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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블루 37.2
장 자끄 베넥스 감독, 장 위그 앙글라드 외 출연 / P.S.Kr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Betty Blue
예술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여자 이야기
<베티블루>가 국내에 첫 소개되었을 때 나에게는 Beatrice Dalle의 누드를 확실하게 감상하기 위한 진지한 에로영화 한편에 불과했다. 잘려나간 필름들에 대한 궁금증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되돌려봐도 나의 조그만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단지 순간 포착을 위해검은 구멍들, 또는 모자이크 사이를 파고드는 섬세한 솜씨를 익힐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저 그렇게 지나갔다.

몇 십년이 흐르고 이 영화를 다시 접할 기회가 왔다. 처가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새 생명에 대한 경외 속에 숙연한 밤을 보내던 나에게 Jean Jacques Beineix 의 함축적인 영화언어는 무척 쉽게 다가왔다.
조르그의 직업 변천사 : 예술가, 그 형식의 변이
영화 속 인물, 배관공 조르그는 방갈로 관리원에서 페인트공, 피아노점 주인, 그리고 작가로 직업을 바꿔 나가고 있다. 그의 직업 변화는 시나리오 상의 전개에 국한 된 상황이라기 보다 '조르그'라는 케릭터가 ' 예술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다. '미술'을 상징하는 페인트공, '음악'을 상징하는 피아노점 주인, 그리고 '문학'을 상징하는 작가로. 평범한 인간이 예술가로서 변해가는 과정의 가장 큰 동기와 출발점에는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 '베티'가 놓여 있다. 베티와의 만남은 그의 숨겨진 예술적 재능을 발굴하고, 예술의 치명적 걸림돌인 현실을 이겨내는 촉진제가 된다. 특히 베티가 자해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그에게 '작가데뷔'를 알리는 출판사로 부터의 소식은 예술가가 위한 고뇌를 베티가 대신 감수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조르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베티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다. 전혀 진지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베티가 그가 써 놓았던 글들을 밤새면서 까지 모두 읽었을 때, 조르그의 시점에 묶여 버린 관객들은 일탈을 부채질하는 베티의 독단을 '페스트푸드 삶'에 길들여진 여자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베티가 죽음과 가까워 지는 만큼 베티에 대한 열정이 깊어지는 조르그의 사랑을 보면서 그녀의 일탈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지금을 파괴하는 엄청난 용기였음을 알 게 된다.

이 영화는 외적으로 베티와 조르그의 광적인 사랑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을 지 몰라도, 내적으로 들어가 보면 한 인간이 진정한 사랑을 잉태하며 예술가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한 배관공이 예술가가 되는 고통스런 인생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르그가 사랑했던 베티는 바로 '예술'의 형상화이며 현실을 버리고 예술의 이상적 세계에 들어서는 희생의 대체물이다.
글쓰기와 벽허물기
에드의 어머니의 피아노점을 관리하는 베티와 조르그는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상점을 꾸밀려고 에드의 허락을 받는다. 벽을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는 베티의 말에 따라 조르그는 벽을 부수기 시작한다.

'벽 부수기가 힘들다.'는 조르그의 말에 베티는 '글쓰는 일 역시 벽 허물기와 같다.'고 말한다. 조르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성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지만, 그와 그의 작품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또 그 괴리는 그를 조금씩 침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베티는 자신의 남자를 작가로 만들기 위해 정성어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작가의 꿈을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조르그의 심정은 알지 못하고...
그런 그가 갑자기 창작욕을 불사르게 된다. 그 계기는 베티의 임신에서 시작된다. 베티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날 밤부터 그의 창작욕이 요동치게 된다. 작품을 창작하는 일과 새생명이 창조되는 것. 이 두가지의 생산적인 의미는 글쓰기와 베티에 대한 사랑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가 단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베티의 말처럼 수월한 생산은 없다. 글쓰기는 '벽허무는 작업' 처럼 엄청난 변화의 고뇌를 이겨내야 하고, 한치의 미련도 없이 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즉 벽을 허물어 버리지 않으면 탄생의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조르그가 아빠가 되었다면 그는 작가가 될 수 없다. 그의 원고가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은 베티의 죽음과 난산으로 가능했다. "가장은 현대의 마지막 모험가"라는 신참 경찰관의 말처럼 조르그와 베티의 사랑이 또 다른 모험의 길에 접어 들었다면 '영원한 예술'의 사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1.7. dionysusia
Beatrice Dal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