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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미래에 의해 바뀌는 과거...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의 삶에 의해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도 바뀌고 있다. 사랑은 사실은 원본은 없고 복제본만 있는 기억과 추억의 시뮬라크르일까. 그것도 그대로 복붙이 아닌 변형된 복제...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건 서로간에 소통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게 사랑의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되었다.
주인공 남녀의 사랑은, 일상에 찌들어 생활인이나 직업인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아빠 엄마 선생님 기자 이런 사회적 이름이 아닌 진짜 나만의 오롯한 생각과 느낌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로 오랜 시간을 끌고 왔다. 강렬하고 뜨겁진 않지만 지속된 그리움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참은 그들의 (일견 단순해 보이는) 사랑을, 리먼사태, 도쿄대지진, 이라크전쟁과 같은 세계적인 이슈를 겪는 복잡한 세계사를 관통하는 강한 원동력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주인공이 '애드립이 가능하지 않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것도 어쩌면 그 대비를 명확히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마키노와 사이에서 오해와 엇갈림, 리처드와 잘못된 결혼을 하는 동안 요코가 인터넷이나 블로그 같은 sns활동을 왜 하는지 모르겠는 옛날사람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록 익명이지만 점차 블로거로 거듭나면서 자기 세계 안의 사람-아버지를 비롯-들과 명확한 소통을 해나가는 모습들로 소설의 흐름이 바뀌는 것에서 흡입력이 최고조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ptsd를 진짜로 극복하고 겉모습으로 차가워보였던 요코는 이제 내면까지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자기 감정까지도 절제하는 멋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장을 덮으며 열린 결말의 아쉬움도 잠시, 사실 저들이 다시 결합해도 결합하지 않는다 해도 그건 그들의 몫이기 때문에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행복한 현실과 미래에 돌아봐도 행복한 과거의 선택을 했길 바랄 뿐이다.
첨언; 일본소설은 몇 권 읽어보지 않았지만, 늘 읽을 때마다 우리나라 소설가들의 세계관과 좀 다르게 글로벌하고 확장성이 녹아 있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