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 할인행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숀 코네리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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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ouchables, 느와르와 베리스모

R. Leoncavallo, 'Pagliacci' '의상을 입어라'


 

un


1987년 브라이언 드팔머(Brian De Palma) 감독의 <언터쳐블>(The Untouchables). 이 영화는 웨스턴과 르와르를 수용한 복합 장르의 영화로 웨스턴의 선악구조에 다소 가벼운 르와르적 요소로 가미해 상업적 흥행을 도모했다. 곰팡이 쉰내가 풍기는 뻔한 스토리 라인에서는 관객 모두를 노스트라다무스로 만들어 버렸고 낡은 틀 속에 담아 놓은 초호화 케스팅은 대사만 좀 더 많아진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브라이언 드팔머의 '드레스 투 킬' 정신은 사라진 것일까. 그러나 다른 작품에서 베껴온 표절 장면들은 의외 영화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에이젼슈타인(Sergi M. Eisenstein)의 영화 <전함포템킨>(Bronenosets Potermkin)의 '오데사 계단 씬', 그리고 르와르의 정수로 꼽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부>에서 빌려온 장면 들은 '모방이 제2의 창작'이란 것을 실감하게 한다.

 

un


오페라를 감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알 카포네의 모습과 갱스터의 무자비한 암살장면이 겹쳐지고, 사뭇 비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 테너가수의 비통스러운 울부짖음이 흐른다. 여기에 등장하는 음악은 레온카발로(R. Leoncavallo)의 오페라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Recitar! Vesti la guibba)'라는 곡으로, 이 곡은 베리스모 오페라 <팔리아치>(Pagliacci) 중 제1막 마지막 곡으로, 극 중 극에서 광대로 등장하는 유랑극단 단장 카니오가 비탄에 잠겨 부르는 노래이다.

이질적인 두 장면이 겹쳐지는 데는 혼란함과 생소함이 배제되어야 함이 원칙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 청부살인을 저지르고도 단지 오페라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면, 관객들은 그 뻔뻔함을 욕하기 전에, 황당한 코메디로 넘겨 버릴 것이다. 이 곡은 이러한 관객들의 불쾌함을 진지함으로 전환시켜 준다. 또 오페라 아리아는 장면을 더욱 세련되게 받쳐 줘,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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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곡의 등장은 <팔리아치>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이 희극은 끝났다."처럼 알 카포네 시대가 끝났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르와르와 베리스모>

Film Noir...2차대전이 끝나고 승리의 기쁨으로 고향을 찾은 병사들. 귀향하는 오딧세이는 아내와 아들을 잃을 판국이었지만, 그들은 가치관을 도둑 맞았고 심지어 경제적 허덕임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에게 남은 거라곤 허무주의와 퇴폐주의뿐. 필름 르와르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Opera Versmo...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낭만의 이상이 무너질 시기. 사실적 역사에 초점을 둔 자연주의가 신문학 장르로 태동되었다. 민중의식과 손잡은 베리스모는 가장 절박하게 필요성을 인식했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싹트게 되었고, 문학운동에서 음악으로 전파되었다.


 

un


대공황, 금주법, 탈세, 암살, 폭력, 갱스터...등은 르와르 필름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려지는 그림들 속에 단지 음침한 불빛 아래서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무의미한 의미들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 갱들의 피 튀기는 혈전과 쓰레기 같은 삶의 근원은 가치관을 상실한 시대에 사는 이들의 슬픔에서 비롯된다.

 

 

특히 이탈리아 이민 세대가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엉클톰 사회에 반기를 드는 모습들은 한편으로 아나킥한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작품들 중에는 "폭력의 포장된 정당성"에서 벗어나 노스텔지어를 갈구하는 이민세대의 비극성까지 그려내, 파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술 수용자들을 충격적인 감동 속으로 몰아 넣는 '처절한 비극성'은 모든 예술 장르에서 나타나고 있다.

칼과 총알이 오고 가고, 주인공이 피를 흘려야 막이 내려 오는 '베리스모 오페라'... 이 점에서 베리스모 오페라는 르와르 필름과 닮아있다. 이 둘에서는 탄압 주체와 억압 객체가 폭력을 기초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다.


199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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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블루 37.2
장 자끄 베넥스 감독, 장 위그 앙글라드 외 출연 / P.S.Kr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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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y B 

 

Betty Blue 

 

예술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여자 이야기

 

<베티블루>가 국내에 첫 소개되었을 때 나에게는 Beatrice Dalle의 누드를 확실하게 감상하기 위한 진지한 에로영화 한편에 불과했다. 잘려나간 필름들에 대한 궁금증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되돌려봐도 나의 조그만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단지 순간 포착을 위해검은 구멍들, 또는 모자이크 사이를 파고드는 섬세한 솜씨를 익힐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저 그렇게 지나갔다.

 

Betty B

 

몇 십년이 흐르고 이 영화를 다시 접할 기회가 왔다. 처가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새 생명에 대한 경외 속에 숙연한 밤을 보내던 나에게 Jean Jacques Beineix 의 함축적인 영화언어는 무척 쉽게 다가왔다.

 

 

조르그의 직업 변천사 : 예술가, 그 형식의 변이

 

영화 속 인물, 배관공 조르그는 방갈로 관리원에서 페인트공, 피아노점 주인, 그리고 작가로 직업을 바꿔 나가고 있다. 그의 직업 변화는 시나리오 상의 전개에 국한 된 상황이라기 보다 '조르그'라는 케릭터가 ' 예술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다. '미술'을 상징하는 페인트공, '음악'을 상징하는 피아노점 주인, 그리고 '문학'을 상징하는 작가로. 평범한 인간이 예술가로서 변해가는 과정의 가장 큰 동기와 출발점에는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 '베티'가 놓여 있다. 베티와의 만남은 그의 숨겨진 예술적 재능을 발굴하고, 예술의 치명적 걸림돌인 현실을 이겨내는 촉진제가 된다. 특히 베티가 자해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그에게 '작가데뷔'를 알리는 출판사로 부터의 소식은 예술가가 위한 고뇌를 베티가 대신 감수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Betty B

 

조르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베티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다. 전혀 진지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베티가 그가 써 놓았던 글들을 밤새면서 까지 모두 읽었을 때, 조르그의 시점에 묶여 버린 관객들은 일탈을 부채질하는 베티의 독단을 '페스트푸드 삶'에 길들여진 여자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베티가 죽음과 가까워 지는 만큼 베티에 대한 열정이 깊어지는 조르그의 사랑을 보면서 그녀의 일탈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지금을 파괴하는 엄청난 용기였음을 알 게 된다.

 

Betty B      Betty B

 

이 영화는 외적으로 베티와 조르그의 광적인 사랑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을 지 몰라도, 내적으로 들어가 보면 한 인간이 진정한 사랑을 잉태하며 예술가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한 배관공이 예술가가 되는 고통스런 인생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르그가 사랑했던 베티는 바로 '예술'의 형상화이며 현실을 버리고 예술의 이상적 세계에 들어서는 희생의 대체물이다.

 

 

글쓰기와 벽허물기

 

에드의 어머니의 피아노점을 관리하는 베티와 조르그는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상점을 꾸밀려고 에드의 허락을 받는다. 벽을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는 베티의 말에 따라 조르그는 벽을 부수기 시작한다.

 

Betty B

 

'벽 부수기가 힘들다.'는 조르그의 말에 베티는 '글쓰는 일 역시 벽 허물기와 같다.'고 말한다. 조르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성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그의 작품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또 그 괴리는 그를 조금씩 침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베티는 자신의 남자를 작가로 만들기 위해 정성어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작가의 꿈을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조르그의 심정은 알지 못하고...

 

그런 그가 갑자기 창작욕을 불사르게 된다. 그 계기는 베티의 임신에서 시작된다. 베티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날 밤부터 그의 창작욕이 요동치게 된다. 작품을 창작하는 일과 새생명이 창조되는 것. 이 두가지의 생산적인 의미는 글쓰기와 베티에 대한 사랑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가 단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베티의 말처럼 수월한 생산은 없다. 글쓰기는 '벽허무는 작업' 처럼 엄청난 변화의 고뇌를 이겨내야 하고, 한치의 미련도 없이 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즉 벽을 허물어 버리지 않으면 탄생의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조르그가 아빠가 되었다면 그는 작가가 될 수 없다. 그의 원고가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은 베티의 죽음과 난산으로 가능했다. "가장은 현대의 마지막 모험가"라는 신참 경찰관의 말처럼 조르그와 베티의 사랑이 또 다른 모험의 길에 접어 들었다면 '영원한 예술'의 사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1.7. dionysusia

 

 

Beatrice D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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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셀 - 폭스 할인
타셈 싱 감독, 빈센트 도노프리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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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Cell'에서 말(馬)의 Image

 보이지 않는 것의 현상화

 


'영화'라는 영상언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소설을 비롯하여 기타 문자 텍스트가 탄탄한 개연성을 가지고도 영상 재창조 작업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영화의 무한한 표현력을 소화할 수 있는 텍스트 호환 문법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첨부시킬지, 얼만큼 영상 미학으로 꽃피울지. 좋은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의 창조력을 시각적으로 복제시키는역할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

영화 <더셀>(the cell, 2000, 탈셈 싱)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영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뮤직 비디오와 같은 원색적인 색감과 화려한 영상미, 현란한 편집기술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의 찬란함'으로 비춰졌고, 시종일관 폭력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머리 속을 공허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주연배우의 의상이 너무 화려해 '제니퍼 로페즈'를 위한 패션쇼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 속 탐험'이라는 다소 황당한 설정에서도 개연성을 잃지 않고 표현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발휘한 영상의 마술사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간간이 등장하는 이미지와 상징에 대한 대치법은 되돌려 가며 꼼꼼히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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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

 

이 영화에서 공포의 재료로 다뤄지는 요소는 '말(馬)'과 '물(水)'로 크게 나누어 진다. '물'은 연쇄 살인범이 만들어 놓은 살인장치 '유리상자'(cell)와 더불어 '전통의 억압, 깊은 수렁'을 의미하고 있으며, 범인이 어린 시절에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세례의식'도 '물'과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말'은 뇌사에 빠진 환자들의 꿈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억압'과 '장애물'의 함축적 의미로 사용된다.

동양에서 말은 한자 '馬'로 표기, 발음([ma])상 귀신/마귀를 의미하는 마(麻)와 같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A.H 크라프가 만들어 낸 '악몽'이란 단어 Cauchemar에서 유래되어 영어의 nightmare, 독일어의 macht(말), 러시아어의 mora(유령), 라틴어의 mors(죽음)과 같은 어원들을 이루고 있다.

 

cell

 

라틴어 Calcare의 어원은 '멸시하다/말이 오르다' 라는 뜻으로 어지러움, 고통과 성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어원에서 살펴보았듯이 말(馬)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동물이지만 오랫동안 '상상 속의 가장 깊이 뿌리 박은 공포의 대상'의 의미로서 사용되어 왔다. 이는 여러 문화 예증들과 예술작품들이 증명해 준다. 포세이돈의 수마, 하데스의 검은 준마...말은 망령을 이끄는 영물이다. 아폴리레르의 동물 우화집에서는 말을 "나의 확연하고 거친 꿈들은 네가 말에 오름을 안다."라고 썼으며, '악몽'과 '등마'에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더 넓은 의미에서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발퀴리'나 2류 갱영화에서 그려지는 폭주 오토바이족처럼 '말'은 죽음의 사자들을 연상시키는 환상의 대체물이 되기도 한다.

 

cell

 

이 영화에서 첫 말의 등장은 임상학자 캐서린이 에드워드의 꿈으로 들어가면서 등장한다. 장기간 뇌사 상태에 빠진 소년이 그의 심리 속으로 들어 온 캐서린에게 선물로 선사한 흑마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사막을 가로질러 등장한다.

고삐를 풀어 버리면 영영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말은 슈베르트 마왕에서도 초원의 한없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운명의 종말을 맞이하는 이미지로 그려졌다.

사막에서 나오는 '말'의 이미지는 공포로부터 소년을 보호하는 역할물의 상징이며 오래 전부터 기사들의 수호자로 그려져 온 말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또는 삼국지에서 주인을 대신해 목숨을 버리는 충성스런 명마의 이미지와도 같다. 그러나 나약한 피보호자들은 말이 복종의 연속성과 노예적 근성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 없다.

 

cell

 

프로이트는 말에 대한 공포를 가진 어린 환자에 대해 동물의 환각을 남성 성기에 대한 무의적 대체물로 해석하고 다분히 오디푸스적인 두려움으로 해석했다. 괴기스러운 박물관 씬에 등장하는 '말'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날카로운 칼날에 몸이 몇 덩이로 토막 난다.

<에쿠우스>에서 처럼 이유없는 테러에 희생이 되는 연약한 존재의 상징과 같다.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에 대한 보답은 '죽음'이었다. 이는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스가 하데스에게 올린 제물(4마리의 암말)과 같은 모티브를 가진다.

 

cell

 

말은 자신을 태우고 지금에 닦친 공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지만, 눈 앞에서 자신을 대신한 희생양으로서 갈갈이 분해 됨으로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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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 SE (dts, 2disc 디지팩) - 할인행사
장현수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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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누구나 비밀은 있다>

 

비연대기적 시간과 시점의 변화

 

이데산의 양치기 파리스는 에리스의 황금사과를 누구에게 바치는가.

이미 대부분의 관객들은 각종 매스컴을 통해 영화 스토리를 절반 이상 알고 있었을 터인데... 왜 영화관을 찾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리라. 권선징악의 이분법을 절실히 숭배하는 아주머니들은 엽기적인 애정행각을 벌인 카사노바가 어떤 벌을 받게 될지 궁금했을 것이고, 노란머리 빨간머리 팬티보이는 우중충한 골반바지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면 '뷔페(?)'를 먹을 수 있는지, 실제 작전을 짜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관객층인 여성들, 특히 아직까지 낭만소녀의 틀을 벗지 못한 노처녀들은 희대의 바람둥이가 세자매 중 누구를 선택하는지, 즉 수현(이병현)은 진영(추상미), 선영(최지우), 미영(김효진) 중 누구와 해티엔딩을 맛보는지 그 결과가 궁금했을 것이다.

 

사랑은 좋은 물건을 고르는 쇼핑과 같은 것. 섹스하고 싶은 남자는 내가 고른다.

딸 셋 있는 집은 보통 이렇게 이름을 짓는지. 주인공 진영, 선영, 미영은 미스 코리아 뽑듯이 진선미에다 '영' 돌림자를 붙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들은 이름과 정반대로 행동하여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막내 미영은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이어야 함에도, 도리어 미(美)를 무기로 여럿 남자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바람둥이(팜므파탈에 가깝다.)이며, 둘째 선영은 착하고 순수한 인물이었지만, 수현을 만나면서 동생 남자를 가로채는 야비한 인물로, 선(善)함과는 전혀 관련을 지을 수 없으며, 또 첫째 진영은 남편과 자식이 있는 유부녀로서 진(眞)실을 지키지 못하고 동생의 남자와 불륜에 빠져버리는 등. 그야말로 이름 값 잘하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물론 물 흐르듯이 이 여자 저 여자 옮겨 다니는 수현의 출현이 그녀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지만.

 

who

 

여자의 첫사랑을 만족시키는 것은 남자의 마지막 사랑뿐이다. -발자크-

사랑은 벼락처럼 다가와 안개처럼 사라진다. -도플러-

오, 자유! 그대의 이름으로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나니. - 로망 롤랑-

플룻 중간에 뛰어드는 이러한 글귀들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쓰인 것일까. 장면을 매끈하게 전환시키지 못해 고민하고 있던 감독이 최후로 생각해낸 어설픈 CG인가. 아니면 원작자의 유아기적인 상상력에서 발동된 유치한 장난일까. (원작이 이라는 아일랜드 블랙 코미디라고 하니 전자에 해당되겠다.) 연대기적 시간(Discourse-Time) 구조를 따르고 있는 보통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시점의 변화로 인한 비연대기적 전개가 시도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부터 진행되어 오던 미영의 이야기는 선영의 시점으로, 다시 진영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who


과거 연대기적 서사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형식주의자(또는 구조주의자)들은 '인물'이라는 담화의 기본 요소를 플롯의 하위개념으로 분류해 버렸다. 스토리를 좌지우지하는 플롯의 지배 속에 인물은 기생적인 상태로 플롯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건 자체에 독립적 형성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 최근의 현대적 서사물에서는 인물이 우월한 위치에 있어 플롯이 부차적으로 파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who

네러티브에 있어서 스토리가 사건 차원의 시간과, 존재 차원의 공간과 결부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영화에서 인물의 시점은 시간성을 앞지르고 있으며, 인물의 존재성은 공간과 함께 스토리 전체에 중요한 역을 담당하고 있다. 첫째 딸, 가정주부 진영의 공간은 가정과 백화점 등이며 둘째 딸 대학원생 선영의 공간은 도서관, 서재 등이고, 셋째 딸 재즈싱어 미영의 공간은 라이브 카페, 무대이다. 이들이 활동하는 공간만으로 인물의 성격이 형성되며, (또는 인물의 성격화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각자의 공간들은 인물 간의 갈등까지 유발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who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비밀을 가지고 있다. 비밀의 크기만큼 행복해진다.

양치기 파리스는 예쁜 마누라를 준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바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는 아무런 결론도 없이, 유혹을 했던 남자는 무죄요, 유혹을 당했던 여자들은 '비밀'이라는 아주 훌륭한(?) 면죄부를 선사 받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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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카 SE - 할인행사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 할리 베리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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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설의 현상학으로 해석한 Gothika

  

 

(gothic의 영국식 古文 표기, 18세기 고딕문화,

괴기스럽고, 미스터리하고 소름끼치는 사건)


 

모든 의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경험했던 사실들을 모두 진실인 것처럼 믿지 마라.

자연과 사람, 심지어 합리적인 과학마저도

당신의 눈을 통해서 보았다면 완벽한 진실이 되지 못한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다면 형상적 환원을 통해서 본질에 접근하라.

 

       

 

우연한 사고, 의식불명, 3일 뒤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은 180도 변해있었고,

자신의 무죄로 입증해 줄 3일 전의 기억은 자신의 뇌세포에서 소멸돼 버렸다.

미란다 박사(Halle Berry)는 하루 아침에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에서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정신병자로 낙인찍혔다.

 

          

 

 모든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끔찍스럽다.

아군은 적군이 되고 적군은 아군이 되어 있다. 그녀가 담당 해왔던 정신병자 크롤(Penelope Cruz)은 정신병동의 동료가 돼버리고 자신을 음흉하게 짝사랑해오던 동료 피트 박사(Robert Downey Jr.)는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담당의가 되어 버렸다.

 

           

 

 

사랑하던 남편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하고, 추락을 자초해 버리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분명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편이 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들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겠는가.
범죄자의 정신상담을 해왔던 정신과 전문의답게 스스로를 진단해 가면서 답을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또는 힐끗힐끗 곁눈질해왔던 동료 피트 박사(Robert Downey Jr.)의 도움을 얻어보는 것도 방법이 되지않을까.

 

거울(Mirror)

크롱을 상담하고 돌아온 닥터 미란다가 남편을 만나는 장면.

남편은 미란다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이렇게 말한다.

 

A distorted image of herself who are you in all this?
I'm the mirror, If i'm the mirror and she's the image.

(그리고 남편은 덧붙여 "I'm Got."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내려다 보고 있는, 곧 세상을 연 최초의 원인, 남편 역시 사건의 발단이 되는 최초의 원인이다.)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내면의 자아와 외면의 자아,

내면적 결점과 외면적 결점, 사물의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없는,

그래서 참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제거해야 하는....

 

독일의 심리학자 펜더(A. Pfaender)는 인간의 마음을 분할해 버리는 실험심리학을 부정하고, 그 대안으로 현상 심리학을 들고 나왔다.

인간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분할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해야 한다는 현상학적 대안은 이 영화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미란다의 방법이 된다.

 

훗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Phaenomenologie)

 

피트 박사는 모든 사실을 철저히 개별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3일전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단지 개별적 사건의 열거로 그치고 만다.

 

 

이에 반해 미란다는 당시 사건의 잃어버린 기억 부분들과 모호한 상황들을 제자리로 배치하기 위해 분할된 일련의 시간들을 수집하고, 또 자신과 남편 주위 사람들의 시간들마저도 자신의 기억 속으로 응집시켜본다. (물질을 하나하나 뜯어서 사물을 판단하는 실증주의의 거부하는 것이다.)

 

그녀는 '폭풍우 속의 사고'에 대해서 현상학적 입장으로 접근하여 사건에 내재하는 본질(본질직관)을 찾으려고 한다. (현상학적 환원, phaenomenologische Reduktion)

 

반면 동료 피트박사를 위시한 그녀의 유죄를 믿는 모든 이들은 칸트의 인식론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대상에 존재하고 있는 자체를 문제화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사유의 선천적인 형식을 통해서 대상을 산출하려고 한다.

시간과 공간에서 현상화된 존재들을 사실학에 입각하여 경험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녀는 남편을 토막 내 죽인 흉악한 살인범이 되고 만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만약 미란다가 칸트의 인식론을 위시해, 그녀가 줄곧 신봉해 왔던 프로이트나 융, 또는 관념론에 치우쳐 있는 철학을 방법론으로 택했다면 그녀는 여전히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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