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꿀
렌조 미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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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짜리 어린 남자 아이가 유괴를 당합니다. 하지만 이 유괴범은 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부모가 돈을 준비하면 주는대로 받겠다고하고 한 술 더 떠 나중에는 돈이 너무 많으니 좀 줄이라는 황당한 주문까지 합니다. 실제로 아이가 유괴되어 경찰이 출동하고 시내 도심가 한복판에서 아이와 돈을 바꾸는 상황이 연출되는 이 유괴 사건에서 유괴범의 전형에서 탈피한 행동을 보이는 범인의 진짜 숨겨진 목적은 무엇일까요.

 

600쪽의 거대한 분량이 술술 읽힙니다. 어린 사내아이의 유괴를 둘러싸고 이혼한 부모 그리고 담당 형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역할, 이해 관계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야기는 유괴 시점부터 범인과의 접선때까지 긴박하게 흘러갑니다. 독자는 유괴범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 어리둥절하며 사건의 숨겨진 진상을 파악하느라 바짝 긴장합니다.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간의 탁월한 심리 묘사와 생생하고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유괴 사건 과정의 서술로 인해 제 자신이 마치 유괴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스토리에 빠져듭니다.  

 

한바탕 유괴 전쟁이 끝나면 과거로 돌아가 한 여성의 이야기가 그려지며 그 곁에 공범자가 되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독자의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조금씩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괴 사건의 진상은 독자를 놀래키기에 충분합니다.

 

치밀한 구성과 엎치락뒤치락 전개되는 스토리 그리고 놀라운 반전과 마지막 에피소드까지...딱 박신양 주연의 <범죄의 재구성>이란 영화가 떠오르네요. '유괴 관련 미스터리를 이런 색다른 줄거리로 쓸 수도 있겠구나' 느끼며 작가의 기발한 발상과 치밀한 구성력에 감탄합니다. 내 자신이 때론 범죄자가 됐다가 때론 형사가 되어 숨겨진 진실의 공방을 지켜보는, 오랜만에 지적 유희를 맘껏 즐긴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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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밀실살인게임 3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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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가군, 두광인, 반도젠교수, aXe, 044APD...그들이 돌아왔습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다섯 명의 반가운 이름과 함께 또 다시 그들이 벌이는 악동같은(?) 살인 추리 게임에 조금씩 흥분과 긴장감이 몰려오네요. 이번에는 또 어떤 재미나고 기발한 추리의 세계로 나를 인도할까....2011년 발간된 『마니악스』는 기존의 1,2편인 『왕수비차잡기』와 『밀실살인게임 2.0』의 외전격인 에피소드 모음입니다. 그래서인지 분량도 250쪽 정도로 짧습니다.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그들의 유쾌한 대화는 여전합니다. 살인 퀴즈를 내는 출제자는 '어디 한번 맞혀봐라'하며 의기양양하고 탐정이 되는 나머지 네 사람은 해답을 내놓기위해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죠. 무대가 바뀌고 외전격다운 발상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독자를 놀래킬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웹상의 밀실살인게임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1961년생인 작가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웹을 포함 각종 통신, 전자기기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의 다양한 과학적 장비와 지식을 추리에 접목시킵니다. 가히 '하이테크 엔터테인먼트 살인 추리 게임'이라 부르고 싶네요.

 

그들의 티격태격 밀고당기는 대화 과정이 어찌됐건 (추리소설 매니아인 저에게 이 책의 성패는) 독자의 구미를 당기는 기발하고 재미난 추리 문제의 출제와 거기에 걸맞는, 무릎을 탁 칠만한 탁월한 해답의 제시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쉬움이 큽니다. 물론 제시된 문제를 탐정격의 네 사람이 각자 자신의 추리를 내세우는 부분에서 독자인 저 역시 그들 입장(탐정)이 되어 하나씩 그들의 추론의 진위와 가능성 여부를 꼼꼼히 따져가면서 머리속으로 '과연 정답일까?' 하며 같이 논리하고 추리해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하지만 각 사건의 해결 부분에서 밝혀지는 해답들을 보면 허탈감 그 자체입니다. 변죽만 울렸다고 해야할까요. (특히 첫번째 사건의 범죄 성공 여부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네요) 언제나 그렇듯 뛰어난 몰입감과 가독성에 기존의 무대가 바뀌고 책 전체를 아우르는 기발한 트릭과 반전은 볼만하지만 정작 중요한 추리 부분에서의 완성도와 만족감은 내심 불만입니다.

 

작가가 밝힌대로 외전격이라서 그런지 기존 밀실살인게임 본연의 텍스트에서 너무 멀리 온 느낌입니다. 기존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자체의 명성, 독창성, 화제성등으로 봐서 이쯤에서 멈추던지 아니면 (번역 후기에도 있듯이) 외전은 논외로 치고 1편같은 밀실살인게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시리즈를 멋지게 마무리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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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요시키 형사 시리즈 1
시마다 소지 지음, 이연승 옮김 / 해문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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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최고의 일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의 집요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형사 요시키 다케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시마다 소지 작품은 크게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와 '형사 요시키 다케시 시리즈'로 나뉘는데 『점성술 살인사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마신유희』등에서 보듯이 명탐정 미타라이 시리즈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상황, 특수한 설정에서의 천재적인 탐정의 명석한 두뇌에 의존한다면 형사 요시키 시리즈는 지극히 현실적인 범죄를 주인공의 발로 뛰는 끈끈한 수사로 인간미 넘치게 그려낸다. 참고로,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점성술 살인사건』은 1981년 ,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는 1989년, 이 작품은 1984년작이다.

 

고급맨션 욕실의 욕조에서 얼굴 가죽이 벗겨진 여성 피살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각을 추정한 결과 그녀는 놀랍게도 그 시각에 침대특급열차 하야부사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과연 이 기괴한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천재형의 미타라이 탐정과는 달리 요시키 형사는 그야말로 발로 뛰는 전형적인 평범한 형사이다. 수없이 탐문하고 조그만 단서라도 붙잡으려 기차를 타고 일본 전역을 누빈다. 욕실에서 살해된 피해자가 동일 시각 기차에 타고 있었다는,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기발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중반부에서는 피해자의 연고지를 찾아 홀로 탐문 수사를 떠나는 요시키 형사 단독으로 전개되는 고독한 수사 여정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 여행지마다 등장하는 섬세한 묘사들이 일본 지명에 낯선 국내 독자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의문이다.

 

작가는 트릭을 숨기고 다양한 복선을 배치하는데 신경쓰느라 주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에 소홀히 한다. 그들은 마치 기차 창문을 통해 휙휙 지나가는 전봇대마냥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뒤로 갈수록 트릭의 실체와 사건의 진상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나 범인이 과연 누구인지 여부는 사실 별로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술술 재밌게 읽힌다. 특히 불가사의한 범죄 상황 설정으로 인한 초반부와 요시키 형사의 논리적인 추리가 빛을 발하며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후반부의 몰입감은 무척 뛰어나다. 신본격 추리의 대표주자답게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밝혀지는 트릭의 실체와 사건의 진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과 숨겨진 이야기등은 독자를 놀래키기에 충분하다. 비록 작가의 대표작인 『점성술 살인사건』이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정도의 깊이와 무게, 스케일과 완성도등에 비교되기는 어렵겠지만 시마다 소지 팬은 물론이고 본격 추리 매니아에게는 충분히 재밌고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사족 1. 표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 ①"로 추측건데 해문에서 시리즈로 계속 나올 모양이다. 대환영!

사족 2. 이 책이 이 번역가의 역사적인(?) 첫 번역 작품이라고 한다.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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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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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2010년 작품입니다. 띠지와 책 뒤표지에 자랑스럽게 나와있듯이 이 작품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위등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자랑합니다. <부러진 용골>은 12세기 말 유럽 영국령 솔론 제도라는 존재하지 않는 섬을 배경으로 그 곳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그 당시 횡행하던 마법 요소를 추리와 접목시킨 아주 독특한 설정의 본격 미스터리 판타지물입니다. 일본 작가가 쓴 외국 배경과 등장인물에 특수 설정을 앞세운 미스터리는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이후 오랜만이군요.

 

무릇 본격 미스터리 판타지물은 신비스러운 마법과 판타지의 세계와 논리적인 추리의 세계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대칭 요소를 얼만큼 적절히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는가가 관건인데 작가는 이런 점에서 독자에게 환상적인 중세 마법 드라마에 완벽한 추리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책 초반부에는 중세 유럽의 미지의 섬을 배경으로 으스스한 암살 기사의 존재와 신비스럽고 다양한 마술로 독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추리는 단단한 시멘트만큼이나 확고부동하고 논리정연합니다.

 

12세기 말 유럽...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섬인 영국령 솔론 제도...그 솔론 섬의 침입불가할 것 같은 철통같은 영주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신뢰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수상한 용병들, 수십년간 탑에 갇혀있는 불사의 비밀스런 포로, 마술로 무장한 무서운 암살 기사와 그 암살 기사를 좇아 솔론 섬까지 추적해온 집념의 동방의 기사 그리고 솔론 제도를 침략하려는 저주받은 데인인들...

 

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재미난 요소들이 무수히 등장합니다. 작가는 각종 트릭과 해결이 등장하는 추리 부분은 물론이고 마법과 검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사, 종사, 요새, 범선등 그당시 중세 유럽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서사적으로 완벽히 재현해냅니다.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흥미로운 전개, 신비스런 마법과 논리정연한 추리의 절묘한 조합, 극적인 반전과 감동을 주는 훈훈한 마무리까지...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는 오랜만에 맛보는 본격 미스터리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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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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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의 재미와 충격의 여운이 가시기전에 연이어 그녀의 데뷔작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을 읽었습니다. 제5회 호러/서스펜스 대상 수상작이란 얘기에 섬뜩한 공포나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가 주류를 이루는 호러 스릴러물로 예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러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세포적인 미스터리물이 아니네요.

 

8년전 이혼한 여주인공 사치코는 고3 아들과 젊은 애인을 둔 40대 중년 여성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다음 날에는 젊은 애인이 전철역에서 추락 사고사를 당합니다. 충격과 혼돈속에 사라진 아들을 찾아 아들의 흔적과 족적을 추적하던 사치코는 전 남편의 가족들, 아들의 여자 친구등 주변 사람들이 아들의 실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되고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의 평소 얼굴 뒤에 숨겨진 뒤틀린 욕망, 악의 등 추악한 이면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책은 아들의 실종, 젊은 애인의 전철 추락 사건등에 관해 추리하고 범인을 찾는데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섬뜩한 묘사나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호러/서스펜스 대상을 받을만큼의 공포나 서스펜스가 기조를 이루지도 않고요. 오히려 작가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혈연 또는 애증등에 의해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오는 각 인물들의 드러나지않는 비틀린 내면의 세계를 정교하게 묘사하는데 작가의 역량을 쏟아 붓습니다. 특히, 여주인공을 포함, 전남편의 새부인, 아들의 여자 친구등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여성들의 욕망, 시기, 질투, 거짓말등 여성만이 갖는 특유의 섬세한 심리를 밀도있고 오싹하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이 점이 역설적으로 남성 독자인 저로서는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는데 어려움을 느끼게합니다. 바로 전에 읽은 <유리고코로>가 남자 주인공을 앞세운 3인칭 소설이라면 <9월이~>는 40대 중년 여성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실종된 아들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을 포함해서 그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주요 인물들의 행동 및 심리상태를 얼만큼 이해하고 공감하는가가 이 책을 제대로 즐기는 관건이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책 후반부에 밝혀지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실들이 저로서는 다소 이해하고 적응하기 어렵더군요. 일예로, 고1 여고생 후유코가 41세인 사치코에게 (암만 아는 오빠의 늙은 애인이란 경멸의 의미가 담겨있다지만) 아줌마가 아닌 당신이란 호칭을 사용하는데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몰이해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 뒤표지에 나와있는 간략 줄거리 소개입니다. 암만 이 책이 사건의 추리와 해결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두 가지 사건들 (하나는 책 후반부에 발생) 을 줄거리 소개에서 미리 노출한 점이 이해가 되질 않네요. 독자는 예고도 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에 충격을 받고 긴장하며 점점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마련인데 책 뒤표지에 이 중요한 사건들이 친절하게(?) 언급되어있어 책을 읽는 동안의 긴장감이 뭉텅 잘려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9월이~>는 중년의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아들의 실종 사건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숨어있는 욕망과 질투, 광기, 악의등의 어두운 면을 여성 특유의 시각과 관점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심리 서스펜스 소설입니다. 여성 독자는 당연하고 여성 심리에 호기심이 있거나 일가견이 있는 남성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부분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차분한 독백을 보니 그제서야 제목의 뜻이 이해가 되며 그런 그녀에게 아련한 연민의 정을 갖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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