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유리고코로>의 재미와 충격의 여운이 가시기전에 연이어 그녀의 데뷔작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을 읽었습니다. 제5회 호러/서스펜스 대상 수상작이란 얘기에 섬뜩한 공포나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가 주류를 이루는 호러 스릴러물로 예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러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세포적인 미스터리물이 아니네요.

 

8년전 이혼한 여주인공 사치코는 고3 아들과 젊은 애인을 둔 40대 중년 여성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다음 날에는 젊은 애인이 전철역에서 추락 사고사를 당합니다. 충격과 혼돈속에 사라진 아들을 찾아 아들의 흔적과 족적을 추적하던 사치코는 전 남편의 가족들, 아들의 여자 친구등 주변 사람들이 아들의 실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되고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의 평소 얼굴 뒤에 숨겨진 뒤틀린 욕망, 악의 등 추악한 이면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책은 아들의 실종, 젊은 애인의 전철 추락 사건등에 관해 추리하고 범인을 찾는데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섬뜩한 묘사나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호러/서스펜스 대상을 받을만큼의 공포나 서스펜스가 기조를 이루지도 않고요. 오히려 작가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혈연 또는 애증등에 의해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오는 각 인물들의 드러나지않는 비틀린 내면의 세계를 정교하게 묘사하는데 작가의 역량을 쏟아 붓습니다. 특히, 여주인공을 포함, 전남편의 새부인, 아들의 여자 친구등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여성들의 욕망, 시기, 질투, 거짓말등 여성만이 갖는 특유의 섬세한 심리를 밀도있고 오싹하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이 점이 역설적으로 남성 독자인 저로서는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는데 어려움을 느끼게합니다. 바로 전에 읽은 <유리고코로>가 남자 주인공을 앞세운 3인칭 소설이라면 <9월이~>는 40대 중년 여성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실종된 아들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을 포함해서 그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주요 인물들의 행동 및 심리상태를 얼만큼 이해하고 공감하는가가 이 책을 제대로 즐기는 관건이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책 후반부에 밝혀지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실들이 저로서는 다소 이해하고 적응하기 어렵더군요. 일예로, 고1 여고생 후유코가 41세인 사치코에게 (암만 아는 오빠의 늙은 애인이란 경멸의 의미가 담겨있다지만) 아줌마가 아닌 당신이란 호칭을 사용하는데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몰이해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 뒤표지에 나와있는 간략 줄거리 소개입니다. 암만 이 책이 사건의 추리와 해결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두 가지 사건들 (하나는 책 후반부에 발생) 을 줄거리 소개에서 미리 노출한 점이 이해가 되질 않네요. 독자는 예고도 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에 충격을 받고 긴장하며 점점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마련인데 책 뒤표지에 이 중요한 사건들이 친절하게(?) 언급되어있어 책을 읽는 동안의 긴장감이 뭉텅 잘려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9월이~>는 중년의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아들의 실종 사건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숨어있는 욕망과 질투, 광기, 악의등의 어두운 면을 여성 특유의 시각과 관점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심리 서스펜스 소설입니다. 여성 독자는 당연하고 여성 심리에 호기심이 있거나 일가견이 있는 남성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부분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차분한 독백을 보니 그제서야 제목의 뜻이 이해가 되며 그런 그녀에게 아련한 연민의 정을 갖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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