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면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을 모양이다.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로 보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어지는 듯한 분위기인 것 같은데 이 발표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 같다. 이 사건의 발생과 수습의 전 과정이 한반도에 얽힌 중층적인 역학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중층성은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이해관계를 포괄한다. 우리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이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독해와 대응이 필요할 것 같다.
한겨레 (5.18) [세상읽기] 천안함 사건, 깊이 읽고 대응하기 / 박명림
국민 모두가 가족과 함께 울었던, 갑작스레 다가온 비극 천안함 사건을 현실과 역사에서 어떻게 가치롭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급작스런 사건일수록 우리는 당혹과 이념편향을 넘어 냉정하게 현실적 미래적 이익을 타산하여 깊고 길게 성찰하고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천안함 사건의 의미는 국민 생명 보호의 문제이다. 국민 생명 보호의 일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전쟁 방지를 포함해 그 국민엔 군인도 포함된다. 금강산 박왕자씨 희생, 개성공단 유성진씨 장기억류에도 불구하고 - 남북관계 개선이든 대비 강화든 -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정부는 끝내 군인 46명을 잃고 말았다. 최초 국민 생명 보호 실패에 대해 정부는 책임지고 재발 방지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러나 평시에 무고한 국민 46명을 잃고도 아직도 군과 정부의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고 있다.
둘째, 국가안보와 국민통합의 위기 문제이다. 부모봉양·가난·가족생계·학업 등 천안함 희생자들의 해군 지원과 승선 사유는 그들의 죽음 못지않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희생의 반대편에서 국가 최고위직들 - 대통령·총리·국정원장·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정책실장·감사원장·여당원내대표·재경부 장관… - 은 너무도 많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 개별적 병역면제의 사유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에서 ‘국민개병제’는 사실상 ‘계층차병제’ ‘하층개병제’로 전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국가 고위직의 최고 병역면제율을 보여준다. 신분·직업·재산에 관계없이 국가방어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개병제의 최대 성과는 국가안보·국민평등·국민통합·애국심의 획기적 제고였다. 천안함 사건이 대비시켜준 일반국민과 보수정부 핵심 인사들의 병역사항은 국민통합과 애국심을 누가 보수했는지 묻게 한다.
셋째, 남북관계와 국내정치 차원이다. 한 번의 말이나 사건으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간의 남북관계사는 잘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번 희생을 어떻게 의미 있는 현실과 역사로 승화시킬 것인가? 요컨대 지금은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의 남북관계 단절, 북핵대화 중단, 한반도문제 주도권 상실, 한반도 상황 불안화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남북관계 안정, 북핵대화 재개, 한반도문제 주도권 복원, 한반도 상황 안정화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중대 갈림길인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 역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쪽은, 외부와의 적대를 통해 내부단결을 제고하고 핵무장을 가속화하려는 북한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일부’ 대결주의나 군부의 책임회피 논리에 빠져 ‘북한 전체’를 이롭게 하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 남북 대결과 북한 공세의 상황에서도 냉혈적인 실용주의로 대화를 추진한 박정희의 뚝심과 현실주의를 빌려오길 바란다. 남은 임기 2년 반을 허송한다는 것은 결국 임기 5년 전체의 남북관계·한반도 문제에 해당한다. 게다가 2000년 4월 정상회담 발표와 16대 총선 결과, 2002년 2차 북핵위기 도래와 노무현 당선,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과 이명박 당선에서 보듯 남북관계와 국내선거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을 만큼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의식은 성숙해졌다. 그렇다면 정권 또는 국내정치 차원의 북풍 활용 유혹은 당연히 벗어버려야 한다.
넷째, 국제 차원이다. 1894년 작은 농민봉기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응은 결국 청·일에 대한 초청과 전면개입·청일전쟁으로 상승되고, 그것은 끝내 한국의 부유국가화로 연결되었다. 한국은 작은 문제조차 전체적 국제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깨선 안 된다. 20년의 노력으로 힘겹게 구축한 한-미 동맹 공고화와 한-중 협력 강화의 병행, 한-미 안보동맹과 한-중 경제협력의 이중주를 천안함 사건 하나로 훼손해선 안 된다. 또 중국에 대한 발언권 상실은 6자회담·북핵·남북관계·한반도 문제의 발언권 위축으로 연결된다.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당한 영혼들을 가장 잘 기리는 길은, 그들의 희생에 바탕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공고히 하는 일이다. 비극을 국가 덕성의 발휘 계기로 삼는 이성적 리더십, 지금 그것은 대통령과 정부에 달려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