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도 이벤트 성 사건에 휘둘림이 없이 남북문제를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 5.17 [세계의창] 김정일이 중국에 간 이유 / 셀리그 해리슨

북한이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만일 북한이 그랬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남북정상선언을 회당에 안치하고, 남북공동성명을 부인했다. 북한의 보복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이는 만일 북한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 북한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두 번의 정상선언을 거부하는 것은 북한에 남한이 또다시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건 이명박 정부가 두 정상선언을 분명히 받아들이고 비핵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남한은 북-미 양자 비핵협상, 남북한·미국의 3자 평화협상, 그리고 6자회담 재개 등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비핵화는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집권당내 강경파들이 이명박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 6일 워싱턴을 방문한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미국 관료들을 만나 서해에서의 한-미 합동 해군훈련,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등을 촉구했다고 한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전의 군사적 긴장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남북한 양쪽의 군사비 증강을 뜻한다. 어떤 분석가들은 군사비 증강이 남한의 경제발전에 득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존 페퍼(미 정책연구원 외교정책포커스 소장)는 한미경제연구소(KEI) 보고서를 통해 “군사비가 경제적 이득이 된다는 것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서재정 교수(존스홉킨스대)는 논문에서 “남한의 군사비용은 정부, 군, 방위산업체의 긴밀한 네트워크인 ‘군산복합체’에 의해 주도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의 방위산업체에 326명의 전직 장성과 장교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페퍼는 연간 70억달러 규모의 북한 국방비 규모로는 남한(200억달러)을 따라올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남한에서는 군산복합체들이 군비감축의 반대 최전선에 서 있다. 북한에도 노동당내 강경파와 결합된 군산복합체가 있다. 김정일 치하에서 이들은 더 강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경제적 요인 때문에라도 군축이 불가피하게 된 측면이 있다. 이에 반해 남한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국내총생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북한에 비해) 높지 않아 실제 국방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군축 압력이 북한만큼 크지 않다. 미군의 존재도 군축을 시급하게 만들지 않는 또다른 이유다. 그러나 방위비가 복지비로 전이된다면, 남한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은 선진국에 비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료, 복지, 사회보장 비용이 매우 작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과도한 군사비 증가를 줄이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나는 1998년 탈북 직후 황장엽이 했던 예언적 인터뷰를 기억한다. 그는 “중국은 김정일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식량난과 경제침체가 계속되면, 김정일은 도움을 얻기 위해 중국에 항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중국의 나진항 개발을 허용해 중국의 오랜 숙원인 동해 진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연결될지 모른다. 이명박의 (대북 강경) 정책은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높였고,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미국과 남한의 비용증가로 귀결될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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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면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을 모양이다.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로 보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어지는 듯한 분위기인 것 같은데 이 발표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 같다.  이 사건의 발생과 수습의 전 과정이 한반도에 얽힌 중층적인 역학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중층성은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이해관계를 포괄한다. 우리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이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독해와 대응이 필요할 것 같다.


한겨레 (5.18) [세상읽기] 천안함 사건, 깊이 읽고 대응하기 / 박명림

국민 모두가 가족과 함께 울었던, 갑작스레 다가온 비극 천안함 사건을 현실과 역사에서 어떻게 가치롭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급작스런 사건일수록 우리는 당혹과 이념편향을 넘어 냉정하게 현실적 미래적 이익을 타산하여 깊고 길게 성찰하고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천안함 사건의 의미는 국민 생명 보호의 문제이다. 국민 생명 보호의 일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전쟁 방지를 포함해 그 국민엔 군인도 포함된다. 금강산 박왕자씨 희생, 개성공단 유성진씨 장기억류에도 불구하고 - 남북관계 개선이든 대비 강화든 -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정부는 끝내 군인 46명을 잃고 말았다. 최초 국민 생명 보호 실패에 대해 정부는 책임지고 재발 방지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러나 평시에 무고한 국민 46명을 잃고도 아직도 군과 정부의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고 있다.

둘째, 국가안보와 국민통합의 위기 문제이다. 부모봉양·가난·가족생계·학업 등 천안함 희생자들의 해군 지원과 승선 사유는 그들의 죽음 못지않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희생의 반대편에서 국가 최고위직들 - 대통령·총리·국정원장·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정책실장·감사원장·여당원내대표·재경부 장관… - 은 너무도 많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 개별적 병역면제의 사유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에서 ‘국민개병제’는 사실상 ‘계층차병제’ ‘하층개병제’로 전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국가 고위직의 최고 병역면제율을 보여준다. 신분·직업·재산에 관계없이 국가방어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개병제의 최대 성과는 국가안보·국민평등·국민통합·애국심의 획기적 제고였다. 천안함 사건이 대비시켜준 일반국민과 보수정부 핵심 인사들의 병역사항은 국민통합과 애국심을 누가 보수했는지 묻게 한다.  

셋째, 남북관계와 국내정치 차원이다. 한 번의 말이나 사건으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간의 남북관계사는 잘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번 희생을 어떻게 의미 있는 현실과 역사로 승화시킬 것인가? 요컨대 지금은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의 남북관계 단절, 북핵대화 중단, 한반도문제 주도권 상실, 한반도 상황 불안화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남북관계 안정, 북핵대화 재개, 한반도문제 주도권 복원, 한반도 상황 안정화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중대 갈림길인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 역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쪽은, 외부와의 적대를 통해 내부단결을 제고하고 핵무장을 가속화하려는 북한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일부’ 대결주의나 군부의 책임회피 논리에 빠져 ‘북한 전체’를 이롭게 하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 남북 대결과 북한 공세의 상황에서도 냉혈적인 실용주의로 대화를 추진한 박정희의 뚝심과 현실주의를 빌려오길 바란다. 남은 임기 2년 반을 허송한다는 것은 결국 임기 5년 전체의 남북관계·한반도 문제에 해당한다. 게다가 2000년 4월 정상회담 발표와 16대 총선 결과, 2002년 2차 북핵위기 도래와 노무현 당선,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과 이명박 당선에서 보듯 남북관계와 국내선거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을 만큼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의식은 성숙해졌다. 그렇다면 정권 또는 국내정치 차원의 북풍 활용 유혹은 당연히 벗어버려야 한다.  

넷째, 국제 차원이다. 1894년 작은 농민봉기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응은 결국 청·일에 대한 초청과 전면개입·청일전쟁으로 상승되고, 그것은 끝내 한국의 부유국가화로 연결되었다. 한국은 작은 문제조차 전체적 국제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깨선 안 된다. 20년의 노력으로 힘겹게 구축한 한-미 동맹 공고화와 한-중 협력 강화의 병행, 한-미 안보동맹과 한-중 경제협력의 이중주를 천안함 사건 하나로 훼손해선 안 된다. 또 중국에 대한 발언권 상실은 6자회담·북핵·남북관계·한반도 문제의 발언권 위축으로 연결된다.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당한 영혼들을 가장 잘 기리는 길은, 그들의 희생에 바탕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공고히 하는 일이다. 비극을 국가 덕성의 발휘 계기로 삼는 이성적 리더십, 지금 그것은 대통령과 정부에 달려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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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길  
                                                    

                                                           최하림

남제주에 봄이 상륙했다는 春信이 오고 난 뒤부터  

쩡쩡쩡쩡 해동 소리 산을 울린다 물속의 열목어도 잠에서 

깨어나 꼬리를 들고 강물도 숨 쉬기 시작한다 나는 겨울 

의 굽이에 누워 옴짝달싹 않는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 

다! 그러자 하늘의 통제실에서 경고성 버저가 삐익삐익 

울린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또 밤이 지나간다 부드러 

운 바람이 골짜기를 빠져나가고 수류가 소리를 내기 시 

작한다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빠르게 숲을 

뚫고 저수지 길로 내려간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얼음이 

바위 아래 남아 있고 흙을 파며 두더지들이 통로를 내는 

소리 버석버석 들린다 나는, 내 봄이 빠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모르면서 계속 들길을 걸어 내려간다

 <풍경뒤의 풍경> 문학과 지성사

어린이날 가족과 나들이를 나갔다 헌책방에서 몇권의 책들과 함께 구매한 시집이 최하림의 <풍경속의 풍경>이다. 십여일 전쯤 나는 신문에서 최하림 시인의 부고를 접했고 그의 시집을 한권이라도 챙겨두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의 <김수영 평전>은 소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시집은 한권도 갖고 있지 않았다.

시집 전체를 읽지는 못했지만 봄이어서 그런지 위의 '봄길'에 눈이 간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연상했다. 이상화는 봄은 왔는데 나라를 빼앗겨 그 봄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설움을 노래했다. 그러나 이 시는 봄은 오긴 오는 것 같은데, 봄이 오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아직 온전히 봄이 오지 않았다는 핑게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그린다. 지금은 남의 땅은 아니기에 봄이 오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남의 땅이 아니기에 온전히 나의 결단의 몫이다. 그런데 결단의 용기도 빼앗긴데서 오는 소외감 못지 않은 고독감을 수반한다. 그러기에 사르트르는 '자유에 의해 처단당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가? 

유독 겨울이 길었던 한반도에도 분명 봄은 올 것이다. 쩡쩡쩡쩡 해동소리 산을 울린다. 그러나 바위 밑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얼음이 남아 있다. 

최하림은 김현, 김승옥 등과 동시대 인물이고 그들과 함께 문학활동을 했으니 그 기간이 길었고 시인으로서 우리 문학사에 남긴 족적도 뚜렷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과문한 탓에 그의 시를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고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의 시집을 손에 들었으니 나도 참 둔감한 셈이다.    

최하림과 함께 내게 떠오르는 인물은 그보다는 훨씬 덜 알려진 여림이라는 시인이다. 여림이 본명은 아니다. 그의 이름은 여림의 시집 뒤에 해설을 쓴 그의 친구 박형준이 그를 '영진'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영진'인 것 같다. 그러나 성은 알수가 없다. 여림이라는 이름은 그의 선생이었던 최하림을 좋아해서 만든 예명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칼 하게 나는 여림을 통해 최하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여림의 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음 시를 보자.

                  실업  

                                               여림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 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 

순환선 열차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고 싶은 곳들이 많았다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여느 날의 퇴근길처럼 

포장마차에 들러 하루 분의 끼니를 해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과일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릅다웠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적 문제로 조금 실랑이질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다음날 해야 할 일들로 

가슴이 벅차 오히려 잠을 설쳐야 했다 

  

이력서를 쓰기에도 이력이 난 나이 

출근길마다 나는 호출기에 메시지를 남긴다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 

그는 결혼한 적이 없다하니 당연히 아이들이 있을 리 없다.  절망적이지만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진다. 시가 너무 명확하기에 무언가 덧붇히는게 오히려 군더더기다. 다음 시는 더 절절하다.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여림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흐르는 피 꽉 움켜쥐며 그대 생각을 했습니다. 

홀로라도 넉넉히 아름다운 그대, 

 

지금도 손목의 통증이 채 가시질 않고 

한밤의 남도는 또 눈물겨웁고 

살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고 싶습니다. 

 

뒷모습 가득 푸른 그리움 출렁이는 그대 모습이 지금 

참으로 넉넉히도 그립습니다. 

 

내게선 늘, 저만치 물러서 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여, 

풀빛 푸른 노래 한 줄 목청에 묻고 

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겨웁습니다. 

 ------------------- 

그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듯하다.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다시 살아야 한다는 걸 느낀다. 나는 고독한데 세상은 왜이리 아름다운가.  

기독교는 지상의 삶이란 건 영생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불교는 삶과 죽음을 윤회라는 거대한 틀에서 융합해 버린다. 유교에서는 삶도 모르는 데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사치라고 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예찬한다. 그리고 역사속에서의 계속적인 삶을 중시한다. 헤겔은 나폴레옹 등 세계사적 영웅이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는 쉽게 제시하는 듯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부족하다. 쇼펜하우어는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그냥 사는 것이다. 이를 그는 맹목적인 삶의 의지라고 불렀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앞의 단독자로서 자기자신을 찾는건 즉 자기가 되는 것이 진정 살아야 할 이유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 삶은 곧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것이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라고 이야기했던 알베르 카뮈는 삶이라는 것은 타자에서 비롯된 종교나 사상적 시각에서 보면 끊임 없이 산 위로 돌을 굴리는 시지프의 삶처럼 부조리한 것이지만 삶이란 것은 결국 개인적인 것으로서 자신의 삶 자체를 자신이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나의 삶의 신인 것이다.

위의 시들이 실려있는 <안개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는 여림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친구가 묶어서 펴낸 유고 시집이다. 그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인이었지만 그외 어떤 곳에도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한다. 그는 고독했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자살했는지의 여부는 모른다. 그냥 쓸쓸하게 홀로 죽어갔다고 그의 스승과 친구는 쓰고 있다. 110편의 유작을 남긴 채.

최하림은 그가 침묵의 시인이었다고 말한다.  

"밤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꿈꿀 수 없듯이 침묵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말(詩)을 얻을 수 없다. 침묵은 말의 중단이나 포기가 아니다. 말과 대척적인 존재도, 수동적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無와 같이 끝없이 존재할 뿐 아니라 모든 有를 끌어안고 거기에 숨을 불어 넣어준다. 그래서 침묵은 무엇이 태어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임마뉴엘 칸트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경이감에 사로잡힌다고 했는데, 이때의 경이는 별의 빛, 즉 침묵의 빛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하림에 따르면 여림의 시들은 경이로운 침묵의 빛인 셈이다. 이제 여림도 그의 삶과 죽음을 애닯아 하던 최하림도 영원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침묵의 빛을 남긴 채.  절망 속에서 발한 침묵의 빛이 오히려 삶에의 의욕을 채찍질하는 듯 하다.

겨울, 북한강에서 일박  

                                        여림

흐르는 강물에도 세월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겨울, 북한강에 와서 나는 깨닫는다 

강기슭에서 등을 말리는 오래된 폐선과 

담장이 허물어져 내린 민박집들 사이로 

하모니카 같은 기차가 젊은 날의 유적들처럼 

비음 섞인 기적을 우리며 지나는 새벽 

나는 한 떼의 눈발을 이끌고 강가로 나가 

깊은 강심으로 소주 몇 잔을 떨구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섬세한 강의 뿌리 

이 세상 뿌리 없는 것들은 잠시 머물렀다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가기만 한다는 것을 

나는 강물 위를 떠가는 폐비닐 몇 장으로 보았다 

따뜻하게 안겨오는 강의 온기 속으로 

수척한 물결은 저를 깨우며 또 흐르고 

손바닥을 적시고 가는 투명한 강의 수화, 

너도... 살고 싶은 게로구나 

깃털에 쌓인 눈발을 털어 내며 물결 위로 초승달 

보다 더 얇게 물수제비뜨며 달려나가는 철새들 

어둠 속에서 알처럼 둥근 해를 부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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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 

                                  Lennon/MacCartney 

I read the news today oh boy
About a lucky man who made the grade
And though the news was rather sad
Well I just had to laugh
I saw the photograph
He blew his mind out in a car
He didn't notice that the lights had changed
A crowd of people stood and stared
They'd seen his face before
Nobody was really sure
If he was from the House of Lords.

I saw a film today oh boy
The English Army had just won the war
A crowd of people turned away
but I just had to look
Having read the book
I'd love to turn you on

Woke up, fell out of bed,
Dragged a comb across my head
Found my way downstairs and drank a cup,
And looking up I noticed I was late.
Found my coat and grabbed my hat
Made the bus in seconds flat
Found my way upstairs and had a smoke,
and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I read the news today oh boy
Four thousand holes in Blackburn, Lancashire
And though the holes were rather small
They had to count them all
Now they know how many holes it takes to fill the Albert Hall.
I'd love to turn you on
---------------------------------------------------------------   

Jeff Beck이 연주한 A day in the life. 비틀즈의 곡이지만 Jeff Beck의 연주곡도 들을만 하다.

제프벡.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3대 기타리스트로 불렸던 사나이. 3대니 5대니 나누는 것은 참 도식적인 발상인데 3대에 들어간 인물들은 한 없이 높이고 거기에 끼지 못한 사람은 좀 떨어지는 것으로 보게 만드는 악효과가 있다.  경지에 오른 기타리스트들은 나름대로의 혼을 담아 연주하는 것일 텐데 거기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많은 것을 잃게 만들고 그 등급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보는 눈을 상실하게 만든다.  

나도 이러한 도식에 빠져서 많은 것을 놓쳐 버린 것 같다. 소위 3대 기타리스트 중  에릭 클랩턴이 제일이요 다음이 제프 벡, 다음이 지미 페이지라고들 했는데 실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요절한 지미 헨드릭스라는 것이 월간 팝송 등을 통해 내가 갖고 있던 통념이었다.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 것이지 왜 그런지에 대한 나만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곡을 들어 본 것은 아니나 기타 문외한의 입장에서 단순한 감상을 반추해 보면 솔직히 에릭 클랩턴은 좀 가볍게 느껴졌고 지미 페이지는 좀 딱딱하게 느껴졌고 제프 벡이 좀더 감성에 호소하는 바가 있는 것으로 느꼈었다. 제프 벡의 경우 야드버즈의 앨범 하나를 들어 본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나만의 느낌의 근거를 강화하고 그것을 발전 시키는 것을 포기했고 3대 기타리스트라는 언어에 현혹되어 다른 많은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얼마전 제프 벡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가보고 싶었으나 무슨 일로 바빴는 지 우물쭈물 미루다 결국 놓쳐 버렸다. 사실 록 음악을 진지하게 감상했던 시절도 이미 까마득한 과거고 3대 기타리스트니 하는 것도 일상사에 묻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도 꾸준히 활동을 하는 에릭 클랩턴이나 접근이 쉬운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에 비해 제프 벡은 더더욱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 갔다. 제프 벡의 위대한 기타 연주를 들으며 풋풋했던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공연을 놓친 것이 좀 아쉽다. 

어린이날 휴일 오전 음악이라도 틀어 놓으려 아이팟 휠을 이리저리 돌리다 제프 벡의 A day in the life에서 멈춘다. 굳이 가사 없이도 제프 벡의 연주만으로도 A day in the life의 맛이 우려 난다. 그래도 가사를 찾아 읽어 보니 마치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MB 시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I'd love to turn you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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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날의 편지

                    - 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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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소통 불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이고
많은 것을 공감하는 듯 해도
소통되지 못하는 그 무언가는 늘 남는 것 같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소통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기에
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완벽한 소통이란 결국 구별이 없다는 것이고
소통할 필요도 없는 하나의 동일체일 것이다.

소통한다는 것은  영원히 소통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주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환유적 행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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