 베일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단순히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걔네 풍습인데 내가 말해 뭐해 이런 차원에서 말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천에 불과한 베일이라는 것이 내포하고 있는 그 수많은 의미들 때문에 쉽게 베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현실은 어쩌면 유럽과 미국의 주류 백인이 아닌 전세계인들의 아픈 현대사이자 살기 퍽퍽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속상했다.
이 책은 이슬람과 이슬람 여성들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가볍지만 무겁게 읽을 만한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